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껏 일하는 한국인(2)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장 24절)
"You go back your home!"
저는 손가락으로 G를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G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We don't need you any more! (이제 너는 더 필요 없어!)"
G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고 씩씩거리더니 현장의 사무실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당황한 인도인과 영국인이 전무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전무님은 눈짓으로 빨리 G를 따라가라고 지시하셨고, 두 친구는 G를 따라 현장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R대리, 지금 시점에 G 보고 집으로 가라니?"
전무님은 현장 한 켠 모서리로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전무님 제 생각에는 G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했으니 그것으로 그의 역할은 끝났고요. 이제는 생산 조건을 잡아야 하는데 저는 결국 우리 생산팀에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친구 인건비가 얼만데? 기간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저 친구도 일을 마무리해야 돌아가는 거고... 여기서 지체하면 돈이 따블로 드는데?"
"예 압니다. 하지만 저 친구는 원단을 생산한 경험은 없잖아요? K과장님 팀이 해낼 겁니다."
저는 고개를 돌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K팀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달 전 이 새로운 설비를 운전하기 위하여 생산팀에서 기계를 돌리던 직원 중 소위 어벤저스팀이 차출되었습니다.
현장 직원 중 최고 연장자이자 가장 경험이 많은 K과장을 비롯하여, 각 부분별로 최고의 손기술을 가지고 있던 4명의 직원들이 직급별로 뽑혔습니다.
"야 너희도 보다시피 지금 기계가 다 설치되지 않았는데 너희들을 왜 미리 뽑은 줄 아니? 할 일 없이 놀라고 그런 게 아니야! 어차피 너희 기계가 될 거니 미리 손 때 묻혀서 정이라도 들이라고... 내가 공장장님한테 요구해서 따낸 거야"
K과장님은 이 프로젝트에 조장을 자원했습니다.
"야 나라고 오고 싶겠냐? 기존라인에 있으면 궂은 일은 애들이 다하는 데 몸도 편하고...
그런데 여기 오면 한마디로 또 노가단데.., 허구한 날 날밤도 까야하고"
저는 K과장님이 나서 주셔서 고맙다고 연신 술자리에서 얘기하는데, 과장님은 한숨만 쉬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어쩌냐? 라인을 깐 경험이 있는 게 나뿐인 걸. 쟤(현장의 넘버 투)도 해봤지만 그때는 막내라. 뭘 알고 했겠냐? 시키는 데로만 했을 뿐이고..."
실제로 이 생산팀들은 기계가 현장에 설치되는 과정을 초기부터 직관하였고, 때로는 업체 사람들의 손이 부족하면 자진해서 지게차를 운전해 준다든지 하면서 이미 자신의 기계인양 손 때를 묻혔습니다.
그런 모습은 앞에 설명한 보전팀의 태도와는 대조가 되었고, 그 영국인 친구가 한국의 팀 문화에 열받아 술에 뻗은 그 술자리에도 이 K팀은 우리는 한 팀이라며 함께 하며 그 영국인의 투정을 받아줬습니다.
그 술자리 다음날 아침 K과장님은 그 영국인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K팀의 문화에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생산팀을 불러놓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부적으로 우리 조직 안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끝내지 못하면 결국 우리 한국인들 전체가 욕먹는다. 이것을 못하면, 우리 한국인들 망신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최대한 R대리를 도와서 어떻게 하든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해.”
그렇게 시운전의 키는 독일인 기술자에게서 한국의 현장 근무자에게 넘어갔습니다.
전무님은 저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저는 G가 있는 현장 사무실로 가 G와 화해를 했습니다.
G도 결국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옆에서 K과장팀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히어로인 K과장님은 자신이 15년 경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여 기계의 가동 조건들을 맞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괴물은 좀처럼 길들여지길 거부하였고 원단은 계속 헛돌며 말리거나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과장님, 오늘은 그만하시죠? 너무 늦었는데..."
현장의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K과장님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보스의 눈치를 보는 현장 작업자들의 작업복에선 과로로 인한 쩐내가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R대리 G에게 약속한 기일이 이번 주까지 지?"
