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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Dec 04. 2023

어떤 주제로 글을 써 나갈 것인가

출발부터 막혀버린 책 쓰기

책을 쓰기 전 나는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천 권의 책을 읽고 천 회의 독후감을 쓰고 나면 나만의 글체가 탄생할 것이고 글이 저절로 쓰일 것이다. 두 번째, 그동안 작성한 독후감을 잘 분류하고 정리하여 진액만 뽑아내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에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일천 회의 독후감을 쓴 사람도 자신의 글체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글체는 글을 쓴 사람의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개성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김훈 작가를 들 수 있다. 짧은 문장에 담긴 차가움과 단호함이 주는 매력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독자를 어루만져주는 문체도 있다. 나도 오랫동안 독후감을 써왔으니 내 나름대로 문장 스타일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나의 허망한 소망에 불과했다. 우선 독후감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었다. 독후감이란 책 내용을 소개하고 내가 가지게 된 감상을 적는 것이다. 독후감 중 많은 분량이 저자의 글을 인용하여 내가 풀어내고 살을 덧붙이는 작업이다. 나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글쓰기가 아니라 저자의 문체에 끌려다니는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글체가 생기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글을 놓고 한 번도 제대로 평가나 수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뼈를 때리는 비판을 받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런 통로가 내게는 없었다. 글쓰기 학원이나 온라인 프로그램을 수강하지도 않았다. 이번에 책을 교정하면서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들은 지적들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도 글의 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출간예정인 책을 교정을 봐달라고 아내와 딸에게 요청했다. 딸은 나의 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를 들면 '~것'이라는 표현이 한 문단에 서너 개 들어있는 곳도 있다고 하면서 마치 리포트 페이지수를 늘이려는 얄팍한 대학생의 과제물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외국 번역서적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안 좋은 책도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면 관련 영상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내가 브런치에 독후감과는 상관없는 일상생활과 퇴직, 배움과 관련된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이로부터(책으로부터) 생각의 실마리를 건네받지 않고 스스로 글자를 지어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작성한 독후감을 누가 볼까?


더 심각한 문제는 책의 주제를 정하는 데 있었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출판사 편집장을 20년 넘게 한 분과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이제까지 써 온 독후감을 주제별로 잘 분류해서 핵심만 뽑아내고 이야기들을 다시 엮어냈다. 70% 정도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었을 때 컨설턴트가 내게 한 말이다.


이 글을 누가 읽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누가 내 글을 돈 주고 사보겠어? 유명한 작가나 예술가, 인플루언스도 아닌 내가 그렇게 매력적인 문체도 아닌 독서일기를 썼다고 해서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장정일 작가 정도는 되어야 독서일기를 쓰는 거지. 일 천권 읽은 사람만 해도 수 만 명은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참담함은 그대로 고민으로 연결되었다. 컨설턴트와 줌으로 회의를 몇 차례 더 하면서 콘텐츠를 찾아냈다. 바로 나의 독서 방법을 써 보자는 것이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나는 자신이 있었다. 20년 넘게 책을 읽어오면서 나만의 독후활동 스타일이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는 스토리 라인을 잡아주었다. 책을 읽게 된 경위, 한 권 두 권이 쌓이는 과정, 독후활동의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 확장되는 독서 영역을 써 보자는 것이다.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다행스럽게 오랫동안 독후활동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이 없었다. 나는 토닥토닥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만의 샘물을 찾아라


책을 한 권 펴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일반인은 소수다. 시중 베스트셀러 대부분은 외국 번역서적이고, 출판업계에서 유명한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로 책을 내고 있다. 무명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고 출판사와 손잡고 책을 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 다니면서 책을 쓰기는 더 어렵다.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자신 안에 숨어있는 샘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샘물은 항상 차고 넘쳐서 표주박으로 아무리 퍼내도 늘 차 있어야 한다. 책을 펴내는 행위는 내 안의 샘물에서 맑고 깨끗한 물을 퍼서 독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책을 쓰기 위한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만 만족시키면 된다. 첫째, 이야기가 넘쳐나야 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많이 해도 또 이야깃거리가 샘솟아야 한다. 독서 방법론 도서만 200권 읽고 핵심을 요약해서 출판한 A와 소설, 시, 인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책 200권을 읽는 과정을 통찰력을 가지고 독서 방법론 도서를 펴낸 B를 비교해 보자. 


A는 자기 계발서를 요약해서 자기 계발서를 출판했기 때문에 자신의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나면 더 할 이야기가 없다. 이에 반해 B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터득한 방법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신이 읽은 200권의 내용과 독서 방법론이 결합된 새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 있다. 


샘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몰라도 좋다. 바닥에서 퐁퐁 솟아날 수도 있고 깊은 산속에서 물줄기가 졸졸 내려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르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심한 가뭄이 닥쳐도 물은 넘쳐야 한다. 


둘째, 타인에게 전해 줄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읽는 사람은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그만큼 얻는 게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샘물이 탁하고 불순물이 섞여있다면 누가 그 물을 마시겠는가?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깨끗하고 시원한 샘물만이 퍼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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