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8)

요령껏 일하는 한국인(1)

by 리본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태복음 13장 18절~19절)


"반장님!, 컨테이너는 제일 끝번부터 순서대로 따셔야 돼요~."

기계설치의 한국 총책임자인 J조장은 공장 하차장의 로딩덱 위에서 팔짱을 끼고 결연한 자세로 대형컨테이너 트럭에서 차곡차곡 하차되는 커다란 나무박스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신(한국업체)의 솜씨를 발휘할 때가 되었고, 더더구나 라이벌인 프랑스업체에서 온 M과 전기기술자 친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더욱더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반장님, 좀 살살하세요."

모두가 20대였던 프랑스 일꾼들과 다르게 J조장의 지시하에 움직이는 한국의 일꾼들은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었습니다.

J조장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도, 경험 20년 이상의 베테랑들은 얼굴 찡그리는 법 없이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능숙하게 20여 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하나씩 열고 나무 박스에 싸인 기계들을 공터에 가지런히 놓고 있었습니다.


기계를 분리하는 것은 이미 설치되어 눈에 보이는 데로 기능 단위로 큼지막한 연결부들을 단순이 분리하는 일이라 눈대중으로 성큼성큼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생전 보지도 못한 대형 기계의 토막 난 단위들을 도면을 제대로 check 해보지도 않고, 통밥으로 성큼성큼 제자리에 배치해 가는 반장님들의 모습은 저 같은 무경험자가 보기에는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M과 그 친구도 우리 반장님들의 요령껏 일하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저를 보고 웃으며 엄지 척을 올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한국아재들의 기계 설치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속도라면 예정된 2개월이 아니라 한 달 반 만에 기계 설치를 모두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계단위들을 대략 연결하며 진척이 빨라 일정보다 일찍 마칠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를 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J조장이 더 이상 진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 멈칫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습니다.

메인기계들은 다 연결되었고, 이제 기계에 공급되는 냉각수나 에어공급 파이프를 연결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배관의 잔가지들을 연결하는 단계에서 이 가지들의 정확한 연결지점을 찾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현장아저씨들도 J조장의 지시가 나올 때까지 어쩌지 못하고 현장에서 초조하게 대기하는 상황들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전기선을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일일이 연결점을 마킹하고 다녔던 J조장의 파트너인 E대리도 자신이 미처 mark 하지 못했던 애매한 연결점들이 나타났는지 버벅대기 시작하였습니다.


“Help!”

급기야 J와 E는 프랑스기술자 M과 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한국음식 탐방이 출장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버렸던 프랑스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계를 해체할 때 스케치했던 도면을 보여주며 일일이 그 지점들을 지적해 주었고, 옆에서 직접 장갑을 끼고 함께 작업을 하며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계 설치공사도 2개월이라는 계약기간을 꼬박 채우게 되면서, 계약기간 종료일을 겨우 하루 앞두고 업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사를 겨우 마무리 날 우리들은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You are the best"

M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국의 J와 아재들의 솜씨를 치켜세웠습니다.

"Oh, no, no! you are the best!"

J조장은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심 어린 자세로 M에게 고수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프로젝트를 결국은 함께 성공한 것과 이태리에서 2개월, 한국에서 2개월 4개월 동안 우리가 쌓아 올린 우정과 추억들을 기념하며 밤새워 술을 마셨습니다.


표준대로 일하는 프랑스와 요령껏 일하는 한국인들의 승부, 승자는 누구일까요?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고 서로 양보했지만, 저를 심판이라고 세워주신다면, 한국사람들의 도움 없이 일을 성취한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겪었을 한국인들의 상황을 때, 저는 프랑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예?

유달리 모든 면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한국부심에 차있는 분들에게 이 판정이 섭섭하시다구요?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는 늘 그렇듯 마지막에 등장하는 우리의 히어로가 있습니다.

누구냐구요?

