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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26. 2024

(일기) 말린 생선 파먹기

2024.05.26. 도달할 수 없다면 만들 수밖에

식탁에 가끔 말린 생선이 올라온다. 코스트코에서 산 미국산 가자미인지 아직은 시부모님의 연이 닿아 있는 통영 좌판에서 올라온 우럭인지 서대인지 뭔지 나는 구분할 눈이 없지만 그것은 뼈가 참 억세고 튼튼하다. 결혼하고 처음 만난 민어조기며 말려 먹는 줄도 몰랐던 참돔 같은 제수 음식을 떠올린다. 


보시기에 젓가락질이 시원찮은 막내 며느리 밥숟가락 위에 맨손으로 슥슥 살점을 발라내 올려 주시는 우리 시엄마가 생선 말리는 법을 풀어놓는다. 잡스러운 것들을 다 따고 깨끗이 씻어서 굵은 천일염을 뿌리는 이야기. 곁에서 바닷가에 어린 시절을 묻어두고 온 배우자님이 열서너 살부터 홀짝거리던 소주에 담벼락에 널린 말린 생선 안주 삼던 이야기를 꺼낸다. 몇 번 가보지도 못한 통영바람이 코끝에 스친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담벼락에서 생선살과 함께 늘어지게 볕을 쬔 따듯한 바람이 얼룩진 얼룩바람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왜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올라와서 악다귀 같은 서울에서 수도권에서 먼지 구덩이 속을 뒹구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잘 알고 있다. 이곳이 개자식과 소자식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지랄하는 아귀 소굴이라면 그곳은 사소한 악의와 고여 썩은 것들이 넘쳐나는 황무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낮은 담벼락에 생선 말리는 기억도 없고 사라져서 아쉬운 좋은 시절도 없고 도망쳐서 안식처 삼을 곳은 더더욱 없는 아귀 소굴의 가난한 아귀 새끼는 남의 기억을 파먹으면서 하루 종일 땅굴이나 파들어가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코에 익숙한 먼지 냄새는 흙먼지도 아니고 모래먼지도 아니고 전선에 앉아 있다가 희미하게 타들어가는 도시의 먼지 냄새다. 이곳에서 살기 싫다. 이렇게 살기 싫다. 이곳에서 이렇게는 살기가 싫다! 내가 그 먼지가 되어서 바삭하게 구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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