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30대, 저는 직장생활에 쫓기며 하루살이처럼 살았습니다. 배우는 것도 없고 취미생활도 없어 친구를 만나도, 직장 동료와 커피를 마셔도 '할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습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스스로 제게 실망한 것 중 하나는 특정한 사건이나 낱말에 대하여 나의 견해나 주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심리적으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그 시기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잡은 <지식 혁명 보고서>(매일경제신문)와 <신지식인이 21세기를 이끈다>(정임식 저)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독서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와 같은 자기 계발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독서노트를 만들어라, 는 말을 듣고 읽은 책의 리스트를 만들고 독후감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첫 해는 두 권, 다음 해는 여덟 권, 그리고 사십 권, 오십 권으로 늘어나더니만 일주일에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독서력이 올라 갈수록 책을 정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제가 책과 함께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면 책에게 신세 진 게 많습니다.
책과 함께 살아오면서 제게 생긴 변화를 두 가지만 꼽아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늘 독후감을 적다 보니 어떤 책을 읽더라도 책의 핵심을 요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와 소설은 물론이거니와 과학, 예술, 철학, 정치, 경제 서적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주제별로, 저자별로 관심 가는 책을 구입해서 연달아 읽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사실, 지식, 지혜, 통찰력이 저를 쉴 새 없이 자극했습니다.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습니다. 배우려는 태도는 수영, 피아노, 미술, 기타, 보컬, 요리, 외국어로 번졌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시작하고 몇 년 하지 않고 그만두었습니다. 딸에게 '프로시작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지만 '재미있는 게 없을까', 늘 머리를 굴립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지는 날 저는 묏자리나 보러 다니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일도 줄이고 만나는 사람도 줄이게 되었습니다. 남는 시간만큼 책을 더 가까이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유익한 책을 골라 읽고 느낌을 정리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도 하겠습니다.
저는 바쁜 일상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책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최근에 마련했습니다. 유튜버 채널,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시험 삼아 시작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또 잔소리를 듣게 될까 봐 걱정스럽긴 하지만. 물려받은 재산도, 타고난 재능도 없어 자존감을 잃어버린 젊은이가 제가 소개한 글을 보고 책을 가까이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는 첫 페이지를 넘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중간에 책을 덮거나 한 챕터만 읽고 '그 책을 다 읽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지은이의 의도를 알겠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고 나면 책을 읽은 표식이 저의 모습 어딘가에는 남습니다. 저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책과 함께 살아왔던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즐거움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순간, 독후활동을 하는 순간 저는 최고로 몰입합니다. 몰입하면서 가지게 되는 즐거움 때문에 저는 책과 헤어질 수 없습니다.
저는 <몰입의 즐거움>(해냄)을 2002년, 2012년, 2017년에 이어 네 번째 읽었습니다. 친구에게 자기 계발서를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권할 것입니다.
저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삼십 년 간 심리학과 사회학을 바탕으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탐구하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과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미 그은 밑줄에 색연필로 덧칠을 했습니다. 독서노트에 그대로 옮겨 쓴 문장은 보통의 경우보다 곱절이나 많은 일곱 페이지에 달합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을 뜻’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다시 말해서 ‘경험’이라고 저자는 정의합니다.
경험을 행복으로 채우면 가치 있는 삶이 될까요? 저자는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Flow)’이라고 합니다. 행복은 일시적인 만족과 기쁨, 평안한 감정 상태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몰입 후에 따라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을 확연하게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경험 추출법으로 몰입 이론을 정립
본격적으로 몰입을 이야기하기 전에 저자가 사용한 연구방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저자가 7만 건의 데이터를 모은 방법은 ‘경험 추출법(ESM, Experience Sampling Method)’입니다. 연구자가 실험대상자에게 신호를 보내면 연락을 받은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미리 받은 양식에 기록합니다. 이와 함께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합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저자는 ‘몰입’ 이론을 세웠습니다.
저는 경험 추출법을 자녀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꿈이 무엇이냐, 고 묻지 말고 아이가 어떤 일에 몰입하는지, 어떤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부모가 자녀의 생각과 활동에 함께 몰입한다면 더 좋겠죠? 성장기에 몰입의 경험을 많이 한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시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몰입의 특징, 세 가지
다음은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몰입의 특성을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몰입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몰입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목표와 규칙이 설정되어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으면 몰입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몰입의 경험이나 몰입 뒤에 오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사항을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목표와 규칙이 있는지,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지, 기분 좋은 피드백이 있는지, 내가 혹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유튜브 동영상 만드는 시간 동안 몰입을 경험합니다. 동영상을 만드는 데는 정확한 순서와 규칙이 있습니다. 책 읽고 감상문 쓰기, 시나리오 쓰기, 피피티 만들기, 녹음하기, 동영상과 배경음악 찾기, 편집하기, 동영상 업로드하기가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유튜브 동영상은 피드백이 빠릅니다. 실시간으로 조회 수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한 전제 조건
몰입의 즐거움을 이야기할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몰입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몰입의 경험으로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저자는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야 한다, 고 강조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수영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는 세 달 정도는 집중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저는 10년 이상 수영을 하면서 바다, 강, 실내 수영장의 물을 엄청나게 들이켰습니다. 이제야 물이 편안해졌습니다. 몸의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물아일체(水我一體)의 황홀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공기 말고 물로 채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읽는 것이 뭐가 어렵나, 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독서가 취미와 자기 계발의 방법이 되지 못하고 임시적이고 시간 때우기로 전락하는 것은 체계적인 독서 전략이 없기 때문입니다. 책 고르기, 메모하기, 정리하기, 생각 키우기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인간관계에서의 몰입
저자는 삶의 질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제가 최고의 자기 계발서라고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직장일이 괴로운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하는데서 느끼는 불만, 업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 이 세 가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상황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일에 관심을 기울이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 우리 삶을 뒤바꾸는 중대한 사건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메모하는 습관도 언급합니다. 메모는 일의 순서를 매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상황을 잘 제어하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준다고 하니 일석이조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면 사회생활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대화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면서 대화를 유익하게 하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먼저 상대방의 목표나 관심사항을 파악하고 성취한 일과 성취할 일에 대하여 집중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것을 요구합니다.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악보 없이 연주하는 훌륭한 재즈 연주와 같다고 합니다.
자기 목적성
이번에 <몰입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자기 목적성’입니다. 저자는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사람의 성격은 자기 목적성으로 충만해 있다.’고 말합니다. 일자체가 좋아서 할 때, 일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이를 ’자기 목적적‘이라고 합니다.
경험 추출법(ESM)으로 나 자신이 몰입을 경험하는 때를 측정해본다면 ‘수영, 독서, 글쓰기, 유튜브 영상 만들기’ 일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행위들이 보여주기나 경쟁의 수단이 되고 있지 않은 지 반성해봅니다. 아직 그 자체로 즐기는 정도의 레벨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이 세상이 공기 말고 물로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내 삶이 보여주기나 경쟁 말고 몰입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을 쓰는 훈련, 집중하는 습관을 더 가져야 하겠습니다. 무질서한 내 삶에 순서를 잡아야겠습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이 가져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니면 묏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오든'의 말을 인용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묘자리나 보러 다니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