"예, 내일, 아니 오늘이네요. 오늘이 금요일이니 오늘 까집니다. 오늘 못 끝내면 주말에도 해야죠."
"그래."
K과장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아니 오늘이네. 오늘 다시 하도록 하지."
"예 그럼 가서 푹 자고... 그럼 오후부터 돌릴까요?"
"응 11시 반까지 오라고 해. 같이 점심 먹고 준비하는 걸로."
다음날 1시에 다시 모두가 현장 기계 앞에서 집결했을 때, 모두의 얼굴은 숙연하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오늘은 초기 속도 세팅을 80m/min으로 해야겠다. 보통 우리 라인에서 하는 50m/sec에서는 밸런스를 잡지 못하는 거 같아. 롤이 너무 커서."
K과장은 지금껏 해왔던 경험치를 넘어보기로 했고 여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 로딩 1 준비 완료"
기계가 길이가 200m가 넘고 소음이 있다 보니 우리는 무전기를 통하여 소통을 해야 했습니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준비 완료를 받은 K과장이 다시 한번 속도를 세팅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자. 매뉴얼 스타트 시작"
그러자 메인보드를 담당하고 있던 넘버 투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하여 들려왔습니다.
"매뉴얼 스타트 온"
드디어 기계의 모터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고 원단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기계는 단숨에 80m/min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조마조마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발 10분만 버터라.'
여태껏 10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지 몰랐습니다.
힐끗힐끗 자신의 초시계를 보고 있던 과장님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고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자 모두 오토로 스위치 온"
"리와인더 오토 온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포지션까지 오토로 스위치를 바꾸었다는 보고가 오자 K과장님은 메인보드에서 기계를 중앙 컨트롤 모드로 바꾸었습니다.
"자 속도 올린다. 100으로"
모두는 침묵 속에서 게이지의 속도판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K과장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50"
...
"200"
"250"
저는 기계의 웅장해지는 소음으로 현재의 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K과장의 입에서 "450"이라는 소리가 나왔고 기계는 450m/min 속도에서 5분 정도 웅웅 거리며 힘차게 돌아갔습니다.
마침내 성공한 것입니다!
(기계의 스펙은 500m/min이었지만 기계를 분해하고 다시 세팅하였기 때문에 일단은 90% 정도의 가동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그 영국인 친구는 박수를 치며 저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G 역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저는 G가 내미는 SAT. (Site acceptance test, 현장인도 테스트) 서류에 완료 사인을 하였고, 우리는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G는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예정대로 탔습니다.
"야 R대리, R대리는 밥값을 했으니 이삼 년은 놀아도 된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프로젝트매니저로서의 저의 역할도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공장장님께서 저를 만나실 때마다 이런 말을 하셨는데, 그것은 제가 큰 성과를 세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공장에서 더 이상 저의 역할이 없어서 제가 불안해할까 봐 걱정을 해주시는 면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조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다시 프로젝트매니저를 뽑는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침 외국계회사에서 새로 공장을 지으니 프로젝트매니저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연락이 헤드헌터에게서 왔습니다.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그 사건이 일어난 그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게 된 그 세 번째 회사에서 저는 그 사건, 큰 실패를 접하고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본격적인 여정을 하게 됩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마태복음 13장 37절~38절)
10년이 지나 직장생활의 성과가 무엇일까 회의감이 들 즈음 저는 추석명절을 쇠고 이 공장을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이 공장은 저의 아내의 친정집이 있는 도시에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제가 설치한 이 기계 덕분으로 그동안 매출이 4배나 증가하며 계속 번창해 온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아들들을 세상에 뿌리십니다.
그것은 밭(세상)에서 천국(하나님나라)의 열매를 맺고자 함 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을 통해 세상이 그 풍성한 열매를 먹고 누릴 수 있도록 복을 주십니다.
10년 후에야 발견한 것은 성실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나, 저는 탕자로 살아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새들이 먹어버려 저 자신에겐 아무런 열매도 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