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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May 15. 2024

악취, 웅희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것도 향미는 안다. 그런데도 향미는 각자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회의에 왜 참석해야 하는지 향미는 이유를 모르겠다.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이 향미에게 주어진 일이고 그다음은 자기들끼리 지지든 볶든 알 게 뭐야. 향미의 속마음을 알리 없고 안다고 한들 그걸 생각할 만큼의 여력이 없는 관리자들이 연이어 발표를 한다. 


"안녕하세요. 제품 생산본부를 담당하고 있는 이웅희 부장입니다.  

지난 주말은 상대적으로 악취가 덜했습니다. 그 결과 [BREATH] 판매량이 소폭 감소했습니다. 3개월간의 결과를 보면 악취가 덜했던 날 동일하게 판매량이 감소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프라인 매장과 팝업 스토어 근처에서 사람들이 악취를 더 느끼게 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저희 매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BREATH]의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느낄 테니까요. 악취가 덜한 날 매장 앞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악취를 담은 [BREATH] 출시를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풉”  


향미의 입에서 재채기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향미를 향하고 특히 이웅희 부장의 눈은 사나움으로 번들거린다. 잡아뗄 수 없을 것 같아서 향미는 고개를 조금 숙여 까딱 인사를 한다. 눈만 살짝 들어 주위를 살피는데 무철의 시선이 어쩐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최향미 연구원은 지금 발표가 재밌나 봅니다? 뛰어난 업무 능력에 비해 유머 감각은 별로 없는 이 부장님이 하신 발표인데 말이죠."


이것도 칭찬이면 칭찬이라고 무철의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이웅희 부장은 향미를 향한 사나움을 서둘러 감추고 애매한 미소를 머금는다. 향미가 보기에 저게 웃는 거야 우는 거야 싶은 그런 미소.  

딱히 자기 할 말을 한 거지 대답하라는 질문 같지 않았기 때문에 향미는 잠자코 있었다.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그리고 이놈의 회의인지 뭔지도 어서 끝나기를 바라면서.  


"부장님의 제안에 대해서 최향미 연구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이었다, 자신을 향한. 그렇다면 어쩌겠나. 질문에 답하는 수밖에. 이렇게 된 것 향미는 에두르지 않고 제대로 답할 생각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웅희 부장의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미소는 이제 명확한 분노에 가려 사라졌다. 이 부장의 앙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철은 향미에게 얼굴을 고정한 채 더 얘기를 해보라는 식으로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내린다.       


"사람들이 [BREATH]를 사는 이유는 단순히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널리고 널린 다른 방향제나 향수나 탈취제를 사겠죠. [BREATH]는 ‘감정’을 선물한다 혹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게 다른 제품들과 차별점이잖아요? 근데 악취를 담아서 뿌린다니 이건 뭐랄까, 좀 일차원적인 생각인 데다가 [BREATH]의 값어치를 낮추는, 말하자면 좀 촌스러운 접근 방식이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시작하고 보니 말이 길었다. 향미를 가만히 보던 무철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진다. 또 말을 시킬까 싶어서 무철의 시선을 피하고 서둘러 고개를 돌리는데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이웅희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눈빛으로 오징어도 구워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노여움을 드러내는 이 부장, 향미 역시 그 시선을 피할 생각은 없다. 예상과 다른 향미의 눈 맞춤에 이 부장은 당황했지만 이번에도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미소로 감정을 숨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건 과자나 튀김일 때나 좋은 거고 사람은 겉이든 속이든 얼추 비슷해야 그나마 봐줄 만한데 이웅희 부장 저건 욕심은 많고 그릇은 작다. 이런 사람은 그릇에 차고 넘치는 욕심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주변에 피해를 입히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주로 자기가 볼 때 만만한 사람을 향하겠지. 향미는 이 부장의 눈을 마주 보면서 속으로 말을 삼킨다. 나를 만만히 봐서는 곤란해, 이 부장. 


자신을 향해 곧장 튀어오는 인섭이 보이지 않아 향미는 엘리베이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먼저 올라갔나. 엘리베이터 옥상층 문이 열린 후 앞으로 걸어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들 가운데 언뜻 이 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더더욱 이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향미는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야외로 향하는 문을 향해 걷는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면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을 때 익숙한 목소리와 더 익숙한 이름에 향미가 발을 멈춘다. 


"거봐 진짜라니까? 냄새 못 맡는 사람은 음식 맛 구분 못 한다니까? 인섭 씨 땡큐. 내가 다음에 진짜 맛있는 커피 살게."


이 부장의 목소리와 인섭이라는 이름, 불길한 조합이다. 향미는 문 손잡이에 두었던 손을 거두고 뒤돌아 사람들을 본다. 꽉 움켜쥔 인섭의 주먹이 조금씩 떨리는 게 향미의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오래 주먹을 쥐고 있었던 건지 피부색이 하얗게 이어서 빨갛게 변하는 중이다. 인섭의 앞에서 두 개의 컵을 들고 웃고 있는 이 부장. 양손에 컵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연신 떠들고 있다. 모여선 사람들은 이 부장이 하는 행동이 반은 부끄럽고 반은 흥미로운 것 같다. 


인섭은 바깥 옥상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고 문 앞에 서 있는 향미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인섭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는 향미. 그런 향미를 향해 인섭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다. 주름이 잡힌 미간, 끝이 내려간 눈썹, 작아진 눈 그와 다르게 활짝 벌린 입, 그리고 가지런한 치아. 치아가 연약해 보이기도 쉽지 않은데. 가까이 다가온 인섭에게 옅은 액젓 냄새가 난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라는 마음과 내가 잘 모르는 일에 상관하지 말자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상관하지 말자 쪽으로 마음을 정했을 때 향미의 뒤통수로 이 부장의 말이 날아든다.  


"이게 누구야? 최향미 연구원 아니야?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어? 최향미 연구원이 올 줄 알았으면 액젓을 회사별로 구입한 다음에 어떤 회사 건지 맞춰보라고 했을 텐데." 


이 수준까지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 부장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향미는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대충 짐작이 갔다. 사람을 두고 내기를 했다 이거구나. 이 일을 유치하다고 설명한다면 그건 너무 아름다운 표현이지. 구역질 나는 인간 같으니라고. 향미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선다. 한발, 한발 앞을 향해 걷는다. 그런 향미를 향해 이 부장은 섣불리 가볍게 입을 놀린다. 


"지금이라도 해볼 생각 있어요? 사람들 시켜서 까나리 좀 사 오라고 할까? 이거 흥미진진하겠네. 향미 연구원 괜찮으면 지금이라도 부서 사람들 몇 명 더 오라고 해도 될까? 판돈은 내가 두둑하게 챙겨줄게요."


큰 보폭으로 걸어가 이 부장 앞에 마주 선 향미. 향미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이 부장이 다가선 향미를 내려다본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자존심을 구길 수는 없다는 듯 이 부장의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향미는 이 부장에게서 까나리 액젓과 커피 그리고 [BREATH] 설렘의 냄새를 맡았다.      


"제가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잘해야겠어요 부장님. 부장님이 [BREATH] 설렘 뿌리셨는데 제가 하나도 안 설레네요 지금? 약간 역하기도 하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매장 주변에 뿌리기 위해 개발했으면 한다는 악취가 담긴 [BREATH]의  힌트를 오늘 부장님 통해서 얻습니다."


이 부장을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에 몸을 돌려 야외로 나가는 문을 향해 걷는데 주변에 냉랭한 공기가 내려앉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으로 손을 뻗은 향미는 인섭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이제야 인섭은 우는 것처럼 이 아니라 진짜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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