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본업은 망나니
아무 방향 감각 없이 목표도 없이 바다 위를 떠도는 쓰레기 같은 시간을 보냈던 젊은 시절의 이소망은 단순히 돈이나 벌어서 즐기며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양 매일 술 마시며 방탕한 한심한 삶을 살아왔다.
이소망은 부유한 집안 덕에 사회 첫발을 그의 아버지가 관여하던 군화 납품회사에 상무이사로 시작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 인 샘이다
이때 이소망의 나이는 불과 23세의 철없는 어린 나이였다. 이소망은 하루아침에 중소기업의 임원이 되었다. 군화 납품회사인 신영개발에 상무이사로서 영업 및 관리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군화 납품업은 정부가 지정한 10개 이내의 제한된 업체가 군 당국으로부터 돌아가면서 수주를 받는 사업구조다.
특별히 영업활동을 하지 않아도 돈은 자동적으로 벌리게 되어 있었다. 더구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 배경으로 상무 감투를 쓰고 있다 보니 무소불위였다. 나이 든 관리자들은 일은 자기네 들한테 맡기고 회사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철없는 어린 임원을 공깃돌 놀리듯 놀려 먹기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 이소망의 본업은 여전히 술 마시기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소망은 본격적으로 기방 출입을 시작하면서 방탕한 생활은 날로 더해 갔다.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 이러다 보니 회사 경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 회사의 권리를 타 회사에 팔아넘겼다
비록 사업은 실패했지만 군화 납품 사업을 통해서 이소망은 나름 데로의 귀중한 인생 체험을 하게 되어 평생 사업을 하면서 이때 터득한 사업의 비정함과 비리가 어느 곳에나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군화 납품 사업은 원자재 인 소가죽과 생고무를 군 당국으로부터 사급 받아 이를 임가공 하여 군화를 생산 납품하는, 구조의 사업으로, 임가공비를 받아 수익을 내는 사업이지만, 실제 수입원은 남는 원자재를 소가죽 시장에 내다 팔거나 이를 사용하여 수입을 내는 비리 사업인 것이었다.
, 당초 원자재 소요량을 산출하면서, 군 당국과 기업들이 짜고 주원료인 소가죽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텍사스 산 소의 4분지 1 크기의 국내산 소를 기준으로 소요랑 산출을 하도록 구조를 만들어 놓아서, 원자재 수령 시점에서 남는 소가죽을 갖고 수익을 창출 토록 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 대전에 있는 수구레의 역한 냄새나는 소가죽 원자재 창고에서 사급 수입 소가죽을 수령하여 서울에 도착 즉시 국내 소가죽으로 차떼기로 바꿔 치기 하여 현장에서 번개 같이 바로 현금을 챙기고, 새벽녘에 귀사 하는 직원들을 술이나 퍼마셔 대는 이소망이 이러한 실정을 알도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소망은 남루한 옷차림에 값싼 담배를 꽁초까지 아껴 가며 피우는 직원들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까지 전하곤 하였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손실을 보고 담당 직원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가 되어 실무자들은 집을 몇 채씩 사들이는 알부자들로 변하였고, 회사는 거덜이 나게 된 것이다.
. 이러한 한심한 짓거리를 하는 아들도 자식이라고 이소망의 아버지는 또다시 이소망에게 기회를 주셨다. 군화 회사 매각 자금으로 지금의 저축은행 전신인 상호신용금고를 설립해서 어린 이소망이를 또다시 대표이사로 임명하여, , 회사 운영권을 전적으로 맡기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소망이를 더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꼴이 되었다.
이소망은 사장이 랍시고 당시 로서는 최고급 세단인 크라운을 몰고 다니면서 밤마다 무교동 유흥가를 누비고 다녔다. 만취 상태에서 차를 마구 몰다가 죽을 뻔 한 사고를 내기도 했다. 아무도 이소망이를 말리지 못했고, 이소망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고만장이었고, 오만의 극치였던 시절이었다 낯 뜨거워서 생각도 못할 지껄이를 거침없이 해대고 다녔다, 당시 유흥업소에 종사하던 아가씨들은 요즈음 아가씨들 하고 전혀 달리 무능한 세대주를 대신하여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하여, 또는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하여 업소에 나오는 순수한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순수한 여인들을 상대로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폭언을 퍼부어 대는 것뿐 아나라,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던 망나니였다.
사장이란 작자의 본업이 망나니다 보니, 회사가 더군 다나 현금을 다루는 명색이 금융회사가 잘 굴러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이소망이 스스로 아버지에게 말이 금융업이지 사채 업자나 동일하여 젊은 사람이 운영하기에는 적합지 않다는 명분을 내세워 완전히 사업을 털어 먹기 직전에 사업을 접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한 것이 유통업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유통 근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슈퍼체인업체를 지정하여 유통의 근대화 및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결하여 소비자에게 보다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통구조 개선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소망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슈퍼체인 허가 신청을 하고 ‘생협슈퍼체인’이라는 상호로 사업권을 획득, 수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또 술이었다. 거래 업체들과의 교제 술자리가 불가피했고, 이를 핑계 삼아 자연스레 술집 출입이 이전 보다 더 다양하고 잦아졌다. 새 사업을 통해 행실이 달라지고 바로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이소망의 사생활은 종전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나갔다. 심지어는 졸지에 망나니’라는 별명을 달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이소망의 방탕한 생활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더 이상 못 참아 주시겠다며, 크게 화를 내셨다. 아버지의 호된 꾸짖음에 이소망은 그가 맡았던 업무를 다 내려놓고 회사도 떠나고 급기야 집을 나왔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그 길로 이소망은 남대문에서 자개 공예품을 취급하는 친구를 찾아가 그 회사의 해외수출 전담 임원으로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이소망은 친구의 양해를 받아 단독으로 자개 공예품 수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이소망이 개발한 아이템 중 코란경을 자개 글자로 개발한 상품과 자개 꽃병들이 당시 중동 특수에 힘입어 사업이 나름대로 번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