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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un 04. 2024

퇴직, 뭐가 문제야

860만 쓰나미, (사회적으로) 어떻게 맞이하고 (개인적으로) 준비할까

퇴직, 뭐가 문제야?     


지난해 8월, 조직담당관실에서 발송한 공문을 무심코 클릭했다. 부서별로 정책연구모임을 구성하여 6개월 정도 진행하고 평가, 시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늘 하던 일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페이지를 내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을 발견했다.     


* 소속 부서에 제한 없이 연구과제 중심으로 모임 자율 구성 허용     


이거다! 쾌재를 불렀다. 나는 퇴직을 앞두고 퇴직 선배를 만나고 있었다. 간단하게 식사하면서 퇴직 이후 근황을 물어보았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도 했고, 가끔 저녁 자리에 모시기도 했다. 선배들은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어깨너머의 사연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퇴직하고 6개월 정도 집에 있으려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

“60살 되니 갑자기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이 일시에 쫙 빠지는 거야

은행에서 전화가 제일 먼저 오는 거야대출금 상환독촉이지마통도 아예 안돼     


퇴직 선배의 말을 주워 들면서 퇴직의 충격은 상상이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에 목말랐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분산적으로 채집한 이야기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다른 부서원들과 팀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당장 노인복지과 직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퇴직과 관련된 정보와 통계, 전문가 네트워크를 가진 부서이자 나중에 시책을 제안하면 실행할 부서다. 예전에 함께 근무한 직원 중에 몇 명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9명의 직원으로 ‘BIG 시니(Busan Is Good for Senior Life)’팀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그룹 인터뷰다. 퇴직자, 퇴직 예정자, 청년 재직자, 퇴직자 배우자, 그룹별 4~5명씩 인터뷰를 진행했다. 질문내용은 미리 만들었다.      


퇴직의 의미가 무엇인가

건강재정관계여가 중 어느 부문이 가장 힘들었나? (또는 예상하는가?) 

분야(건강재정관계여가) 별 이슈는 어떤 것이 있는가

지방자치단체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창원에서 개최된 한국 지방정부 학회(2023.11.17.)에서 중간발표를 하였다. 퇴직자 배우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참신하다, 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가족이 퇴직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우자가 들려주는 심리나 행동의 변화를 다시 피드백해 주면 퇴직자가 깨우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인터뷰는 스토리가 있다는 이유로 소중하다. 퇴직자 예정자는 관계를 끊으려고 하고, 퇴직자들은 관계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소중히 가꾸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성인 자녀 부양을 걱정했다. 퇴직한 배우자의 자존감이 꺾이는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청년들은 다양하고 장기적 관점의 재취업교육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반으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응답자 91명), 서울시 50+재단, 동작구 50+지원센터, 부산장노년 일자리 센터를 방문하여 추진상황도 들어보고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자체 세미나도 개최하면서 생각을 구체화했다. 우리 팀이 제안한 시책이 타당성이 있는지 전문가 5명에게 다시 자문받고 연구를 끝냈다.     


Booking, Farming, Babysitting       


우리 팀이 내린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Booking, 도서관, 즉 책을 중심으로 취미와 건강,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는 플랫폼 만들기. 둘째, Farming, 치유와 관계 형성의 힘을 가진 도시농업 활성화. 셋째, Babysitting, 손자녀를 돌보는 기쁨과 함께 일자리 제공. 세 가지 시책의 공통점은 배움과 관계이다. 퇴직자의 행복은 배움 속에 있고 관계 형성에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연구를 진행하면서 배운 것은 따로 있다. 지금 퇴직하는 60년대생은 앞 세대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나는 퇴직하면 복지관에도, 고용안정센터에도, 직업훈련원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인 하드웨어는 점차 운영비가 없어서 문을 닫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디로? 미래의 공간은 도서관과 캠퍼스다. 60년대생 860만 명, 70년대생 870만 명이 직장을 떠나서 갈 곳은 배울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또래끼리 가르치고 배우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뭘 할 건데? 퇴직 전까지 내가 가진 즐거운 과제다. 퇴직 준비 모임인 ‘시니어라이프 캠퍼스(SeNiorLife Campus, SNL Campus)’에서 차근차근 준비해 볼 작정이다. 내일(2024.6.5.) 첫 미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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