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3)

서양문명의 기원 이탈리아로 출장 가다(1)

by 리본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창세기 12장 11절~12절)


" 우리 회사 창사 이래 이렇게 장기간 해외출장 간 사람은 니가 처음이다. 야"

공장장님이 제가 들고 간 출장예산 기안서를 검토하시면서 끝내 한 말씀하셨습니다.

" 이건 또 뭐야? 예상되는 비용이 3천만 원이라고?"

공장장님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예, 3개월 기간 동안 비행기표, 호텔비, 차량 렌트비, 그리고 식대 등을 계산해 보니 그렇게 나오는데요?"

사실 저도 기안서를 짜면서 이 금액을 보고 놀란 터라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야 출장기간뿐 아니라 출장경비도 니가 기록을 깨는구나."

공장장님은 혀를 내두르시고는 할 수 없다는 듯 출장 계획 안에 사인을 하셨습니다.


저는 두 번째 직장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3개월가량 이탈리아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업무는 이탈리아의 비교적 북쪽지방인 볼로냐 근처에 있던 저희 회사 공장의 설비를 한국의 새로 건축한 공장 안에 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계회사는 제가 중국출장을 통해 경험한 국내회사의 해외출장 경비제도와는 달리 출장수당이 따로 없고, 모든 비용이 실제로 지출한 것을 사후 정산하는 실비정산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수당이 없어서 중국처럼 용돈을 챙길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물가가 비싼 유럽은 실제로 든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것을 저는 예산안을 작성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장은 조그만 소도시에 있었기에 마땅한 호텔이 없어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볼로냐시에 호텔을 정하고, 따로 대중교통이 없어서 차를 장기간 렌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산을 맞추면 되니, 렌터카 비용은 고정이고, 기름값은 실비 정산이라 일이 없는 주말이면 근처의 관광지로 이동하여, 동일 비용의 호텔을 예약하는 것으로 예산을 맞추어 가니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3개월을 보내었습니다.

마침 2시간 거리 정도에 피렌체가 있어서 자주 방문할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마음먹고 4시간 걸리는 베네치아로 여행 가기도 하고 페라리 박물관이 있는 모데나나 패션의 도시 밀란 등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장기간이 정해있어서 왕복 비행기를 미리 끊어왔기에, 프로젝트가 일정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남은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이용하여 이탈리아 북쪽 국경지대를 넘어 모나코공국도 방문하였고, 바로 근처의 프랑스 휴양지 니스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로마에서 귀국하는 여정이라 여행의 마지막은 로마에 3일을 꼬박 할애하여 로마시내의 유명한 명소들도 알차게 관광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 문명의 중심지인 중국에 이어 서양문화의 근간을 되었던 그리스, 로마신화의 중심지이자 르네상스의 기원지이며, 기독교문명의 토대를 형성한 이탈리아에 장기간 그것도 공짜로(회사돈으로) 여행을 하게 된 행운은 또 어떻게 해서 생긴 일일까요?

배가 아프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이번의 출장은 중국과는 달리 회사에도 큰 이익이 되는 성과를 내었기에,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출장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회사는 여느 외국계회사와 마찬가지로 특히 공장을 증설하는 큰 프로젝트를 본사로부터 승인받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상품에 붙이는 종이 라벨(스티커)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스티커형태의 대형롤을 만든 후 slitter 공정으로 자르고, 라벨지 단위별로 이형(분리)되게끔 흠을 판 소형롤을 충무로에 있는 소규모 인쇄공장에 보냅니다.

그러면 인쇄업체에서 소비재회사의 포장디자인 그대로 인쇄하여 소비재회사의 포장공정으로 보내고, 이 라벨 소형롤은 포장공정에 걸려서 컨베이어 형태로 공급되는 용기나 포장박스에 라벨로 붙여지게 됩니다.

라벨지는 일회성 소비재라 수요가 계속 증가하여 지속적인 설비 증설이 필요한 게 이 라벨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짐작하다시피 라벨이 얼마나 고부가가치 사업이겠습니까?

