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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Mar 14. 2022

올해는 권진규 조각가 탄생 100주년이다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를 가다



권진규 아틀리에. 오른쪽 아래 손 모양은 아틀리에에 비치된 스템프다. ⓒAndy Oh



한성대역 1번 출구에서 내려서 미아리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어렸을 때 이 근처 학원에 다녔다. 권진규 선생님이 73년도에 작고하셨으니까 이 근처 어디서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골목을 따라가면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있는 곳이다.



권진규 선생님은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서 1943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으로 유학 갔다. 일본 조각계의 인정을 받은 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6년간 결혼생활을 했으나 1959년 부친이 돌아가시자 귀국한다.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에 직접 작업실을 만들고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곳이 권진규 아틀리에다.



앙투안 부르델은 파리 미술학교에서 로뎅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등 작품을 제작하며 로뎅과 함께 조각계의 3대 거장에 꼽히기도 하였다. 시미즈 다카시는 파리에서 5년간 부르델의 지도를 받은 제자였다. 그가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교수였고 권진규의 스승이었다.



몇 년 전에 일본 무사시노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다. 동경시내에서 1시간가량 전철을 타고 가서 또 버스로 갈아타고 20분 정도를 더 간다. 일본 사립 미술대학 중 최고라고 해서 서울의 홍익대학교를 생각하고 갔지만 무사시노 대학은 홍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사시노는 주택가 한가운데 너무도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캠퍼스는 아담하고 예뻤다. 조용하고, 뭔가를 파고들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듯하다.


권진규 선생님도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셨다고 하는데, 아마 이곳 생활이 권 선생님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아틀리에는 폐허로 남아 있었는데, 권 선생님의 동생 권경애 여사께서 2006년에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에 이곳을 기증하였다. 내셔날트러스트는 조정구 건축가와함께 리노베이션을 했고 지금 이곳은 조각가의 정신을 잇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대여해주고 정기적으로 일반시민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단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권진규 선생님이 1922년 4월 7일생이시까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다. 앞으로 아틀리에를 더 자주 개방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또한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3월부터 5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고,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 미술관에 상설 전시실은 만든다. 작가로는 천경자에 이어 두 번째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설전시실이다.



권진규 아틀리에 전경. 보라색 대문을 달았다. 건물 뒤편이 매우 가파르다. ⓒAndy Oh


동선동은 길도 넓고 상가도 많다. 그런데 권진규 아틀리에는 거기서 좀 더 들어가서 좁은 계단을 거쳐서 골목 끝까지 올라간다. 길에서 제법 올라와야 할뿐더러 골목 끝은 성신여고가 높게 자리 잡고 있고 비탈이 굉장히 가파르다. 마치 산 기슭의 첫 번째 집인 셈이다. 왜 예술가들은 꼭 이런 데다 집을 마련할까. 물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도 있었겠지만...


이 집은 정서향(正西向)이다. 성신여고가 산처럼 동쪽을 꽉 막고 있다. 해가 잘 들리가 없다. 게다가 집인에 우물을 3개나 파 놓을 정도로 물이 넘쳐난다. 습하다는 말이다. 해가 들지 않는 습한 집에 살면 누구라도 우울해진다.




아틀리에를 개방하는 날은 내셔날 트러스트에서 도슨트가 나와서 권 선생님 작품과 아틀리에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원래 여기는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벽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지금은 벽을 허물어 주거공간은 사무실 및 작업실로 만들고 작업공간은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도시형 한옥이라 해도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삼선교나 보문동의 집들과는 달리 이 집은 60년대에 지어져서 부재도 주로 각목을 썼고, 특히 작업실은 천장을 높게 만들었다. 높은 천장은 모든 조각가의 꿈이다.  자기 작업실 천장보다 높은 작품은 못 만드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을 지으셨을 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권진규 아틀리에 전경 ⓒAndy Oh


오늘의 스케치는 당연히 아틀리에 작업실로 해야 한다. 작업실 안에서 의자를 놓고 그리려 하니 작업실 안에는 안되고 입구에 의자를 놓고 그리라고 한다.  이집은 브로크로 쌓고 시멘트로 마감한 집이라 정말 약한듯하다. 요즘 처럼 콘크리트로 만든 집이 아니다.


권진규 아틀리에 전경 ⓒAndy Oh


작업실은 예전에 권선생님이 사용했을 때를 복원해 놨는데, 가운데 커다란 이젤을 놓았다. 그렇게 큰 이젤은 큰 유화를 그리는데나 사용되는 것인데, 아마 선생은 그 이젤은 한 번도 안 쓰셨을 듯하다. 이젤 대신 조소 작업대를 놓았으면 좋을 것같다.



ⓒAndy Oh


스케치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생각해보니 작업실이 제아무리 커도 작품을 문밖으로 갖고 나와서 아래까지 끌고 내려오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겠다 싶다. 선생의 작품이 다 작았던게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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