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의 기원 이탈리아로 출장 가다.(3)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전도서 9장 7절)
"R대리님, 무슨 문제가 있나요?"
분해된 기계들을 모두 실은 차량들이 떠나고 프랑스의 Michael팀이 떠난 후, 저와 O사장님은 우선 렌트차량을 반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저와 O사장님의 두 엔지니어들(J와 E)은 차량 한 대를 렌트하여 두 달가량을 이태리에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공동으로 사용한 차 렌트비용은 반반씩 분담하기로 하였기에 렌트사무소에서 저는 그 반값만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아 예 사장님, 근데 렌트비용을 반씩 나누어 결제하기 어렵다는데요?"
저는 순간 당황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차피 렌트비용은 저의 출장 예산에 포함되어 있었고, 어차피 제 혼자서도 써야 할 비용이었습니다.
제가 다 결제할게요."
20여 년 엔지니어를 하시다가 이제 막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신 사장님에게 회사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은 자신의 주머니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걸 의미하였습니다.
" 아이고, 이걸 어째, 감사합니다."
O사장님은 속을 숨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떡였습니다.
"그러니까 대리님, 그럼 이렇게 된 거 전에 말씀드렸듯이... 모나코에 갑시다. 여행경비는 제가 다 댈게요."
며칠 전 기계의 분해일정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것으로 보이자, O사장님 역시 귀국표를 일정에 맞추어 미리 끊었기에 3일의 여유가 생겨, 시간을 어떻게 때울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공통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다면서 모처럼 어렵게 이태리로 왔는데, 유럽의 라스베이거스라는 모나코로 놀러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O사장님이야 회사의 주인이니 아무 거리낌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이탈리아 내부라면 모를까 모나코로 가는 비용을 여비정산서에 써놓고 결재를 받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경비를 다 대주겠다고 나오시니 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날 내친김에 볼로냐역에서 저녁 기차표를 예약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check out을 하고, 짐을 모두 프런트에 맡기고는 비교적 가벼운 짐을 챙겨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기차 안에서 O사장님은 왜 그렇게도 모나코에 가고 싶어 하셨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O사장님은 어릴 때부터 비교적 돈에 관한 한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소풍을 가서 보물 찾기를 하면 언제나 큰 보물은 아니더라고 적어도 하나 정도는 찾아내었고, 회사에서 코스톱을 쳐도 언제나 짭짤하게 용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주나 미국에 출장을 가면 반드시 카지노를 방문했는데, 호주나 미국의 카지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도박장이라기보다는 여유 시간을 보내는 레저시설 정도로 누구나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변명도 덧붙였습니다.
이 카지노에서는 어느 정도의 확률로 잭팟을 터트리게 하여 일정한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도록 잘 설계되어서, 사람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도박이 아니라도 따로 볼거리나 유흥거리도 많고요.
그리고 자신은 그런 곳에 가면 대부분 꼭 작게라도 잭팟을 터트려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강원도에 있는 카지노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잭팟을 터트리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 북부에서 모나코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카지노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시간적,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다 자신의 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북쪽으로 간 후, 서쪽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모나코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아침이었습니다.
저희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는 바로 모나코 관광에 나섰습니다.
모나코는 유럽의 부국으로 부유층들의 별장들이 있고,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휴양도시로 도시 하나가 국가인 나라였습니다.
시내는 크지 않았지만 이내 부두로 이어지는 길들이 있었고, 부두로 가자마자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커다란 초호화 요트들이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이삼 층의 초호화 요트들이 수많은 요트들 가운데서 유달리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요트문화의 첫 정착지인 화성의 부둣가에 가 본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요트와 보트의 차이, 요트의 가격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생각보다 보트의 가격이 저렴하였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산의 광안리, 해운대 해수욕장의 부둣가에 요트의 요람지가 형성되어서 대중들도 비교적 비싸지 않은 가격에 보트를 체험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화성에서도, 부산에서도 모나코에서 보았던 초호화 요트들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모나코에 온 목적은 카지노였고, 모나코라는 시내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요트를 구경하는 것에 만족하여 오후 늦은 점심을 먹고,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느긋하게 저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R대리님, 이탈리아에 이 개월 정도 있었는데,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나요?"
