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읽어본다 17: <부엉이 달 >
<Owl Moon> Jane Yolen John Schoenherr 1987 Philomel Books
겨울 한 복판, 눈이 쌓인 숲 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놀이로 자연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다. 눈썰매 타기 정도?
한국 도시인에게는 더욱 생소한 미국 동부 시골. 땅이 넉넉한 미국은 사실 도시라 해도 잠깐 나가면 금방 숲에 싸이게 되지만, 겨울이면 어김없이 눈에 묻히는 그 동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겨울 놀이들을 해왔을까?
이번 그림책의 소재인 부엉이 부르기( Owling)가 그런 놀이다.
이 놀이의 재료는
1. 아이(6, 7세 정도)
2. 아빠 (엄마도 할 수는 있겠다)
3. 숲
4. 달(밤)
5. 눈 (필수는 아니나 거의 사용됨)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는 부엉이인데, 없을 수도 있다.
놀이 방법: 겨울밤 달이 휘영청 밝은 때에 아빠와 아이가 숲으로 간다. 아빠가 부엉이울음소리를 크게 내고 부엉이가 대답하며 나오길 기다린다. 울음소리 내기와 기다리기를 몇 번 반복한다. 몇 번 만에라도 부엉이가 모습을 보여주면 멋진 성공이다.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다른 날-다음 해일 수도 있고-또 시도한다. 그것이 전부다.
아이에게는 부엉이 부르기 경험이 일종의 통과의례다.
겨울밤에 눈 골짜기를 넘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닐곱 살짜리에게는 힘든 일인 만큼, 또 처음으로 마주 보는 거대한 부엉이의 모습이 경이로운 만큼 부엉이 부르기는 눈 많은 동네의 특별한 문화의식이며 세대를 통해 전수되는 가족 놀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자연과 조우하고 친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어릴 때부터 단련시키는 겨울놀이다.
<Owl Moon>은 한국말로 ‘부엉이 달’로 번역할 수 있다. 풀어서 말하면, ‘부엉이를 보러 가기에 꼭 맞는 휘영청 밝은 달’이라는 의미이다.
부엉이 부르기에 달밤은 전제 조건인가?
부엉이는 야행성 동물이라 밤이라야 볼 수 있다. 밤에 부엉이가 사는 숲 속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달이 휘영청 밝은 날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이 문화를 즐기는 동네의 사람들은 겨울밤에 달이 휘영청 밝은 즈음에는 문득, 숲 속으로 가 부엉이를 불러내 보고픈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겨울도 또 다른 전제 조건인가?
부엉이는 사람을 피하는 동물이라 평소에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짝짓기를 하는 겨울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아 눈에 띄기 쉽다. 그래서 겨울이라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눈도 같이 등장한다.
휘영청 달이 밝은 겨울밤. 무릎까지 쌓인 눈 밭을 헤치며 적막에 싸인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부엉이가 나올 만한 곳에 멈춰 서서 크게 부엉이 울음소리를 낸다. ‘후—-우-우- ’. 그리고 기다린다. 또 부엉이 울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홀연히 부엉이가 같은 울음을 울며 바로 머리 위 나무 가지로 내려앉는다, 달 빛 아래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며.
<Owl Moon>은 그런 이야기다. 아빠를 따라 부엉이 부르기에 처음 나서는 어린 딸은 앞서가는 아빠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눈 밭을 헤치며 나아간다. 부엉이 부르기를 제대로 마치고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어엿한 소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적막한 숲과 눈을 강조한 쇠너의 삽화는 과감한 여백의 활용으로 정적인 감흥을 준다. 동시에, 깊은 눈밭을 헤치고 나가는 조그만 소녀의 집중된 에너지나 홀연히 등장하는 부엉이의 클로즈업이 표출하는 동적인 즐거움도 선사한다.
아빠와 소녀가 일렬로 눈 밭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자.
두 페이지로 펼쳐서 윗부분은 달 빛이 비치는 검푸른 나무 숲, 그리고 아래 반은 아무것도 없는 흰색이다. 그 흰색 여백은 들어다 볼수록 깊고 깊은 눈밭이다. 그 위를 소녀가 한껏 내딛는 보폭으로 아빠 뒤를 쫓아간다. 부엉이를 보러 가는 동안은 부엉이를 쫓아버리지 않게 조용히 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소녀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게 조심하며 눈밭을 가로지르는 소녀의 가쁜 숨결이 바로 느껴진다.
또, 부엉이의 화려한 하강을 만나는 장면을 보자.
아빠의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나타난 부엉이를 본 순간의 놀람과 기쁨. 밤하늘을 배경으로 랜턴 불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부엉이의 묘사가 바로 그것이다. 갈색 톤으로 표현되었지만 금빛을 발하는 듯이 느껴지는 부엉이의 모습이 다른 모든 것이 멈춘 숲 속에서 홀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그려준다.
부녀는 이제 부엉이 찾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집은 다른 인가도 없는 시골 눈 밭 속에 홀로 서 있는 농가다. 그러나 붉은색의 헛간 돌담은 농가의 따듯함을 신호한다. 그리고 기적을 울리며 멀리 산등성이를 돌아 나가는 기차는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와 연결되어 있는 숨 쉬고 맥박이 뛰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부엉이 부르기를 마친 소녀는 이 따듯한 집으로 돌아가 곤한 잠에 빠질 것이다.
자연과 조우하고 교감하며 그 속에서 마음의 넓이를 늘리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의 지지가 된다. 그러나 ‘아! 좋다’하고 책을 덮으면 몰려오는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평화로운 내 집과 내 가족을 지지하는 듯한 이 고요한 눈밭을 따듯하다고 느끼는 호사가 동화가 되어버린 세상을 우리 모두가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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