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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ul 20. 2023

"저는 수채화처럼은 아니고, 유화처럼 우울감을 느껴요"

우울하기도 해요? 라는 그 질문에 대하여

회사에 어떤 팀장님과 같이 일하는 분들과의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술자리였다,

아직 친하진 않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비춰지는지 잘 모르겠다.

우선 회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을 빌리자면


"입사이래로 OO처럼 아침에 밝게 인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OO은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 것 같아요, 아앗"

"저는 이제 송년회 MC 3년 연속이에요, 내년에는 OO가 하면 잘 할 것 같아요, 캐릭터가 딱 나같아!"

"OO는 워낙 친화력이 좋고 인싸니까"


또 뭐가 있을까, 승무원을 할 때도 동기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가 우울함을 느낀다고?! 너가?!"


타인의 표현은 이만큼 빌렸으면 된 것 같고, 내 입으로 다시 말하자면, 그래 나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인사성이 밝고 사람들이랑 쉽게 잘 어울리는 편이다. 아, 예전에 나를 좋아했던 어떤 오빠는, 내가 너무 밝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데 본인은 퍽 우울한 사람이라, 나를 만나면 본인도 밝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래, 이정도면 꽤나 보통의 사람들은 나를 밝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가끔 우울하다는 말을 내뱉으면, "너가?엥?" 하는 반응을 자주 마주친다. 그 날 술자리에서도 그랬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나를 두고 밝다고 칭찬하자, 옆에 계시던 팀장님이 "OO은 우울함을 느끼긴해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음, 저는 수채화처럼은 유화같이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팀장님과 그 자리에 있던 한 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한 분만이 "아 무슨말인지 알 것 같다" 라고 대답했다. (아직 그가 제대로 내 비유를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표현은 친한 동생과의 통화에서 생겨났다. 나와 가장 무용한 것들, 철학적인 것들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친한 동생이 있고, 같이 전화를 하다가도 글감을 찾으면 갑자기 글을 쓰러가겠다고 말하는 그런 나보다도 훨씬 인생의 고귀한 가치를 쫓는 그런 동생이다. 그 동생과 나는 서로의 검정색을 잘 알고 있다. 비슷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의 우울할 수 있는 능력을 알고 있다. 오히려 나의 그런 우울한 감정을 잘 알고 있는 동생은, 내가 보통 사람들과 지낼때 보이는 밝은 면을 신기해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날밤, 그 동생은 나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 동생이 걱정하는 것처럼 겉으로 애써 밝은 척 웃어 넘기며 속으로는 새까맣게 타고가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순간들도 있지만, 나의 밝음과 우울함은 수채화가 아니라 유화이기 때문이다. 수채화는ㅡ노란색이 있는 도화지에 검정색을 칠하면, 노란색은 검정색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두워진다. 검정색이 칠해져있는 곳에 노란색을 칠해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검정색이 노란색에 끼치는 영향이 더 강력하다. 하지만 유화는, 이 곳 저 곳 노란색과 검정색을 칠해도 서로 영향을 받지 않고 공존한다. 마치 나의 밝음과 우울함과 같이 말이다. 때론 우울해서 어두운 날도 있겠지만, 때론 애써 눈물을 삼키는 날도 있겠지만 물론, 보통 나는 마치 두 페소아가 있듯이, 밝은 모습의 나도 가식 없는 나 자신 그대로고, 우울할 때의 내 모습도 그대로의 나 자신이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 두 세포가 왔다갔다 거리듯이 말이다. 


우울함이 밝음을 빼앗아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린다면, 유화가 수채화보다 낫다고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보여주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의 한 면만을 쉽게 보게 되는 것 같다. 때론 황토색으로, 때론 회색으로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색이 칠해진다해도 어쩌면 그게 더 사람다워보일 수 있을텐데 말이다. 


결론은 제가 그렇게 마냥 티없이 밝은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그저 우울한 사람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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