저는 커피잔을 들고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니, 비로소 출장지로서 일을 내려놓고 여행지로서의 이탈리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사장님의 질문에 바로 떠오른 답은 역시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명소인 베네치아였습니다.
(얼마 전 이태리출신이 자신의 나라를 가이드하는 여행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여기에서도 그 이태리 현지인이 추천한 첫 번째 관광지는 역시 베네치아였습니다.)
베네치아로 가기로 한 토요일 오전 우리는 아침 일찍 짐을 꾸리고, 호텔을 나서 4시간 길을 운전하여 베네치아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수많은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곤돌라를 타거나 유명한 명소를 둘러보며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지 역시 TV나 유튜브에서 하도 많이 볼 수 있으니, 저는 베네치아의 생긴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하는 것으로 가늠하겠습니다.
관광의 백미는 아무래도 음식이고, 저의 에피소드 역시 음식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때는 맛집에 대한 정보가 지금처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때라, 일단 J조장과 E대리,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은 베네치아의 이국적인 정취에 한껏 들떠,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으로 호기롭게 들어갔습니다.
전망이 확 틔인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국인 가족을 보이는 부부와 대학생인 듯한 딸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럽을 다니다 보니 자신의 몸 크기의 배낭을 메고 자식들에게도 그에 상당하는 배낭을 멘 유럽인 가족 여행객들을 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가이드가 낀 단체 여행으로 여행을 다니는데, 그중에는 간혹 가이드 없이 가족단위로 여행하는 한국여행객들도 보이는 때라, 우리도 가족 단위로 유럽 자유 여행을 떠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 가족들은 유럽가족여행객들과는 달리 백팩을 멘 아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벼운 핸드캐리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사실 가족단위로 왔다고는 해도 우리 한국사람들은 유럽인들처럼 여행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여전히 관광지를 구경 다니고 쇼핑을 위한 관광이 대세였습니다.
그런 가족들을 유심히 보면 재미있는 것은 한결같이 아빠들은 지쳐있었습니다.
아마도 보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여성들에 끌려 다니느라 그런 듯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죠?)
이 식당에 들어온 그 한국인 가족 역시 엄마와 딸이 앞장서서 식당으로 들어오고, 따라 들어오는 남자는 한껏 지치고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사사건건 다툼이 있었던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당시 가족이 하는 유럽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정말 큰돈과 시간을 내어야 가능한 것이었기에 우리 같은 평범한 직장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만큼 어렵게 왔기에 서로 귀중한 것(시간과 돈) 투자한 것에 대한 기대치가 컸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하다 보니 실제는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 일반사라 실망하게 되고, 서로가 바라는 것이 달라 이견과 갈등이 커져 유독 해외여행에서 더 심하게 싸우는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찌 되었던 이 가족들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메뉴판의 가격을 확인하더니, 인상을 쓰며 휙 돌아 나가버렸습니다.
아차 싶어서 저도 메뉴판을 확인했는데, 생선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생선 요리가 '100g에 10유로'였습니다.
'10유로라, 1Kg 정도면 기껏해야 10만 원 안짝으로 나오겠군. 어차피 실비 정산인데 뭐'
그때는 아마도 뭐가 씌었나 봅니다.
근사한 분위기에 훌륭한 바다뷰를 바라보며 마치 우리는 월급쟁이가 부릴 수 없는 호사를 부리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분은 식당을 나오면서 계산서를 보는 순간 산산이 깨졌습니다.
소위 현타가 온 것입니다.
"350유로!"
이 계산서를 개인경비로 처리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워 출장비로 정산처리하기 위해 저는 꽤 잔머리를 굴려야 했습니다.
이태리 또한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지만 이태리 음식에 대하여 많은 추억이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가이드가 24시간 다녔던 중국과는 달리 우리는 영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태리 식당에서 음식에 대한 도전들을 할 수 없는 가난한 직장인 출장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이태리 음식에 대한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데로 먹어야 했던 이태리 local 음식점에서의 추억이었습니다.
