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퇴사 해방 일지 - 프롤로그
회사에서 월급이 밀린다고 한다.
20대 내 생은 통틀어 방황이었다.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혼돈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까마득한 저너머 길이었다.
내 안의 나는 너무나도 많았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매번 달라졌고, 마치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무대를 휘젓고 연극하는 배우였다. 나를 정립하는 과정에 나는 매 순간 몰두했다.
그런 내가 꿈까지 여러 개인 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꿈은 단 하나였다. 이상하게 그것은 단단히 굳어져 깨지지도 않고 10년 동안 나를 불러댔다. 내 심장을 쿵쿵 울렸고 외면할수록 더 커지는 허벅지 깊숙한 곳 붉은 점 같았다. 아이러니하게 내 꿈은 18살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내 방황이 시작된 건 언제였을까. 거슬러가 보면 회사에서 월급이 밀린다는 공지가 떴을 때부터였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사무실 공기, 몇 달간 지속된 상황, 갑작스러운 변화들. 이상을 외면한 채 현실을 살던 내게 차가운 돌이 던져진 그날. 유리창은 깨져버렸다.
회사가 기우뚱하면서 다른 기업이 인수합병을 하게 됐다. 당장 3개월 뒤, 회사는 서울로 이전을 마쳐야 했다. 부산에서 20년 넘게 살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가에는 노란색 박스가 늘어났다. 처음 맞는 딸의 독립에 엄마는 부랴부랴 짐을 쌌다. 얇은 매트와 작은 탁자를 사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서울로 올라가던 날은 여름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봄이었다. 노란 박스를 실은 차 안은 뜨겁고 고요했다.
자취하고 나는 더 불안정한 인간이 됐다. 그것은 사실 나 자신을 진실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진짜의 나를 마주하는 매 순간은 허상 같기도 하고, 단단한 기쁨이 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념 속에 실체를 찾기도 했다.
총 세 번의 퇴사를 겪었다. 중간에 아예 다른 직업을 해보기도 하고 동종 업계로 이직하기도 했다. 분명 좋아하는 업종에 다니고 있지만 불행했다. 하루를 바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은 공허함만 자리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기계처럼 하는 삶. 나의 40살 과장 혹은 부장이 된 나를 그려보자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실행하지는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늘어났다.
모든 방황은 서른 살, 세 번째 퇴사를 하면서 비로소 끝났다. 중심부를 겉돌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문 앞이었다.
번아웃, 건강악화, 이직, 퇴사, 모든 사건과 현상들, 내가 가장 미워한 사람, 인간관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과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쓰기로 했다.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퇴사에서 해방된 과정들을, 방황의 모든 순간들을.
이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자아를 정립하기 위한 나의 피나는 기록들이다. 누구나 자립하면서 경험하는 평범하고도 혼란스러운 순간들이고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 끊임없이 올라탔다는 것이다.
20대의 내 생각과 감정의 전부, 아름다웠던 방황, 그리고 서른 살. 비로소 퇴사에서 마침표를 찍은 나의 해방 일지이다. 나는 그 담담한 기록을 써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