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훈련_고독을 공유하는 사이

골절데뷔전 6

by 하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다인실 입원 경험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때 다인실은 굉장히 불편했고 시끄럽고 때론 불쾌하기까지 했지만,

그 시대 특유에 정감이란 게 있었다. 커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 옷을 갈아입거나

처치 중일 때 외에는 늘 걷어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병실 한가운데 벽면에 달린 TV 때문일 것이다.

종일 침대에 누워 '밥 먹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자고 아프고'의 반복인 병원 생활에서

유일한 오락거리가 TV였다.


안타깝게도 내게 TV는 오락 거리가 되지 못했다.

나 외에 입원 환자들이 대부분 나이 드신 어른들이었기에

내게 리모트 컨트롤러를 컨트롤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뉴스, 스포츠, 가끔 드라마...

그땐 책도 즐겨 읽지 않았는데 도대체 나는 무얼 하며 그 지난한 시간을 버텼을까?

문득 궁금해지네?




그때만 해도 한 병실 내에 있는 환자들끼리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냉장고도 공용으로 사용했기에 누구네 먹을 게 뭐가 있는지 훤히 다 알았다.

먹을 게 있으면 대체로 나눠 먹고 돌려 먹곤 했다.


그 풍경이 나에게 마지막이니 지금 이 병실 상황이 더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분명 하나의 병실인데 커튼 벽으로 5칸이 정확히 나눠져 있어 자기만의 공간이 확실하다.

실은 예전처럼 그 커튼이 오픈되어 있는 분위기였다면 나는 더 기겁했을지 모른다.

소통을 좋아하지만, 종일 오픈 된 공간에서 옆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거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커튼이 견고한 벽을 만들어 나만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런데 미묘한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네 남자 사이에 낀 생활에서 늘 "고독하고 싶다"를 외치던 나였는데.

이 불편한 침묵과 끈쩍한 삭막함이 고독을 즐기기보단 그에 압도당하게 만든다.

침묵 속이라 더욱 처절한 누군가의 한숨소리도 고독감을 가중시킨다.

집에 가고 싶다.





나는 기분을 환기시키려 노력한다.

그저 묵묵히 버티면 시간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것임을 안다.

시간은 친절하게도 두려움, 외로움, 고독, 통증을 과거의 추억으로 뭉쳐 기억 어딘가에 놓아줄 것이다.

(어쩌면 이 녀석들은 이야기로 풀어져 누군가에게 전달될지도?)


정리를 마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쳐본다.


"아이고~ 하아..... "


침묵을 뚫고 견고한 커튼 벽도 뚫고 계란 장수의 "계란이 왔어요~"처럼 반복된다.

결국 간호사를 호출하고 바로 달려온 간호사와 이 환자분의 실랑이는 시작된다.


"잠을 못 자, 잠이 안 와 죽겠어. 약 좀 줘"

"아 약 드셨잖아요. 오늘 과정님이 안 계셔서 약을 더 처방할 수가 없어요~"

"아니, 사람이 죽겠는데."

"아니, 이 약이 처방 없어 줄 수가 없는 약이에요. 이미 드셨고요~"


딱히 볼 것이 없으니 소리 자극에 더 예민해진 귀에 계속해서 꽂히는 둘의 대화가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명확하게 들린다. 결국 간호사가 다른 선생님께 처방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할머니의 한숨과 신세 한탄은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할머니는 조명을 가려달라고 떼를 쓴다.

간호사 몇 분이 출동해서 종이로 전등에 갓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불빛이 문제인 것 같지는 않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시겠지,

하다가도 간호사들이 안쓰러워 할머니가 살짝 얄미워진다.


간호사 통합병동 간호사로 일하는 건 정말 극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나라도 최대한 그들을 덜 괴롭혀야지.


나는 노트북을 열고 와이파이를 연결한다.

수술 전까지 마무리해야 할 작업을 하면서도

잠들지 못하는 할머니의 존재를 수시로 확인받는다.

문득, 그 잠과의 치열한 사투 속에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울지 생각하니

갑자기 할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에고 잠을 못 주무시니 얼마나 힘드세요~"


하지만, 참는다.

그 말 한마디로 내가 할머니의 위로담당관이 되어

할머니가 내게 의지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작동한 것이다.

또 문득 궁금해진다.

나처럼 할머니의 절규를 듣고 있는 다른 환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각자의 고통이 커 타인의 고통은 들리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직 수술 전이라 살만 해서 할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걸까?


무엇이 되었든, 부디 할머니가 빨리 잠드시길 간절히 바라며 나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새벽 3시에도 잠이 안 온다고 간호사를 호출하는 할머니 덕분에

잠을 설쳐 피곤한 상태로 수술날을 맞이한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입원 라운드_혼자서 맞이하는 첫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