결국 고속의 대량생산 설비를 들여와 대량물량을 한꺼번에 생산하는 방식으로 하여 1원이라도 저렴하게 공급하는 가격경쟁력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이고속라벨기계가 아직은 국내의 업체 수준으로는 제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그나마 제조할 수 있는 업체는 인쇄산업의 선진국인 스위스에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 기계의 가격이 매우 비쌌습니다.

따라서 이 기계를 사들일 경우 Pay back 기간(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내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너무 길게 되어 본사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공장을 비롯한 아시아의 공장을 총괄관리하는 아시아의 기술총괄임원인 전무님(한국분이셨습니다.)이 한국공장을 위해 내세운 대안은 중고기계를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전 세계의 공장들을 수소문하다 보니 마침내 이탈리아에 있는 공장이 여러 가지 내부 사정으로 폐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공장의 기계가 우리가 원하는 그 스위스업체에서 10년 전에 만든 기계였고, 역시 메이드인 스위스제품이라 잘하면 앞으로 10년을 더 사용해도 끄떡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무님이 일단은 이 기계를 제조한 스위스업체에게 연락하여, 이탈리아의 이 기계를 분해하고 운송하여, 한국에 설치하고, 시운전하는 것에 Turn Key style의 견적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스위스업체라 그 견적금액이 너무 높아 이 금액도 우리의 목표 예산을 훨씬 초과하였습니다.

한참을 고민하시던 전무님께서는 이 업체의 견적서표기되어 있던 하청업체들을 직접 접촉하기로 결심하셨고, 이탈리아에서 설비를 분해하는 것은 프랑스업체가, 설비의 포장과 해운 운송은 이탈리아 물류업체가, 한국에서 받아서 이송하고 설치하는 것은 한국의 업체가 맡아서 우리와 직접 계약하고, 시운전만 스위스의 제작업체 기술자 두 명이 와서 하는 것으로 업무를 최대한 쪼개어 보니 겨우 예산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자 이렇게 일이 진행되니, 우리 회사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좋지만, 문제는 우리 회사가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감독하고, 혹시나 업체 간의 업무 사이에 공백이 생기면 바로 현장에서 적절한 업체나 자원을 가동하여 그 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도전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과정을 프로젝트 매니저인 제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일일이 챙겨야 하는 업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계라는 것이 부품 하나만 잘못 끼워지거나 빠져도 전체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 만일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 모든 책임을 프로젝트 매니저인 제가 져야 했기에 일에 대한 부담이 몇 배나 증가되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저는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봐야했기에, 이탈리아에 장기간 머무르는 행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태생부터 복잡해져 버린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프로젝트매니저로 어렵게 입사했는데, 정작 이 프로젝트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검토사항이 길어져, 본사에서 아직 승인도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프로젝트가 없으면 저의 자리도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저는 입사하고 거의 한 달 이상을 현장에서 현장직원처럼 일을 하여야 했습니다.

뭐 현장을 미리 익힌다는 구실로 시작했지만, 이 현장실습은 나중에 현장과 한 팀이 되어 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네가 현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OJT(On the Job Training)를 받은 사무직원일 거다."

공장장님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마치고 기름때 뭍은 얼굴로 퇴근 무렵에야 사무실로 돌아오는 저를 보시며, 예산을 승인받지 못해 내심 초조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며 숨기셨습니다.


드디어 이 프로젝트가 겨우 본사의 승인을 받았고, 저는 우선 이 설비가 들어설 증축 건물에 대한 기본적인 layout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설비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스위스업체에서 받은 전체 기계에 대한 전면도 도면 달랑 한 장뿐이었습니다.

이 도면을 가지고 이 기계가 들어설 건물과 유틸리티 설비들을 디자인하고 시공해야 했습니다.

