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옆을 걷다가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보다 먼저 그곳에서 꿀과 꽃가루를 챙기고 있던 꿀벌 때문입니다. 놀라기로 치면 작은 꿀벌이 더 놀랐겠지만 그는 자기의 일에 몰두하느라 저의 짧은 비명에는 아랑곳할 새가 없나 봅니다.
나비를 보면 괜히 손을 뻗어 잡는 시늉을 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 아름다운 날개의 비늘을 살펴보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꿀벌을 발견하면 몸을 피하고 두려운 시선으로 꿀벌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되니 이상한 일입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나비와 벌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비와 벌은 꽃가루받이를 하여 열매를 열리게 하는 참으로 고마운 매파입니다. 중매비로 꿀과 꽃가루를 얻어갑니다. 그런데 벌은 꿀을 모으고 나비는 꿀을 모으지 않습니다. 벌은 겨울을 나야 하고 먹여야 할 식솔인 여왕벌과 유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꿀벌은 자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가족과 집단을 위해 꿀을 모읍니다. 반면, 나비는 책임져야 할 애벌레가 없고 정해진 집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자유롭게 이 꽃밭에서 저 꽃밭으로 자기 몫의 꿀을 빨며 살다 갑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자신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로 표현했던 오대수와,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는 욜로족의 모습은 나비와 닮았습니다. 그리고..... 생명보험은.... 꿀벌의 모습과 닮아 있네요. (생명보험은 정말 철저히 내가 떠나고 난 후 남은 가족들을 위한 보험이라서 보험설계사가 그 당시 젊은 미혼자였던 저에게는 권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가장들이 드는 보험이라고 하는 그 말에 뭔가 치밀어서 '내가 가장이다'라는 마음으로 가입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모습을 나비와 꿀벌로 나눌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꿀벌처럼 살고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책임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내일을 향해 무겁지만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꿀벌 가운데 한 명입니다.
오늘을 살면서도 완전히 오늘만 살 수는 없고 미래를 바라보며 불안 한 줌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그런 꿀벌입니다. 오늘의 몫은 충분하지만 내일은 어떨지 모른다며 내일의 몫을 챙겨 두고, 혹시 그 보다 먼 미래에 닥칠지 모를 위기를 상상하며 불안을 더 세게 움켜쥘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꿀벌에게도 분명 '나비의 순간'은 있습니다.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 불안을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펼치게 되는 순간! 그래서 홀가분해지고 가벼워져서 나비처럼 팔랑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꿀벌이 갖는 나비의 순간은 나비가 사는 내내 누렸던 '나비의 시간' 보다 더 빛나고 달콤합니다.
나비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꿀벌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고, 당장 출근을 멈출 수 없는 직장이 있기에 나비의 시간을 살 수는 없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나비의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