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진출_ 수술 당일 K.O.

골절데뷔전 7

by 하다

수술 당일 아침,

전신 마취를 앞두고 당연히 금식이다. 아침도 못 먹으니 유난히 할 일이 없다.

남편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선생님이 수술 동의서를 쓰러 오란다.

그는 자신이 나의 주치의라고 소개한다.

네?

나는 내 수술을 맡아주실 ㅈㅎㅅ과장님이 내 주치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는 연예인 같이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가 아까울 만큼 지독히 무뚝뚝한 표정과 성의 없는 말투의 소유자다. 내게 수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나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해 말하는 그의 무심한 말투에 정나미가 생기기도 전에 떨어지고 만다.

만에 하나 일어날 수도 있는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는

그의 표정은 평화로움을 넘어 지루함을 머금고 있다.


'왜케 얄밉지?'


다리를 달달 떨며 무시무시한 경우의 수들의 낮은 확률에 정신을 집중하려 애쓰던 나는

충격적인 그의 한 마디에 일시정지 상태가 된다.


"안와 골절 수술을 하고 나면 한 달 정도 죽만 드셔야 하고요."

"네? 하루가 아니고 한 달요??!!"


내가 너무 놀라자 그제야 그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린다.

그제야 코뼈 골절과 안와 골절 수술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련한 환자가 눈에 들어온 듯.

어떻게 한 달 동안 죽만 먹고 사는지, 딱딱한 것만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닌지,

나는 다소 격양되어 묻는다.

다시 냉정함을 찾은 그는 안와 뼈가 붙을 때까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수술 상담 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안내 사항에 3~4일 동안 코로 숨을 쉴 수 없다는

문제는 오히려 작은 문제처럼 여겨진다.

망연자실해서 나는 혼잣말처럼 한 마디 뱉는다.


"와, 강제 다이어트네요..."


그는 내알바냐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오케이, 내 주치의 스타일 접수 완료, 냉혈한'




간호통합병실에는 보호자가 드나들 수 없다.

휴게실에서 신랑과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며 문제의 내 '주치의 이야기'와 그가 전한 '죽 이야기'를 나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한 일과 수술이 생각보다 빨리 잡혀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이동 침대가 도착한다.

너무 잘 걸을 수 있는데 중환자처럼 침대에 누워

끌려 이동하려니 멋쩍은 기분이 든다. 힘들게 나를 끌고 밀고 가시는 분께(호칭을 뭘로 해야 하는지 모름)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신랑의 눈을 피한다.

지금 내 감정계절은 그놈의 '울컥기'이기 때문이다. 잡았던 신랑의 손을 놓고 나는 싸늘한 수술대로 이동한다.

춥다. 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수술대로 옮겨 눕자마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부들부들 호들갑을 떤다. 이불을 줄 수 있는지 물으려는 찰나, 누군가 내 몸의 호들갑을 멈추기엔 턱없이 얇은 이불을 덮어준다.

내 이름을 확인하는 목소리, 웬일로 다정하게 금방 끝날 거라고 말하는 ㅈㅎㅅ 과장님의 목소리에 이어

가스가 들어가면 이상한 맛이 날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입 안에 기분 나쁜 쓴 맛이 돌고 입이 마르는 느낌과 동시에 나는 마취된다.




힘겹게 눈을 뜬다.

무사히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안도감은 잠시 머물다

목구멍에 꽉 찬 듯한 이물감에 밀려난다.

마취에서 깨면 코가 제일 아플 줄 알았는데

정작 나를 뒤흔들어 놓은 고통이 마른입과 목구멍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놓은 듯한 이물감이라니!

혹시 침샘만 마취에서 깨지 못한 건 아닐까?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바짝 마른 운동장에 발을 비비면, 모래알이 바닥과 신발 밑창 사이에서 까끌거리는 바로 그 느낌이 내 입 안에서 일어난다.

양쪽 깊숙이 솜으로 막힌 코는 한 줌의 공기도 통과시키지 못한다.

나는 이제 꼬박 4일 동안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두 번째 고통도 막힌 코 자체는 아니다.

눈 바로 아래 붙여 놓은 붕대,

코를 기준으로 X자로 가로지르는 테이핑,

눈에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과 덕지덕지 말라붙은 눈곱과 고름의 이물감!

오, 환장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수술 전 농담도 주고받고 침대에 누워 이동하기 민망해하던 나는 어디 가고

수술 후 누가 봐도 심각한 환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술전'에서 나는 K.O. 당했다.

끔찍한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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