기계에 연결하여야 할 전기나 냉각수 등의 유틸리티 설비는 일단 현장에 있는 설비를 참고하여 기계의 크기가 기존 현장설비의 서너 배니 유틸리티나 전기용량도 서너 배의 Capa.로 설계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기나 유틸리티 공급 설비 등도 메인공급 라인만 벽의 rack 위에 설치하고 분기하는 가지는 차후에 기계설치 후 기계를 보면서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콘크리트 바닥 공사였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기계를 설치하며 건축 바닥에 그대로 앙카를 박아 고정하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보다 큰 문제는 원재료인 이형지와 전면지의 커다란 원통형 롤 (지름이 1m이고, 너비가 1.5m이고, 무게가 1톤이 넘는)을 어떻게 운반하여 기계에 장착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이형지와 전면지를 실리콘과 접착제를 코팅하여 압착한 후 합지된 더욱 무거워진 대형롤은 어떻게 기계에서 내려 옮기는 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계의 전면도에는 원자재인 대형롤을 푸는 부분과 합지 된 롤을 감는 arm부분 밑에 바닥에 상하로 움직이는 유압 lift가 있고 이것을 바닥에 묻기 위한 피트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단 이 도면의 lift 사이즈를 가로 2m 세로 2m 깊이 1m의 직사각형 피트를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lift 테이블 위로 대형롤을 어떻게 이동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합지 된 롤이 lift를 타고 바닥에 내려오면 이 롤을 어떻게 대형라인 밖으로 빼내어야 하는 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기존의 코팅머신들은 롤의 사이즈나 무게가 크지 않아 기계 상부의 hoist로 롤을 걸어서 공중에 매달려 움직이며 옆으로 빼내어 바닥에 내려놓은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하여야 할 롤은 말 그대로 헤비급인데, 이것을 공중으로 달아 이동시킬 경우 작업자의 안전에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공중이 아니라 바닥에서 이 대형롤을 넣고 빼는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현장 맞춤형이라 스위스업체의 기계 원도면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공장의 사진이라도 있으면 참고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탈리아 그 공장은 강성노조가 있어서 아직도 공장을 폐쇄한다는 결정을 notice 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따라서 기계 설치를 위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contact 하여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바닥공사를 마무리하고, 설비를 들일 때 설비를 보며 정확한 모양과 사이즈, 위치를 맞추어 콘크리트 바닥을 드릴로 까고 깊이 1m 정도의 피트를 파야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새로 지은 공장에 흙먼지가 뒤덮이는 것은 물론이고 콘크리트를 깨부수는 소음 등은 어떻게 하고...

명색이 전문적인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입사했는데 이런 꼴불견의 상황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깜깜이(포커게임의 일종으로 상대방의 카드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치는 게임)를 치는 것이었는데, 일단은 이 원단을 어떻게 기계에 loading(올리는 일)하는 것이 안전하고, 운전원들이 편할까 생각하다가 생각난 것이 스케이트처럼 보드에 롤을 태워서 옆에서 슬라이드 형식으로 기계를 가로질러 기계 프레임 안으로 공급하는 방법이 떠올랐고 아무리 더 생각해 봐도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콘크리트 바닥 공사를 할 때, 그것에 맞게 미리 공장 바닥에 스케이트 보드가 움직이는 레일을 깔 수 있도록 기계라인과 크로스 형태로 30cm 폭의 4m 길이의 피트를 일단 파놓았습니다.

그리고 이형지와 표면지 각 원재료를 loading 하는 lift table을 위한 두개의 피트, 그리고 합지된 제품을 unloading(내리는 일)을 하기 위한 lift table을 위한 2m*2m의 너비의 1m 깊이의 세 개의 피트도 일단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약 이게 필요 없다면 흙으로 메우고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마감하면 되기에 그 비용과 노력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늘 발생하게 마련인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한 노이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일단 그렇게 바닥 기초공사를 하고, 철골 구조의 새 공장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렇게 건축공사를 1년에 걸쳐 끝낸 시점에야 본사에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탈리아 공장에 공장 폐쇄 소식을 공표하였습니다.