예,

제가 앞에 언급한 바 있는 바로 그 한국 건축 기술자들을 졸졸 뒤 따라다니며 나사를 돌리던 K과장입니다.

(대부분 등장인물의 이니셜은 가공하였는데, 우연하게도 이분의 실제 성은 한국의 대표 성인 'Kim'이네요?)


기계는 하드웨어적으로 설치가 완료되었고, 이제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이 남았습니다.

소프트웨어적인 업무는 기계에 프로그램을 입히고, 실제로 가동하여 제품에 맞는 공정 조건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애초에 기계를 디자인하고, 제작한 업체에서 기계 전문가(스위스인)와 제어 프로그램 전문가 G(독일인)를 한국에 보내었습니다.

(예, 앞서 부산까지 축구경기를 함께 구경하러 간 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프랑스업체와 한국업체들이 설치한 기계를 점검하고, 본격적으로 운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R대리님, 저, 저, 큰일 났습니다."

우리 프로젝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이고 이제 가장 중요한 시점인 시운전을 앞두고 있었는지라 한국 공장에는 아시아기술총괄이신 전무님과 그의 팀 멤버인 인도인 친구와 영국인 친구가 와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전무님과 이 두 친구와 함께 앞으로의 일정 등에 대하여 점검 회의를 하고 있는데, 새로운 라인을 운전하게 될 현장근무자 중 막내가 회의실로 들이닥쳤습니다.

"어? 무슨 일이야?"

전무님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 온 막내의 무례함에 언짢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 아 예 전무님,,"

막내는 전무님이 계신 것과 옆에 외국인 스태프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습니다.

"어 OO야, 왜? 무슨 일 생겼어?"

제가 질문을 하자 막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다시 저를 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 예 지금 난리 났습니다. 지금 K과장님과 그 독일친구하고 한판 붙었습니다. 서로 키(Key)를 내놓으라고..."

저는 답변을 할 새도 없이 바로 사무실을 박차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K과장과 G는 서로 삿대질을 하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영어라고는 도통 통하지 않는 현장작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G는 제가 달려가자 마치 우군을 만났다는 듯이 기세가 등등해졌고, K과장은 잠시 눈치를 보는 듯 뒤로 물러섰습니다.

"Let's him go home. (저 친구 집으로 보내!)"

저는 흥분하여 언성을 높이는 G를 막아서며 K과장님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도대체 프로젝트매니저로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라고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구경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고 빈둥거리는 듯 보이니 그러실 수 있습니다.

저의 역할은 실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그 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혹시 업체 간, 팀 간의 업무상 빈틈이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든 메꾸어주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건물을 짓고, 거기에 유틸리티설비를 깔고, 메인 기계 및 액세서리 설비들을 구비하고, 기계에 유틸리티를 연결하며, 시운전을 하고, 그 이후 생산을 할 수 있도록 stand by 상태로 키를 기존 조직(생산팀)에 인계하는 것입니다.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자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특성상 업체를 너무 쪼개다 보니 프로젝트 과정에서 소위 번번이 구멍이 발생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즉시로 투입할 수 있는 내부자원(기계와 전기기술자들인 공무팀과 기계를 실제로 돌리는 생산팀의 현장근무자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계셨던 공장장님은 언제든지 공장 내 모든 자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셨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조직에서도 소위 자기의 업무범위(Job descrption)를 정(define)하여 이것을 토대로 자신의 일을 하고 평가를 받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의 JD에 있는 업무 외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외국계회사이기에 더더욱 이러한 역할 구분들이 아주 명확하였습니다.

특히 사무직으로 분류되었던 공무팀은 자신의 업무는 기존에 설치된 기계의 유지/보수이니, 이 프로젝트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것이고, 시운전을 완벽히 끝내고, 키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그때부터 맡겠다고 하는 태도를 계속 견지해 왔습니다.


"매일 아침 8시에 공무팀과 현장근무자들은 여기에 집합해"

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이신 전무님은 사실 이 공장을 초기부터 관리하였던 공장장님이셨습니다.

