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6)

서양문명의 기원 이탈리아로 출장 가다.(4)

by 리본안
피렌체의 두오모성당,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 주인공이 10년 후 만나기로 약속했던 낭만의 장소입니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9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6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누가복음 19장)


제가 이태리에 출장을 갔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두 명의 작가는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을 출간했고,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학창 시절 만난 사랑했던 남녀가 헤어져 10년 후 재회하는 러브스토리인데, 남자 작가는 피렌체에 사는 남자 주인공의 열정을 썼고, 여자 작가는 밀란에 사는 여자 주인공이 이제 사랑에 대해 냉정해져 버린 감정을 담담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책의 여주인공이 옛 연인에 대하여 냉정한 시선으로, 그 이별의 세월을 견디어냈던 것은 아마도 여주인공이 살았던 패션의 도시 밀란의 현대화된 모던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남주인공은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서 옛 연인을 생각하며 다시 만나서 불꽃을 태우길 바라는 열정을 품고 살아갑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밀란과 피렌체는 차로 약 두 시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출장을 가기 전 이태리 지도를 보고 주말에 들러 볼 곳으로 최우선적으로 생각한 곳은 당연히 밀란이었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축구광입니다.

그러니 당시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AC밀란이 있는 도시이자 그에 못지않은 유명클럽인 인터밀란이 있는 도시인 밀란을 1순위로 꼽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밀란은 패션의 도시로 온갖 명품샾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러나 저는 밀란을 단 한번 가본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때가 프로축구의 휴식기인 이유도 있었지만 함께 동행했던 J와 E, 그리고 저까지 세명의 총각이 패션의 도시, 세련된 모던 시티의 분위기에 무슨 흥취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두 번째 우선순위로 생각하여 두 번째 주말 방문지로 선택한 피렌체는 첫인상부터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래서 밀란은 한번 방문하였고 피렌체는 주말마다 들르곤 했습니다.

피렌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키워내면서 350년간 도시를 다스린 메디치 가문이 건설한 도시입니다.

역시 밀란의 대성당과 견줄 수 있는 두오모성당이 피렌체 한복판에 웅장하게 서 있고, 주위로 많은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들을 가지고 있는 예술의 도시입니다.

첫 방문 때는 두오모성당은 물론이고, 그 유명한 보티첼리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 단테의 생가 등 유적지들을 관람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를 자주 가다 보니, 이제는 피렌체의 중앙시장을 다니고,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가 발이 아프면 그저 건물의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멍 때리고 사람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 때는 관광객이 아니라 피렌체 시민이 된 듯이 편안해져서, 마치 여기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한가하게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자 주인공처럼 마치 피렌체에 미술공부를 위하여 머무르고 있는 유학생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피렌체의 상징은 두오모 성당인데, 이 성당은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내부, 외부 건축물 등 볼만한 것들도 많았지만,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이 여주인공의 30살 생일날 만나기로 한 장소인 만큼 성당 전체에서 낭만적인 풍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문득 이곳이 관광지가 아니라 예배당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예배를 드리러 온 것처럼 예배당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분에게로 가면서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탕자처럼 살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다는 사실은 몸에서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성당이 150년간 지어졌으니, 그 기간 동안 누구는 아마 이 성당을 짓는데, 자신의 평생을 바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교회당)을 짓는 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알고, 평생을 돌을 조각하면서 살았을 인생들이 떠올랐습니다.

두오모 성당의 휘황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을 보고, 웅장한 석조건물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많은 그림, 예술품들을 봅니다.

그들에게 일이라는 것은 불멸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새겨 넣는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역사 속 다양한 인생들에 대한 상념이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다가 어느새 공간을 가로질러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였고, 시간 또한 아득히 거슬러 가 만리장성에까지 머무르며, 중국여행 때 느꼈던 감회들이 떠올랐습니다.

4년 전 그 중국여행기 시절 저는 북경사무소에서 버스를 타고 만리장성을 찾아갔었습니다.

만리장성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서 올라 만리장성의 한 누각에 서서 바라보니, 장성은 능선을 따라 앞으로도 뒤로도 끊임없이 성벽으로 이어져 있어 그 장대함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벽에 있는 돌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과연 이 방대한 건축물들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상상을 한 순간 갑자기 이 성벽의 돌 하나하나에 맺혀 있는 수십만 민중들의 피땀방울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를 세웠던 유방은 진시황제가 통치하던 시절, 조그만 시골마을의 한량으로 지내다, 그 마을의 소소한 관리직 감투를 받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업무가 만리장성을 쌓을 인부들을 마을에서 차출하여 만리장성 공사장까지 호송하는 업무였습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고, 국가 체제가 채 정립되지 않는 시절에 만리장성을 축조하러 먼 이역의 땅으로 간다는 것은 곧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로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공사장으로 끌려와서 혹한과 혹서에서 굶주림으로 고생하다가 다들 하염없이 공사현장에서 죽어나갔습니다.

자신의 고향의 친인척들, 지인들을 그렇게 사지로 몰 수 없어서 유방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잠적해 버리며, 결국 반란군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우리는 역사책의 한 줄로서 그 기록을 찰나의 순간으로 읽고 지나가지만, 그 한 줄에는 기약 없이 끌려와서 한 인생을 마감해 버린 많은 세월 동안 동원된 수백만 민중들의 생이 고스란히 묻혀 있습니다.

평생을 돌을 쌓으며 살다가, 한 줌의 재로 부질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달픈 인생들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삶은 무수한 파도 속에 흔들려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잊혀 갔습니다.


그리고 시공간을 떠돌며 하염없는 상념에 잠겨있던 나의 의식은 직장일을 하러 현재 머나먼 이 이국땅까지 와서 커다란 성당에 말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머물렀습니다.


나에게 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의 인생은 어떠한 족적을 남기게 될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충성된 종에 대하여 들려주십니다.

그 종은 주인에게 받은 한 므나로 열심히 장사를 해서 열 배의 수익 혹은 다섯 배의 수익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의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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