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평균 12시간, 이틀 연속 14시간을 일했음에도
나는 주말에 또다시 실험실에 가야만 한다.
다음 주 랩미팅 순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30분. 시간이 늦어 한적해진 실험실.
엊그제 불이 났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불난 지 1시간 정도 채 안 돼서
매캐한 탄내가 다 빠지지도 않은 실험실에 들어가하던 일을 마저 했던 선배들.
“그래도 금요일 밤이라고 오늘은 좀 빨리들 퇴근했구나. “
그렇지. 이게 정상이지.
탄내로 가득한 실험실에 6명 넘는 사람들이 실험하고 있던 장면은 그야말로 광기였다.
센트리 앞에 털썩 앉아 타이머가 다 돌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랩미팅이 다음 주 화요일 오후니까, 대충 주말 다 바치고 월요일 새벽에 퇴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
저번 랩미팅 후 몇 주가 지났는 데도 발전이 없었다.
우리 랩실뿐 아니라 다른 랩실, 심지어 미국에 계신 교수님과도 연관된 대형 과제라 커뮤니케이션이 느렸다.
그 와중에 교수님은 도무지 안될 것 같은 걸 되게 하라고 시키고.
“아니, 자연이 그렇게 생겨먹은 거를 어떻게 거스르라는 거야..”
불가능한 걸 되게 하라는 식의 압박이 머리를 계속 지끈거리게 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포스텍에 온 후 식사량과 소비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눈 뜨자마자 실험실에 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감는 일상에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 반동으로 생긴 부작용이다.
술을 찾는 날도 늘었다.
미칠 것 같은 뇌를 속이고 기분을 붕뜨게 만드는 데는 술이 제격이다.
많이 마시면 수면의 질이 안 좋아지니
맥주 500cc 캔을 한 번에 다 마시지도 못하고 절반은 내일을 위해 소분해 놓는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알코올을 섭취해 온 나날이 연속 3일이 되었다.
내일도 실험실에 출근할 테니 아마 내일도 술을 마시지 않을까 싶다.
상태가 안 좋아져 간다.
25살, 꽃다운 나이에 K가 줬던 군대 체육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
머리 말릴 시간이 없다. 머리를 말릴 바에야 잠을 더 자겠다.
드라이기를 가지고 오피스에 출근해 화장실에서 빠르게 말리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30대의 나는 지금의 나를 미련하다며 책망할지도 모르겠다.
안 좋아져 가는 체력,
늘어나는 스트레스,
줄어드는 자기 관리,
매일이 똑같은 일상.
오직 일을 위한 일상.
나는 미래의 내가 가장 부러워할 나이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더 잘못되어 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4달만 이렇게 살아도 죽을 것 같은데 이렇게 3년을 살아가라니 말도 안 된다.
우리 랩에서는 꼭 졸업할 때까지 예상치도 못한 병 하나씩을 달고 나간다고 하던데,
이대로 가다간 그 어떤 병에 걸리든 변명할 수 조차 없다.
앞으로는 행복할 방법도 많이 생각해 둬야겠다.
20년 뒤의 내가 지난 청춘을 떠올리며 후회하지 않도록.
눈칫밥을 먹더라도 여행을 가고,
욕을 먹더라도 빠른 퇴근을 하고,
내 평판이 무너지더라도 휴식을 취하자.
미친 듯이 일만 해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난 역시 다채로운 삶을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