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전 개시_목마름과 응(가)의 교향곡

골절데뷔전 9

by 하다

끔찍한 밤이었다.

아마 내 생전에 가장 긴 밤이었을 거다.(이때만 해도 이런 밤을 꼬박 3일 동안 보낼 줄은 몰랐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입과 목마름 이슈, 또 다른 하나는 똥 이슈다.



아이들 저녁까지 챙겨주고 나서 해가 지고서야 남편이 왔다.

입맛이 없어 밥은 거의 그대로 덮어놨다.

배가 고플 만도 한데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이 곱게 깎아온 복숭아는 달큼한 향에 끌려 손이 간다.

입을 크게 벌리면 코가 찡, 광대가 찌릿 아파서

신랑이 작게 잘라줘야 먹을 수 있다. 작은 복숭아 조각을 입에 넣고 조신한 새색시처럼 오물오물 먹는다.

맛도 달고 향도 단데 씹는 게 자유롭지 않으니 먹는 것도 노동같이 느껴진다.





몹시 피곤한데 낮에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려고 입을 다물면 코가 막혔고, 숨을 쉬려고 입이 벌어지면

목이 거친 겨울나무껍질처럼 바싹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거의 5분 단위로 의식적으로 입을 닫고 침을 모아 삼키거나

물을 마셔야 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양쪽 코가 여전히 견고하게 막혀 있으니

밤이라고 상황이 달라질 리가 없다.

다들 불을 끄고 자려고 하는데 나만 계속 불을 켜 놓고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나도 눕고 싶고 자고 싶다.

코 수술을 하고 나면 완전히 눕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모범환자니까 침대를 조금 세우고 베개를 쿠션으로 만들어 기대듯 눕는다.

손 닿는 위치에 물과 마른 입술 위에 올려둘 거즈를 마련해 두고

잠을 청한다.

피곤한 남편은 잠들지 못하는 내게 미안해하면서 금세 잠이 든다.

(이해해. 그래도, 너무 빨리 잠드는 거 아니야?)

나는 겨우 잠이 들려다가도 목이 말라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고,

한숨을 쉰다. 차라리 깨어 있으면 이물감은 있어도 목마르지는 않으니

잠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연다. 하지만 그것 조차 피로해 죽을 것 같다.

눕고 싶고, 자고 싶다.


얼핏 잠이 든다. 5분? 10분 정도 지났을까?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벌떡 일어난다.

누가 내 목구멍에 드라이기를 들이대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밤새 타임루프물 주인공이 된다.





두 번째 똥 이슈를 이야기하자면 다시 어제 오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병실 이웃을 소개해야 한다. 내 맞은편 배드를 차지하고 계신 분들은 할머니와 그의 간병인이다. 내가 수술 후 통합간호병동에서 여기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때부터 이미 계셨던 분들이다.

양쪽 코가 막히는 충격에 더해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은 갈증과 이물감으로 사경을 헤매고(오버가 좀 심하네?) 있을 때, 그 할머니는 계속해서 외치고 계셨다.


"아이 배 아파~ 약을 먹었는데 왜 똥이 안 나와~"


지금부터 그 할머니를 "응(가) 할머니"라고 부를 참이다.

커튼 두 장이 방음이 될 리가 없음을 아실 텐데 '응 할머니'는 계속해서 아기처럼 똥이 안 나온다며 보챘다.

간병인은 약을 먹었으니 조금 기다려야 나올 거라고 계속 달랬고

두 분의 대화는 변비약의 효과에 대한 경험담으로 한참 동안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낮부터 시작된 똥 타령은 저녁을 먹을 때에도 모두가 잠든 밤에도 수시로 들려왔다.

남편과 나는 눈길을 주고받으며 실소를 터트리길 여러 번 반복했다.


새벽 3시쯤이었을까?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겨우 잠들려는 내 귀를 세차려 때렸다.


"엄마야~ 이게 뭐야~ 이게 왜 이래~!"

"똥이 나와~ 줄줄 새에~~~~~~~"



변비약은 얄궂게도 "응 할머니"가 깊이 잠든 사이에 자기 효능을 과시한 거다.

낮동안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거리며 기다리던 신호가 하필 그 새벽에 울리다니... 참.

잠들었던 신랑도 잠 못 들던 나도 경악했다.

저절로 상상될 정도로 리얼한 할머니의 설사 생중계 덕분에 별로 든 것도 없는 속이 불편해졌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간병인은 읽으셨나 보다. 간병인도 50대 후반~60대 초반 정도의 할머니셨지만,

오래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대하다 보니 그런 센스가 있었다.


간병인은 "아이고 조용히 해요! 사람들 다 깨요~!"라고 말하며 '응 할머니'를 진정시켰다.

두 분이 화장실로 가는 소리, 화장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 물소리, 본인의 실수가 창피하고 미안한 응 할머니의 앓는 소리, 간병인의 한숨 소리 등이 잠잠해지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안해하는 '응 할머니'에게 '그게 내가 하는 일인데 미안해할 것 없다'라고 위로하는 간병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응 할머니'는 그런 간병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천사야~어떻게 화를 한 번 안내?! 고마워..."





나는 두 가지 이슈로 반좀비가 되어 아침을 맞은 거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쉬는 둥 마는 둥 앉아 있는데

나의 주치의가 오더니 특유의 무심한 표정과 말투로 8시 반에 드레싱 하러 오라고 말한다.

덜컥, 겁이 난다. 드레싱 하면 따갑고 아픈 것이 떠오른단 말이지.

휴, 산 넘어 산이다. 그리고 내 몰골을 확인하는 일이 두렵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 같을까? K.O. 직전으로 얻어터진 복싱 선수의 얼굴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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