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7)

유럽인들의 한국음식 여행 가이드

by 리본안
홍합탕 프랑스 친구들의 최애 음식 중 하나.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태복음 13장 3절~4절)


"공장장님, 아무리 제가 총각이라지만 그래도 어떻게 얘들을 매번 데리고 저녁을 먹이라구요?"

" 야 R대리, 안 그러면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지불해야 하잖아? 한국 사정을 모르는 걔들에게 맡겨 봐라. 숙박비, 식비 일당 몇 유로로 해서 부풀려서 부를 거고...

R대리도 알잖아. 우리 프로젝트 예산 이미 목에 걸렸어. 아차 하면 이제 비용이 예산 오버야.

'아무리 그래도 저도 퇴근하고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라는 말이 막 나오려고 하는데 공장장님이 이미 결정했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저의 입을 틀어막으셨습니다.

"야 너도 좋잖아? 어차피 저녁 혼자 먹어야 하는데, 이러면 밥값도 안 들고..."

한국에 기계를 설치하는 동안은 프랑스업체에서 두 명의 엔지니어를 보내어 자문을 해주기로 하였고, 기계를 다 설치한 후에 시운전 단계에는 기계제조업체인 스위스업체에서 기계 쪽 엔지니어를 보내고, 전자 제어 쪽은 전자부품을 납품한 독일부품회사의 독일인 기술자가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개인 자문료는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대신 그들의 여행경비 (비행기티켓과 교통비, 숙박비 일체)는 우리가 직접 계산하기로 하였습니다.

실비로 우리가 직접 계산하면 조금이나마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약 2개월 동안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그들에게 특히 매일 저녁을 먹일 식당으로 가이드하고 직접 계산을 하는 임무를 누군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당연히 프로젝트 매니저인 저에게 그 업무가 떨어졌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주중에는 공장이 있는 도시의 맛집을 고깃집 중심으로 거하게 대접하면서 저도 혼자 먹기에 과한 음식으로 호사한 점은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일이 없는 주말에는 서울로 데려와 저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들은 젊은 친구들이라 관광이나 남산의 유명한 나이트클럽을 전전하고 매주 월요일 식비와 숙박비 영수증을 저에게 건네주곤 했습니다.


"R, 왜 이제야 여기로 데려왔니? 이 음식이 우리의 최애(most favourite)야!"

M과 다른 프랑스 엔지니어를 매일 다른 메뉴로 대접해야 했던 저는 마침내 새로운 소재가 고갈이 나서, 시내의 한 칼국수집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밥을 먹였으니, 얘들한테는 이제 밀가루 음식이 그리울 것 같아 가장 무난한 (바지락) 칼국수 집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 야 한국에서는 귀한 손님들은 고기 위주로 접대한다고...

이 칼국수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음식인데, 손님에게 이것을 대접할 수 없잖아?"

그들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저는 민망해하며 변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식당은 홍합을 아무 양념도 없이 그냥 소금에 간단히 삶아서 내놓았는데, 두 프랑스 미식가들은 이것 역시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둘 다 한국이 처음이었기에 초기에는 주말에 제가 서울로 데리고 다녔는데 이도 시시해졌는지 마침내 주말은 저들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니 가장 돈이 적게 들고 시간을 보내기도 좋은 게 등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공장 인근의 산에 등산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평야가 대부분인 프랑스에서는 등산이라 하면 알프스에 가서 전문적인 클라이밍 장비를 갖추고 이박 삼일 정도 산에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에게 혹시나 하여 제가 추천한 것인데 K등산의 재미가 쏠쏠했나 봅니다.

그러다 어느 월요일 M은 허름한 간이 영수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곳은 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조그만 칼국수 전문점이었는데, 드디어 숙소 근방에서 단골집을 찾았다고 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 식당은 메뉴가 하나였기에 언어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이태리 음식이 보편화된 요즘 저도 서양식 스파게티에 익숙해졌는데, 스파게티의 주재료가 바지락이나 홍합인 것을 생각해 보니, 그 두 친구들이 왜 그렇게 칼국수를 보며 반색을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번 토요일에 우리 회사 축구동호회와 업체사람들 간의 친선 축구시합이 있거든... 너희들도 업체에서 왔으니 업체팀 소속이고... 그런데 시합 끝나고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음식을 대접할게"

한국업체의 J와 E조장의 감독하에 한국의 노련한 아저씨들이 기계를 순조롭게 설치하고 있었기에, 프랑스의 M과 그 친구 역시 이태리에서 J와 E가 그랬던 것처럼 업무 관련하여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여러 곳을 다니고 체험도 하곤 했지만 2개월이라는 기간은 결국 그들도 일상생활을 하는 거주민이 되어가면서 이제는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들을 위해 조그마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 그 특별한 음식이 뭔데?"

