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본 사람들은 안 먹더라고요

한일 먹거리 비교

한국으로 귀국하고 바로 다음 해, 일본에서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분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달려왔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와 생애학습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생애학습관의 수강생들은 몇 년이 흐르자 곧 친구가 되었다. 연배도 비슷한 중년 이상이어서 잘 어울릴 수 있었다.


한국 도착 첫날 우리 집에 초대를 하였다. 난 미리 준비한 떡과 마침 가을 연시가 한창인지라 함께 내놓았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도 연시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일본에 살 때 슈퍼에서 가을이면 단감, 곶감은 봤어도 연시는 본 기억이 없다.



'아, 이들은 연시를 안 먹지, 에고 실수했네. '

웬만하면 "한국인은 연시를 먹어요?" 물어보면 좋겠지만,

일본인들의 성격은 대부분 잘 질문하지 않는다. 상대가 민망해할까 봐 혹은 실례가 될까 봐.


당황하지 않고 "한국인은 연시를 엄청 좋아해요. 단감도 먹지만." 말했다.

나만 먹었다.


헤어진 지 일 년이 되었을 뿐인데 할 이야기가 어찌나 많았던지 한참 수다 삼매경 후,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한국 야끼니꾸, 삼겹살에 쌈 싸 먹으러 갑시다." 외치자 와아, 손뼉을 쳤다.


삼겹살을 각종 야채에 싸서 먹으며 그들은 "오이시이, 오이시이."를 연발하였다.

"너어무 먹고 싶었어, 역시 한국 삼겹살 최고야."

그때  한국 계란찜 맛도 소개하고 싶었다.


투박한 뚝배기에 푸짐하게 봉긋 올라와 보글보글 거리는 뜨거운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푹 퍼서 호호 불며 먹는 그 보드랍고 짭조름한 감칠맛의 그 뚝배기 계란찜. 떠올리기만 해도 입맛 승천하는 맛.


"여기요, 뚝배기 계란찜도 두 개 주세요. 여기랑 저기에 하나씩이요."

특별 주문한 뚝배기 계란찜이 상 위에 놓이자 그들은 이게 무얼까 잠시 보더니, 곧 아무도 진짜 한 사람도 한수저도 먹어 보려 하지 않았다.

어머, 왜? 와이? 나제? 도우시떼?

이번에는 이것도 한국인의 최애 메뉴 중 하나예요 라는 말도 못 하고 나만 퍼먹었다.

 '아고, 배부르다. 고깃집에서 계란으로 배 채웠네.'


사진출처 픽사베이


공동으로 퍼 먹는 것 같아서였을까?(일본은 결단코 공동으로 먹게  음식을 내오지 않는다.) 아니지 내가 따로 퍼담을 개인 접시도 주었어.

한 사람도 입에 안 댄 이유는? 겉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너무 푸짐하고 부글거리는 것에 질리고 정갈해 보이지 않았나?  (아이, 그냥 물어볼 것을.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자.)


이 분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사진은 못 찾았다. 대신 내가 한국으로 귀국할 때  환송식 사진.  2019년


이번에는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스포츠센터에 다녔는데, (일본은 스포츠센터 등록비가 한국에 비해 엄청 저렴하다. 동네마다 큰 스포츠센터가 있는데 등록하면 수영, 아쿠아 운동, 요가, 복싱에어로빅, 발레, 발리댄스, 줌바, 전통춤, 헬스장 기구사용 등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다.  한국에 와서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요가나 줌바 하나만도 몇만 원이라고 해서 부담이 되어 선뜻 등록하기 쉽지 않았다. 일본은 전 국민의 기초 체력 향상이 건강보험공단 예산과 국민의료비 절감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대대적인 지원정책이 있는 듯하다. ) 가을이 되면 밤을 갖다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번은 줌바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도 얻었다며 나눠먹고 싶어 가져왔다고 밤을 한 봉지 주며 "임상, 밤은 약한 불에서 오래 뭉근하게 삶아야 해요." 각별한 주의를 부탁했다. 고맙다고 인사하면서도 밤 삶는 법을 무슨 비법인양 알려주는 것이 의아했다.

생율이 먹고 싶었던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하나 까서 입에 넣고 씹었다.

에구머니나, 아니 어떻게 이렇게 벽돌처럼 단단하고 억세고  떫을까? 한국의 생율하고는 아주 달랐다. 아하, 그래서 뭉근하게 오래 삶으라고 한 것이로구나.

일본의 밤은 생율로 먹지 못한다.

고구마도 날로 깎아 먹지 않는다. 억세다. 그러나 삶거나 구워 먹으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또 한 경우를 보자.

한국에서 혼자 남아 대학 다니는 딸도 있고, 수업(한국어와 한국문화) 자료도 구해야 해서 한국에 자주 왕래를 하였다. 왔다 갈 때면 의례 먹거리를 한 보따리 쟁여갔는데(아무리 일본 식자재가 한국과 비슷하고 입에 맞아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 눈을 번득이면서 찾는 것이 찰옥수수였다 (왕서민 임여사의 서민적인 입맛이라니.)

찰옥수수를 쪄서 얼려 갖고 가서 두고두고 먹고 싶을 때 하나씩 쪄 먹곤 했다. 다시 삶아 뜨거운 녀석을 호호 불며 한 알 한 알 뜯어먹는 맛이라니.


일본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는데 우린 친구가 되어 온천이며 등산이며 여행도 함께 많이 다녔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내가 이번에 한국에서 정말 맛있는 옥수수를 구해 왔으니 와서 맛보라고 집으로 불렀다.

그녀 앞에 야심 차게 한 개를 쪄서 내놓으니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 알 뜯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녀의 "오이씨이~"소리를 기대하며 뿌듯한 엄마 미소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그 표정이 뭐랄까, 많이 어색하고 민망한 표정이었다. '이게 뭔 맛이야, 그렇다고 인사치레로 맛있다고 할 수 도 없는데.' 그녀의 난처한 표정이 읽혀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찰옥수수도 아니구나, 맞다. 여기는 초당 옥수수처럼 달달하고 물렁하고 들고 한입 물면 이 사이에 온갖 섬유질이 끼어 난감한 그런 옥수수였지. '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예전에 그녀와 규슈 남부지방으로 여행할 때 길거리 농부가 권해주던 생 옥수수, (이 옥수수 맛있는 거라면서 그녀가 반가워했다.) 생으로 먹는 달콤하고 아삭하지만  이 사이에 옥수수 껍질이 잔뜩 끼어 곤혹스러웠던 그 옥수수가 생각났다.

찰옥수수는 당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그녀 입맛에 익숙지 않았으리라.


흥미로운 한일 간 입맛의 차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며 식자재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었는데 이런 작은 차이를 느낄 때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들이 보고 싶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 봐야겠다.

(일본인은 대부분 카카오톡이 아닌 라인 LINE을 사용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