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에게선 애쓴 냄새가 났다.
지난번 옥상에서의 일을 의식한 탓인지 이 부장은 [BREATH]를 뿌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려고 갖가지 탈취제를 뿌려 댔나 보다. 냄새 어느 하나 제대로 ‘탈취’ 하지 못한 채 이도저도 아닌 냄새가 나는 게 이 부장과 퍽 어울렸다.
회의실로 걸어 들어오는 향미를 봤을 텐데도 자신의 앞에 앉을 때까지 고개조차 들지 않는 이 부장의 훤한 수가 들여다보여 향미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이 부장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일부러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를 잡아당겼다. 바퀴가 없는 의자가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최향미 연구원은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관심도 없고 기억도 못할 것이 뻔한 질문 몇 개를 한 후, 이 부장은 이걸 물었다. ‘어디까지’ 그리고 ‘알고’ 그리고 ‘있느냐’. 무엇에 대한 질문인지를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질문. 질문이라기보다 함정 앞에서 향미는 어떻게 답하는 게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제가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할까요?"
자신이 친 거미줄에 향미가 걸려든 것처럼,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에 향미가 발을 들이기라도 한 듯이 이 부장이 반색을 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성급하다 느껴서인지 이 부장은 서둘러 표정을 감춘다.
"이게 좀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긴 해서 말이죠."
이 부장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허리를 바로 세운 후 마주 잡은 두 손을 책상 위로 내리며 계속 말해보라는 투로 고개를 까딱한다. 이제 즐길 차례가 되었다는 냥, 구덩이에 들어가 있을 향미를 내려다볼 준비를 마친 이 부장의 눈이 징그럽게 번들거린다.
"[BREATH]의 신제품 개발 진척도 말씀하시는 거죠? 그걸 어디까지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 부장님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웃음기를 머금은 향미의 답에 이 부장은 잠시 상황 파악을 하는 중이다. 애초 자신의 질문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같다.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해서 향미는 헛기침을 하면서 웃음을 감추려 애를 써본다. 상황을 파악한 이 부장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붉은 기, 탈취제를 뚫고 나오기 시작하는 땀 냄새. 이 부장이 흥분할수록 어쩐지 향미는 차분해지고, 그가 뜨거워질수록 향미는 차가워진다. 한바탕 소리를 질러대겠구나 싶었는데 웬일로 이 부장은 잠잠하다. 자신은 질문을 했고 향미는 그에 따른 답을 한 것이니 상황만 놓고 보면 향미가 잘못한 것은 없다. 자신이 쳐놓았다고 생각한 함정이 실은 함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거기 걸려들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가까스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다시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질문으로 돌아온 이 부장은 질문에 맞게 모범적으로 답을 하는 향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몇몇 부분은 노트북에 적어가면서. 적을게 뭐가 있긴 한가 싶은 말인데, 이 부장은 그마저도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적어 내려간다. 향미의 별거 아닌 답을 말이다. 질문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이제 더 할 이야기가 없다 싶을 때쯤 이 부장이 말을 멈춘다. 이제 나가봐도 좋다는 이야기에 향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걷는다. 향미의 등을 향해 이 부장은 발목이라도 걸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말한다.
"최향미 연구원이 뭘 알고 있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는 게 좋을 겁니다. 혼자서 뭔가를 바꾸게 만들지 않죠, 회사는. 그런데도 분수를 모르고 뭔가를 바꾸겠다고 나대는 구성원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게 최향미 연구원은 아니길 바라요, 나는."
이 부장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이 부장 당신이야말로 뭘 바꾸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라고 되받아쳤어야 했나. 사무실로 돌아가는 향미의 머리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며 들이친다. 먼저 들어온 생각을 다음 생각이 밀어내고 그다음으로 들어온 생각은 앞선 생각을 깔아뭉갠다. 어느 것 하나 자리를 비켜줄 마음이 없는 생각들 때문에 향미는 머리가 복잡하다.
이 와중에 향미는 용케 한 가지 결정을 내린다.
무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이 부장 말처럼 혼자서 뭔가를 바꾸게 두지 않는 것이 회사라면 그게 혼자가 아니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고 싶어졌다. 향미는 기왕이면 지키려는 입장보다 바꾸려는 입장에 서야겠다. 결정을 내리고 보니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 사이에 언뜻 빈틈이 생긴다. 머리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