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의 열기 속에서
메시가 프리킥을 찬다.
중계석 아나운서,
"자, 갑니다" 하고는, 메시 발에서 떨어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고 내려가는 순간에
"메, 씨-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하고 부르짖는다.
그림 같은 프리킥이다. 앞에 막고 선 선수들 키를 넘어 다시 골 대 안을 향해 내려 꽂히는 저런 커브가 가능할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전에도... 아, 데자뷔.
아주 오래전에,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 보여 준 솜씨다.
발목 제대로 꺾으면 내 발을 떠난 축구공이 그렇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는데,
이번엔 베컴은 관중석에 앉아서 환호한다.
인터 마이애미 구단주로 등장한 후 그 간 몇 년 구긴 체면을 메시가 살려주고, 돈도 당연히 벌어주고, 이렇게 좋을 수가.
그 앞으로 핑크 빛 연막이 마구 터진다.
아니, 핑크?!
그러고 보니 이 남자들이 분홍색 저지를 입고 축구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분홍색에 검은 삼색선, 아디다스 로고, 클럽 로고로 치장한 유니폼 그리고 스타킹까지 핑크 일색이다. 속옷도 핑크로 입었대도 믿어줄 판이다.
웬 핑크?
언제 무슨 축구팀이 핑크를 입어?
미국의 전문 스포츠 구단이 정식 유니폼으로 핑크를 채택한 것이 처음이라고 하니 다른 곳에서는 종 종 있기도 했지만 널리 알려지지가 않았나 보다, 메시가 거기 없었던 거지.
인터 마이애미가 몇 년 동안 핑크 유니폼을 고심해 보다가 아마 2022년 초부터 선수들이 핑크를 장착하고 축구장을 누볐다. 핑크로 색깔이 확정되었을 때, "핑크래요"(It's pink.)라고 광고판이 달렸다고 한다. 마이애미의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 베컴이 주인이 된 인터 마이애미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웬 핑크?
구단의 설명이 명확하지 않은지 기자들의 설명도 시원치가 않다.
플로리다 홍학(flamingo), 마이애미의 해 질 녘 하늘빛, 그리고 80년대 미국 TV를 접수한 마이애미 배경의 범죄수사물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까지 설명에 등장한다. 배우, 돈 존슨(Don Johnson)의 전성기를 장식한 드라마로 그는 페라리를 타고 현란한 마이애미의 야경을 누비며 마약 갱단과 대적하는 마초, 그러나 자유주의 신봉자인 형사, 소니 크로켓을 연기했다. 종종 흰색 슈트에 핑크빛 셔츠를 받쳐 입고 나왔다. 가끔 핑크 재킷도 입었다.
거친 몸싸움을 불사하는 다혈질의 형사가?
뭐,
남국의 열기가 넘쳐나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돌아가는 자유분방한 도시를 그려내는 드라마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렇게 남국의 문화까지 거론하며 분홍에 대한 설명이 여기저기에, 그러나 별로 시원찮은데, 그걸 누가 상관하랴? 분홍을 입은 혹은 분홍을 안 입었더라도 소속을 옮겨 온 메시가 파죽지세로 7승을 몰아붙여 꼴찌 축구클럽을 일등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리오넬 메시의 존재가 팀을 부각하는 바람에 핑크 유니폼은 그저 자연스러운 이쁨이다. 여지껏의 부진을 떨쳐버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는 시도에서 핑크로 낙점하였다면 핑크는 새로움과 승리를 위한 희망과 기약이다. 역시 이쁨이다.
그런데,
핑크가 모욕인 캠프도 있다.
‘교도소에 온 놈들이 무슨 에어컨디션이냐'가 신조인 보안관 조 알파이오의 애리조나 텐트촌 교도소가 그곳이다. 알파이오는 그 “놈들“에게 분홍빛 수건과 양말을 안긴다. 겨울에는 반팔인 죄수복 아래로 앙징맞게 내려오는 분홍 내복을 입히고, 베갯잇도 핑크, 침대 시트도 핑크다. 분홍팬티를 입혔을 것 같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분홍색 반바지형 속옷을 들어 보여주는 재소자들 사진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렇지,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야 경비가 덜 나갈 것이니.
애리조나 피닉스 카운티 보안관으로 24년간 치안행정을 쥐락펴락한 조 알파이오(Joe Arpaio)는 보안관으로 처음 당선된 1993년부터 교도소 마당에 텐트촌을 지은 후 일부 재소자들을 그곳에 구금했다. 그는 모든 라틴족 (불법) 이민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미국주의자'이고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라틴계 이민자들을 불법 검문, 수사, 감금하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6선 내리 그를 선출해 준 피닉스 유권자들이 있었다.
피닉스의 여름 낮 온도는 40도를 넘긴다. 하지만, "니들 여기 호사 부리러 온 것 아니다" (This is no country club.)라고 기자까지 대동하고 텐트촌과 재소자들을 보여주며 조 보안관은 당당히 내뱉는다. 즐거움도 기쁨도 희망도 아닌 핑크는 기이하다.
대부분이 남미계 인종인 재소자들이 빡빡 깎은 머리와 험상궂은 얼굴에, 흰색, 회색 혹은 검은색 스트라이프의 죄수복을 입고, 그리고 핑크 빛 수건을 목에 두르거나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다.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웬 핑크?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별다른 설명도 없다. 보안관 조 왈 曰, "왜 저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왜 핑크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건 모욕이지.
인권 단체가 여러 이유로 알파이오를 저격 하고, 결국에는 여러 가지 불법 행위로 유죄 판결까지 받았지만 보안관 조와 그의 핑크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표면화되어 나오지 않았다.
모욕인가?
병원 간호사들이 핑크를 입는 것처럼 마음을 안정시키고 부드러운 심성을 살려내기 위해 핑크를 입혔다고 알파이오가 설명한다 해도 반박할 구실이 없다.
이제, 메시가 분홍으로 꽃단장하고 종횡무진, 슛을 왼발로 날렸다가 공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면 다시 오른발로 밀어 넣어주고, 멀리서도 날려 넣고, 도움이도 날려주고, 연분홍 저지가 마이애미의 뜨거운 밤을 휘날리며 달린다.
누가 있어 감히 분홍을 따지랴!
이제 남자들이 분홍으로 꽃단장하면 그건 메시 분홍이고,
혹, 수감자들이 입는다면 계집애(시시, sissy) 핑크고,
여자들이 입는다면...... 여자들이 언제 적에 핑크를 입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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