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전 돌입_유쾌한 이웃 "정"의 등장

골절데뷔전 8

by 하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가 아니라

누가 내 목구멍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놨어?라고 외치고 싶다.

혀를 굴려 입 안과 목구멍을 체크해 보니

목구멍에 정말 뭔가(스카치테이프라든가?) 붙어 있는 게 느껴진다.

뭐지?


문득, 수술 전에 입 안에

"호스를 넣어서 마취를 하는 거라 목이 조금 아플 수 있어요~ "라는 의사의 설명이 떠오른다.


'아, 그거구나. 목이 이렇게 불편하고 아픈 이유가.'

물은 절대 마시면 안 되고,

에탄올 95% 가글을 하루 3번 하라고 한다.

이거라도 하고 나면 조금 나을 거란 기대를 품고

느릿느릿 화장실로 간다. 뚜껑을 열자 독한 알코올향이 꽉 막혀 있는 코를 강하게 찌른다.


우글우글우글 퉤.


시커먼 껍데기 같은 것들이 섞여 나온다.

피딱지다. 내가 마취 중에 버둥거리기라도 한 건가?

도대체 왜 목에 이렇게 상처가 난단 말인가? 괜히 부아가 난다.

여러 번 해도 피딱지가 계속 나온다.

가글을 하고 나면 조금 편안해질 거란 기대는 무참히 무너진다.

통증은 겨우 A4용지 두께정도 나아진 건가 싶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책이나 실컷 읽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불편감 덕분에 활자 중독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다행인 건가?


이렇게 심각한 환자가 되고 보니(정말 위중한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께는 송구합니다)

갑자기 서글퍼진다.

거기다 남편이 이제 아이들을 챙기러 가봐야 할 시간이 되니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아, 통합간호병동은 안과병동과 너무 멀기도 하고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는 점이 불편해 수술 후

일반 병실을 옮긴 상태다.


나는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의 마음이 된다.

왔다 갔다 아이들 챙기랴 환자 보살피랴 새벽 출근하랴

힘든 신랑을 굳이 불편한 보조 침대에 재우고 싶지 않다.

나는 씩씩하게 혼자 잘 수 있으니

가서 편하게 자라고 말, 하고 싶다.

그런데 이 고통과 적막 속에 혼자 있으려니

내 아픔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

나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리광 부리는 것 같아 조금 창피하기도 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말한다.


"오늘 밤만 자기가 같이 있어 줬음 좋겠어..."


남편은 선뜻 그러겠다 하고 일어선다.

괜히 또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울컥기는 한동안 계속될 건가 보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 첫 식사를 한다.

하루 종일 굶었는데도 식욕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남편은 어머님을 도와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오기로 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뚜껑을 하나하나 여는데 그것도 힘겹게 느껴진다.

심심한 죽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어 본다.

죽 한 입 먹고 입으로 파하~ 숨을 쉬고

국물 한 숟가락 마시고 파하~ 하고 입을 벌려 숨을 쉬어야 한다.

무슨 최불암 슨생님도 아니고.

밥을 먹는데 숨이 막힌다.

비염이 심해질 때면 먹으면서 숨차하던 막둥이가 떠오른다.

'에고,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런데 신기하단 말이지.

'이렇게 숨이 차고 코가 막히는데도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었다고?'

(막내는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먹고 많이 먹고 가장 통통하다)

역시... 먹보였어.




사실 더 신기한 분이 내 옆 배드에 새로 들어오셨다.(지금부터 그분을 '정'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유는 다음 회에 알려줄 것이다)

'정'은 발에 반 깁스를 하고 있지만, 링거를 달고 다니지도 않고

목소리는 쾌활하기 그지없어 이곳이 병실임을 잊게 한다.

(간호사와 매우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심)

나이롱환자인가?


책도 안 읽히고 멍하니 있다 보니 귀만 자꾸 커진다.

식사를 시작하는 소리가 나더니 5분 정도 만에

달그락달그락 그릇 정리 소리가 들린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지신 건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식판을 들고나가신다. 식사 5분 컷! 와우!


그러더니 부스럭부스럭 지갑을 챙기시더니(이건 나의 추측)

병실을 나가시는 거다. 나의 관찰 대상이 사라지니 다시 자꾸 마르는 목이 신경을 긁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비닐봉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정'이 돌아온다.

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방금 5분 컷 식사를 마친 '정'은 침대에 눕더니

요란한 봉지 소리를 내며 무언가 먹기 시작한다.

내가 그러지 못하니 잘 먹는 사람이 참 보기 좋다.

이번엔 자그마하게 킬킬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숏츠를 보고 계시리라?)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함께 ㅋㅋㅋ 웃게 된다.

유쾌한 사람이 좋다.

이 불쾌한 상황에 유쾌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정'이 좋아진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말이다.



내일은 인사를 해 봐야겠다.

오늘 밤 내가 무사히 보낼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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