저와 한국의 기계 설치업체 사장님, 기계를 분해할 프랑스업체 기술자들이 이탈리아 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막 공장이 폐쇄된다는 통보가 이루어져 있어서, 현장은 노조원들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우리들이 그 공장 폐쇄 결정의 원흉이 된다는 듯이 저희들을 힐끔거리며 노려보는 듯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 현장에 가자마자 가장 궁금하고 걱정해마지 않던 그 부분을 제일 먼저 눈으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의 loading table 밑에는 제가 예상했던 그 피트들이 파여있었고, 더군다나 (un) loading table 옆에는 대략 30cm넓이의 약 4m가량의 레일이 깔린 피트가 바닥에 파여 있었습니다.

거기다 그 레일 위로 대형롤을 loading 하기 위한 철제 슬라이드 보드까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깜깜이에서 원페어로 뻥카를 쳐서 풀집을 눌렀을 때도 이처럼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난생처음 저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징표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2002년 16강에서 한국에 졌을 때, 우리들은 심판들이 부정한 판정을 했다고 전 나라가 흥분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유로 2004에서 16강도 못 들어가 예선 탈락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 이것이 우리나라의 진짜 실력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현장 답사 서너개월 후 우리가 다시 이탈리아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설비를 뜯기 시작했을 때, 모든 공장 직원은 다 떠났고, 설비와 전기기술자 두 명이 남아서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색함을 줄이기 위하여 역시 축구의 나라인 이 설비기술자에게 축구이야기로 말을 풀어갔습니다.

마침 제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한참 유로 2004가 진행 중이라 이 친구도 한국과 얽힌 이탈리아의 그 16강전을 답변으로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제가 머무르는 동안 그리스에서 벌어진 2004유로에서 무력하게 졸전을 펼치며 16강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래 가야 할 직장은 구했냐?"

저는 기계를 뜯어가는 입장에서 다시 그 친구의 개인사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 S(전기기술자)는 구했는데... 전기와 달리 나는 설비라 사실 쉽지 않은 것 같다."

제가 차마 뭐라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그 기술자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습니다.

"It's life(이것도 삶의 일부인 것을...)"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것이 인생(life)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세 번째 직장(예, 이글의 서두에 나오는 그 회사입니다.)으로 옮긴 저는 공장을 새로 짓게 되는데, 그 후 10년이 지나 제가 지은 공장도 이 이탈리아 공장처럼 폐쇄되는 결정을 마주하게 되고, 생산설비는 다른 해외 공장으로 옮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로써 제가 지은 공장 건물은 모두 산산이 부서져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흙바닥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아이고 세 번째 직장스토리를 제대로 풀기도 전에 결말을 스포일러해 버렸네요.)


이탈리아에서 눈치를 보며 남의 설비를 빼내왔던 피 묻은 손은 다시 제가 직접 설치했던 설비가 떠나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하는 눈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이렇듯 유사한 사건들이 반복되어 되풀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할 때, 특히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있을 때, 한 교회 선배가 제게 들려준 말이 있습니다.

“OO야! 시험이 닥치면 회피하지 말아라. 너는 도망하고 싶고, 회피하여 삥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면 그것은 어느새 돌아와 다시 너에게 나타난다. 네가 그것을 마주 서서 극복하여 통과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그분의 목표가 있기에 우리는 계속 그것들을 통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어디서 들어본 스토리 같다고요?

자신에게 찾아온 시험을 잘 통과하여 혼자만 레벨업이 되어 세상을 구한 유명 웹소설의 주인공이 떠오르네요.)


한편 다시 이탈리아 축구 얘기로 돌아가 유로 2004 이후 이탈리아는 이러한 시험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는 새로 국가대표 감독을 선임하고 국가대표팀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절치부심 다음 대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2년 후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의 전설이자 캡틴이었던 지네딘 지단을 박치기와 바꿔 퇴장시킨 후 역대 4번째 우승컵을 거머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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