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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May 08. 2024

냄새 없는 세상, 인섭

향미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는 순간 곧 인섭이 나타날 거라는 것을 안다. 역시나 인섭은 향미가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난다. 태블릿을 들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인섭은 자신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 사람들에게 알릴 요량이라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향미는 또 한다. 향미와 인섭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꼭대기 층 버튼을 누른다.      


짝이 맞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구색을 갖춘 테이블과 의자를 보면서 향미는 자신보다 먼저 옥상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SM 물산으로 출근한 지 이틀 만에 그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됐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멍이나 때리려고 옥상을 찾은 향미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과 연결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등 뒤의 옥상 문이 열리면서 말소리가 들렸다. 


인섭 : 비밀번호는 에스 이 엠 엘 엘, SMELL이에요. 후후.      


보통 키에 제 나이의 위아래 열 살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얼굴의 인섭이 순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는 동안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노안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동안인지 노안인지는 헷갈리지만 무해한 사람이구나, 향미의 눈에 인섭의 첫인상은 그랬다. 이곳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는 말에 인섭은 눈을 아래로 떨구며 굳이 따지자면 이곳을 이용한 것은 자신이 먼저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 옥상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곳을 이용하라고 인섭은 변명처럼 말을 이었다. 자유롭게 이곳을 이용하라는 말 자체가 본인이 소유한 것처럼 말하는 것 같다는 향미의 엇나간 말에 인섭은 얼굴까지 빨개지며 그렇게 느꼈다면 자신이 미안하다고 두서없이 사과했다. 빨간 얼굴의 인섭을 보면서 향미는 타격감이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하면서 몰래 웃었다.  


인섭은 SM 물산에서 이 부서 저 부서를 오가며 떨어진 비품을 채워 넣고 고장 난 전자 기기를 손봤으며 사람들의 자잘한 심부름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향미가 옥상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쉽게 인섭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둘은 자주 함께 옥상을 찾았다.  


인섭 : 오늘은 어땠어? 

향미 : 어떻고 자시고나 있나. 맨 냄새지 뭐.  


다섯 번쯤 옥상을 함께 오르내렸을 때 향미는 옥상에서 나는 악취가 힘들지 않으냐고 인섭에게 물었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실내가 아닌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서.      


인섭 : 나는 냄새가 안 나. 아니, 냄새를 못 맡는다고 해야지 참.       


날 때부터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인섭은 계절을 비염이 심한 계절과 비염이 덜한 계절로 나눴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라고들 하는 봄과 가을은 큰 일교차 때문에 비염이 극도로 심해지는 계절로 인섭에게는 나들이하다 죽기 딱 좋은 계절에 해당했다. 겨울은 어땠냐고? 추위에 코가 가장 일찍 얼었고 콧물로 꽉 찬 콧구멍은 꽝꽝 얼어 고장 난 보일러처럼 동작을 멈춰버렸다. 숨을 쉬기 위해서 자주 입을 벌려야 했다. 그나마 인섭에게 살만한 계절은 여름뿐이었다.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워도 인섭은 코가 아닌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계절 여름이 그나마 견딜만했다.


[비염 치료 수술 임상시험에 참여할 분을 모십니다.]      


열다섯 살 인섭은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광고판을 봤다. 이런 사람이라면 가능하다는 세 가지 조건에 인섭은 모두 해당했다. 어려서부터 비염을 앓고 있고,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비염을 치료하길 원하는 사람. 그게 바로 인섭 자신이었다. 망설이는 부모를 졸라 인섭은 병원에 갔다. 안내문의 빼곡한 글자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명하는 간호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와중에 유독 귀에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비염 완치’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 분명히 거기 적혀있고 간호사의 입을 통해 나왔을 ‘부작용’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음’에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한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수술 후 이게 정말로 모두 코안에 있었나 싶을 만큼 많은 양의 솜이 인섭의 코에서 줄줄이 나왔다. 코가 얼굴 전체에 뻗어있는 혈관 같은 거였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섭은 앞으로 달라질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다. 솜이 비워진 코로 첫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인섭은 처음으로 상쾌한 숨쉬기를 경험했다. 찐득하게 들러붙는 불쾌한 느낌 없이, 컥 하고 막히는 불편한 없이, 매끄럽게 쉬어지는 들숨과 날숨. 비염이 없는 사람의 일반적인 숨쉬기라는 황홀한 기분에 휩싸였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냄새가 사라졌다. 수술 후 거짓말처럼 인섭의 고질병인 비염이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후각 역시 사라졌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걸 인섭은 열다섯 나이에 알았다. 고작 열다섯 살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인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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