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라운드_혼자서 맞이하는 첫 경기

골절데뷔전 5

by 하다

갑자기 불안이 몰려온다.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덤덤했던 나다.

생각보다 빨리 진료도 봤고,

생각보다 빨리 수술 날짜도 잡았고,

생각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생각보다 통증도 견딜만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환자 엄마를 위해 아들들은 고분고분 + 스스로 어린이가 되었고,

볼수록 내가(내 얼굴이 한몫함) 불쌍했을까? 남편은 나의 안정이 최우선인 듯

청소, 빨래, 상 차리기까지 도맡아 해 주었다.

눈이 부은 데다 메디폼을 덕지덕지 붙여 놓는 바람에

책을 읽기도 쉽지 않은데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심심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도 지나고 수술 전 날이 될 때까지도 이상하리만큼 나는 평온했다.





입원 당일 아침, 이제야 입원과 수술이라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남편이 미리 꺼내놔 준 트렁크에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혹시나 더 필요한 준비물이 없을까 싶어

초록창에 "코 수술 후기"를 친다.


그때부터 내 맘을 휘저어 놓는 불안이란 녀석 때문에 짐 싸기 진도가 영 제자리걸음이다.

초록창이 보여 준 수술 후 사진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퉁퉁 부은 얼굴과 양 코를 모두 솜으로 틀어막고 있는 모습.

계속 흐르는 콧물과 피 때문에 코 아래 붙여 놓은 거즈를 교체하느라 잠을 못 잤다는 글.

재채기를 하다가 솜이 빠져서 다시 넣다가 아파 죽을 뻔했다는 글.


의사쌤은 분명 '좀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라고만 했는데,

그 말과 내가 본 이미지나 글 사이 간극은 '방학을 맞이하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만큼이나 크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대의 기분이나 의도를 잘 알아차리고 공감도 곧잘 하지만,

문제의 크기에 비해 큰 걱정으로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소통을 하면서

예민함을 긍정적인 도구로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정확히는 있었다)

그러나 한 번 가동된 걱정, 불안 회로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병원의 입원 통보 전화를 기다리는 내내 바쁘게 돌아가던 걱정, 불안 회로는

갑자기 급하게 입원을 해야 한다는 전화로 가속화된다.

신랑이 반차를 쓰고 돌아오면 함께 입원 수속을 밟기로 했는데

짐도 아직 덜 쌌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사실, 가장 준비가 덜 된 건 내 마음이다.






택시를 부른다. 내 전용기사님 남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평소 택시를 잘 타지 않아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 것도 괜히 불안하다.

다행히 콜이 바로 잡혀 큰 아이와 집을 나선다.

이제 나보다 조금 키가 큰 중학생 아들이 보호자로 함께 가주기로 한다.

(1화에서 엄마의 사고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특유의 꺼벙한 표정으로 나에게 괜찮은지 물었던 그 녀석이다)

트렁크는 끌면 되고 택시가 집 앞까지 오니 혼자 갈 수도 있지만,

어쩐지 혼자 가고 싶지가 않다.

나보다 겨우 2센티미터 큰 비쩍 마른 아들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을 만큼

나는 무섭단 말이다.






병원이다. 정말 입원을 하러 온 거다.

입원 수속 창구에 앉아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린다.

내가 뽑은 번호표의 숫자가 전광판에 깜빡인다.

'왜 저렇게 빨리 바뀌지?'

'대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나인데 어쩐지 오늘은 더 '대기'하고 싶다.

창구 직원이 병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한다.

1시 전에 와야지 안전하게 입원할 수 있다고 해서 급하게 왔노라고 사정을 말하니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기다리며 나는 또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이것이 일종의 해리 장애인가 싶다.

'병실이 나야 할 텐데..'와 '몇 시간 더 있다가 오라고 하면 좋겠다.'

운이 좋게도(어쩌면 나쁘게도) 병실이 잡혔고 나는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통합간호병동]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고 모든 간호와 안내를 간호사가 맡아주는 병동이다.

어머님이나 엄마가 와계시다 해도 아이들에겐 아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남편이 부재할 때, 간호사의 케어를 받는 게 좋을 거란 생각에 통합간호병동을 신청했었다.



간호사의 안내로 간단한 본인 확인과 사고 사유 등을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은 나름 보호자답게

곁에 조용히 머문다. 짐을 들어다 주는 걸로 아들의 임무는 끝났으니, 굳이 벌을 세울 필요가 없지 싶다. 나는 아들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안 됐는지 아들은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아들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힘내라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또 울컥한다. 수시로 우기(별일 아닌 일에 눈물이 나는 시기)가 찾아오는 나이지만, 다치고 난 뒤부터는 울컥기가 찾아온 것 같다. 시시때때로 울컥한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는 갖지 않는 기대를 언니에게는 보인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첫째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그런 게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 아들이 가고 나니 갑자기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간호사의 안내로 병실로 짐을 옮기고 낯선 내 침대에 걸터앉고 나니 '외로움'이란 단어가 완벽하게 이해된다.


'아들한테 병실까지 짐을 옮겨 달라고 할 걸, 나란히 앉아서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낼걸.'


고무줄 부분이 해진 허름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트렁크에 짐들을 사물함에 하나하나 정리한다. 정리를 모두 끝내고 나니 무얼 할지 모르겠다. 그 좋아하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심장이 뚝딱거리는 기분이 든다. 심장은 벌렁거려야 하는데 뚝딱거리니 분명 이상하다. 지독하게 조용한 병실에 한 할머니의 처절한 한숨만이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편이 이렇게 보고 싶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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