그렇게 설비의 분해가 끝난 후 저는 기계를 배에 싣고 운송하는 이태리 업체가 있는 조그만 읍에서 2박 3일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그 읍은 하도 작아서 업체에서 소개해준 호텔이 읍내의 유일한 숙박시설이었고, 식당도 마땅한 데가 없어서 호텔 안에서 운영하는 cafeteria가 유일하게 외부인이 갈 수 있는 식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어쩔 수 없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이곳은 도통 영어가 통하지 않는 동네였습니다.
식당에서 내놓은 메뉴판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애피타이저, 메인 디쉬, 그리고 디저트라는 메인타이틀 외에는 어떤 음식 메뉴도 제대로 읽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손가락으로 애피타이저에 있는 메뉴 하나와 메인 디쉬에 있는 메뉴 하나를 매끼마다 순서대로 지적해 가며 주문하고는, 도대체 어떤 음식일지 걱정 반 기대반으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다 맛있었습니다.
왜 이태리가 요리의 천국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 자 이제 석양도 지곤 했으니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 더 하고 슬슬 카지노로 이동해 볼까요?"
사장님의 말씀에 저는 퍼뜩 정신이 돌아와 이태리 관광의 추억에서 깨어나 우리가 있는 모나코에서의 출장 목적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카지노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한참을 둘러본 끝에 사장님의 감으로 적당하다고 생각된 한 카지노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영화에서만 보던 번쩍거리는 실내 네온사인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블랙잭을 하는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한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벌게져서는 100유로로 보이는 돈다발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신기해하며 한번 둘러보기를 원했던 저의 바람과는 달리 그 사장님은 익숙한 듯 바로 슬롯머신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직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한 바퀴 돌더니 한 머신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더니 자리에 착석하였습니다.
저도 엉겁결에 그 옆에 앉아서 사장님께 머신을 돌리는 요령을 배운 후 생전 처음 슬롯머신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제가 찾았던 100유로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저는 사장님과는 달리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찾기 놀이에서 제대로 보물을 찾은 기억이 없었기에,
'역시나 없던 운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질 리가 있나?' 그리고 이내 저의 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아쉬워하지도 않고 슬롯머신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곤 과연 옆에 있는 사장님이 장담한 것처럼 돈운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사장님 옆에서 계속 지켜보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사장님은 자리에 앉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갑자기 두 손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이 바로 그 자리에서 1000유로에 해당하는 잭팟을 터트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여행경비를 대겠다고 하셨던 사장님에게 이 여행은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공짜여행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기차를 타고 모나코 옆의 니스 해변으로 향하였습니다.
니스는 모나코에서 기차로 채 30분이 걸리지도 않은 지척에 있었습니다.
이 짧은 거리에 이태리, 모나코, 프랑스 세 개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스는 프랑스 최대의 남부 휴양지라고 들었고, 칸 영화제가 열리는 칸의 인근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니스 시내는 매우 한산하였고, 해변 역시 물 반 고기반의 최대 휴양지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척에 두었던 부산 사나이가 보기에는 너무 적막해 보이기까지 할 만큼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띄엄띄엄 반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아닌 중년의 사람들이 한가로이 누워있었을 뿐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어쩌면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는 관광객의 도시라기보다는 지역에 잠시 머물면서 주민들처럼 먹고, 마시고, 쉬어가는 일상의 쉼을 즐기는 유럽인의 휴가 방식에 맞추어져 있는 휴양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베네치아 거주민들이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이 지장을 받게 되자 모든 관광객들에게 통행세를 물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유럽인들 다운 발상이었고, 베네치아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스의 시내 풍경은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별다른 특징 없이 지나갔을까요?
다음은 이탈리아 마지막 에피소드인 피렌체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역사상 최대의 부자였고, 최고의 지혜자였던 솔로몬은 인생 말미에 전도서를 지으며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니 결국 인생은 무상한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복된 것이 있으니 자신의 일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 대하여 보상하실 때 그것을 받고 기쁨으로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인가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