여기에 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두 전무님의 공장장시절부터 다녔던 사람들이어서 전무님 말이라면 꼼짝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모든 공무팀의 팀장, 엔지니어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여기에는 기계를 운영할 외부업체 기술자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야. 그리고 아시다시피 R대리는 기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그러니 특히 Y팀장과 P과장이 항상 기계와 전기 쪽 달라붙어 기계의 모든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달라 붙여 해결해야 해.

이 기계는 새로 발주한 기계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던 우리의 기계라구... 그러니 저 독일친구나 스위스 친구에게 맡기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돼."


특히 전무님께서는 공장에서 오랫동안 기계를 유지 보수한 설비와 전기 전문가인 Y팀장 이하 보전팀에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전무님 말씀의 효력은 그때뿐이었습니다.

공무팀이 현장에 있었는 것은 단지 그 아침 미팅 때 잠시이고,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전혀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공장장님은 이곳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전 직원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현장에는 기계의 스위치를 점검하고 운전 상태를 check 하는 G과 스위스친구 밖에 없었고, 현장 운전원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G의 손짓, 발짓 지시 하에 원단을 걸어주고 내려놓고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계는 10년을 사용한 기계였고, 우리가 기계에 거는 원단이나 제품의 종류도 유럽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라, 기계는 작동하는 데는 이상이 없었지만, 원단을 걸어 놓고 기계를 돌리면, 얇은 원단이 균형이 맞지 않아 찢어져, 기계를 다시 멈추고 돌리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시운전 마감기한이 일주일 남게 되자 G는 초조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무님이 데려온 인도인, 영국인친구도 늘 새 기계만 설치해 왔고, 모두 제작업체에게 맡기고 나중에 키만 받는 turnkey 스타일의 프로젝트만 해왔습니다.

이러한 turnkey 스타일의 프로젝트는 나중에 업체에서 시운전한 후 SAT(site acceptance test)가 완결되면 사인만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생기는 trouble shooting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답답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What a fXXk this team! (무슨 팀이 이리 X 판이야!)"

전무님 밑에 있던 이 영국인 동료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소주를 큰 맥주컵에 따라 마시고 있었습니다.

"What made you so upset?(야 왜 그래?)"

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날따라 과음을 하고 있는 이 친구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How poor my friend! (아휴 이 불쌍한 친구야!)"

그 영국인 친구는 차마 말을 못 하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저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영국인 친구는 이럴 때, 기존의 기계를 돌리는 데 경험이 풍부한 공무팀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한다라고 몇 번을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무님이 그렇게 지시를 해도, 현장에 아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다들 어디 갔냐며 불평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기계의 시운전은 전혀 나아지는 전망이 보이지 않고, 이 프로젝트의 전망도 불투명해져서 결국 이날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그날 그렇게 190cm가 넘는 거구의 영국인은 마침내 바에서 술에 취해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습니다.

같이 술을 먹던 현장직원들과 함께 이 친구를 부축하느라 낑낑대고 있는데, 취해 있던 이 친구가 갑자기 술을 깨서는, 해장해야 한다며 밤 11시에 도XX피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자 한판을 혼자서 다 먹어치우는 것을 우리는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안 되겠다 싶어 우리의 그 K과장이 결국 전면에 나선 것입니다.

K과장은 헤매고 있는 G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으니 운전 키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G는 '이게 무슨 경우야?라고 어이없어하였고 K과장이 영어가 서툴러 손짓으로 거듭 키를 넘겨라 하자 G는 그럴 수 없다고 맞서고 있었습니다.

제가 현장에 등장하자, K과장님 뒤로 현장의 직원들이 시위를 하듯 둘러싸고 있었고, 뒤따라 현장에 달려오신 전무님과 그의 스텝들이 G 주위에 둘러서 양 팀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모두의 시선이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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