간장 게장을 유달리 좋아할 정도로 미식 탐험가였던 M의 친구 역시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을 드러냈습니다.

" 응 개고긴데... 먹을 수 있겠어?"

"Why not?"

그때는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국제적으로 문제삼은 것에 대하여 말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축구시합을 마치고, 우리 한국팀은 우리가 자주 갔던 그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M과 M의 친구는 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자신의 테이블에 근사하게 차려지는 음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마음에 꺼리면 다른 메뉴를 시켜줄게?"

그러나 M은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모든 음식이 차려졌을 때 저는 "Bon appetite!"라고 말하고는 웃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사실 이 음식은 dog이 아니라 goat야. 사실 한국사람들도 대부분 개고기를 먹지는 않아. 먹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이 염소탕이 보신탕과 맛과 고기의 질감이 거의 유사해. 그러니 간접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먹어. 이 염소탕 역시 몸에 좋은 것이야."

그제야 두 프랑스 친구들은 안도의 표정인지, 아쉬운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편하게 음식을 즐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프랑스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고 우리들처럼 이벤트성 회식을 기대하는 정도로 일상이 되었습니다.


" 야 주말에 뭐 하니? 이번 주에 부산에 가는 게 어때?"

맛과 멋을 즐기는 프랑스애들은 자신의 업무를 마치고 귀국을 했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기계의 작동상태를 점검하고 시운전을 하기 위하여 기계제조업체에서 스위스친구와 독일친구가 왔습니다.

그런데 G(독일) 엔지니어는 그렇게 맛집 탐방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점심은 호텔 앞 P빵집에서 사 온 빵이나 케이크로 때운 후 저녁은 호텔에서 맥주와 함께 혼밥을 즐기니, 저로서는 상대적으로 저녁에 자유롭게 되어 편했지만, 조금은 아쉬운 감정도 있고, 소위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프랑스업체 친구들을 가이드하면서 친하게 지내어둔 덕분에 일이 마무리될 때, 큰 덕을 본 경험이 있었는지라 (이 부분은 다음 회차 "한국사람들의 요령껏 일하기"에서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고요.), 저는 이 친구와 나름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같이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생긴 것입니다.

G도 이제는 주말을 홀로 보내기 심심하였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 응 너네 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한국에 들어와 우리 한국 국가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잖아?

함께 보러 가자."

당연히 축구의 나라에서 왔으니 G는 흔쾌히 승낙을 하였고, 함께 와 있던 스위스 기술자도 당연히 동행하는 것으로 하여 저는 축구동호회에 있던 회사 후배와 함께 토요일 일찍 차를 몰고 부산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점심으로 이걸 먹는 건 어때? 이게 부산 음식의 대표주자인데., "

부산으로 갔으니 당연히 부산의 명물인 곰장어구이를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식당 앞 수조 안에 꼬물거리며 엉켜있는 곰장어를 바라보는 G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들에게 곰장어는 뱀의 일종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저는 G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골목을 돌아 나와 시내의 커다란 횟집으로 G를 데리고 갔습니다.

어제 공장에서 여행을 앞두고 모처람 G와 잡담을 나누면서 G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는데, 예상외로 일본식당에서 회를 몇 번 먹어봤는데, 좋았더라고 말한 것을 저는 기억해두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식 횟집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산에서 가장 크고 대중적인 이 횟집을 미리 점찍어 두고 있었습니다.


"일본식당에서는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하던 거야"

커다란 상에 한없이 차려지는 음식들에 G는 놀라운 표정과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비싼 물가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온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저는 오늘 저녁 축구경기 예상스코어를 물었습니다.

" 응 3대 0 정도?. 독일은 세계 최강이야"

'이 녀석이 아무리 독일이 세계 최강이라 해도... 접대를 받는 처지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없이...'

그때 나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스위스친구가 끼어들었습니다.

"난 뭐 2대 0 정도. 한국도 잘하니까..."


경기는 밤늦게 10시가 넘어 끝났고, 예약해 둔 호텔로 데리고 가는 동안 G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2004년 가을 국내파로 이루어진 한국대표팀은 발락과 칸 등 정예부대를 이끌고 온 클린스만감독의 독일대표팀을 3대 1로 꺾었습니다.)


왠 뜬금없는 축구이야기냐고요?

사실 이 글에는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것에 대한 저의 탐색의 과정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외국과 경쟁하여 보다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등에 대하여 제가 얻은 교훈들도 풀어낼 예정입니다.

자 그럼 일하는 얘기로 돌아가 우리 한국 공장에서 이루어졌던 프랑스인, 한국인, 독일인들이 일의 성공을 위해 겨루었던 경쟁(시합)에 대하여 다음 화부터 본격적으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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