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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Sep 04. 2024

남미의 로컬버스를 8시간 타 보았다

볼리비아에서 생긴 일-Part 2

당시에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남미에서, 정확히는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기 위해 탔던 로컬버스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볼리비아에서는 우리의 목적이었던 우유니 사막 투어만 진행하기 위해 1박만 묵고 바로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렇게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고 기차표를 끊으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내일 비야손 마을로 가는 기차 있어요?"

"아뇨, 내일 가는 표는 이미 다 팔렸어요"


청천벽력이었다. 우리는 멘도사에서 이과수로 가는 비행기를 이미 예매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고민에 빠졌다. 칠레로 돌아서 갈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 국경 마을인 비야손으로 가서 아르헨티나로 바로 넘어갈까?


일단 LTE가 안 터지니 방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후자를 택했다. 하지만 버스를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버스는 다음 날 출발해 그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었고, 로컬버스로만 18시간 넘게 걸릴 예정이었다. 그 후에도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 살타까지는 8시간을 더 가야 했다. 우리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그 긴 여정을 견뎌낼 자신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하루 더 묵고, 그다음 날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다. 차라리 우유니에서 하루를 더 보내며 사진을 찍고 가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루 방값을 더 내더라도, 로컬버스를 조금이라도 덜 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덜 고생스러울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유니에서의 이틀을 보내고, 새벽 6시 버스를 타기 위해 4시 반에 일어났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우리는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리가 예약한 '투피자' 버스가 그나마 괜찮다고 했지만, 누가 대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걸까. 직접 타보니 그동안 탄 모든 버스 중 단연코 최악이었다.


아니, 어쩌면 길이 최악이었을 수도 있다. 버스 안으로는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며 숨을 쉴 수 없고, 눈과 목이 따가웠다. 마스크를 써도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다. 화장실은 막혀 있고, 그 모래바람과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을 버티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매캐한 냄새가 목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게 그나마 나은 버스라면, 다른 버스들은 얼마나 더 열악한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기를 데리고 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페트병을 주며 소변을 보게 했고, 그 냄새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버스의 창문을 열면 모래바람이 가득 들어와 열고 싶지 않았지만 창문을 열어도 닫아도 모래바람이 가득한 것은 똑같았다. 중간에 도착한 휴게소에서 우리 둘은 이런 선택을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눈은 뻑뻑하고 목은 매캐하고 아이들은 울고 불고 난리였으니.


그렇게 인생 최악의 8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겨우 '비야손'이라는 국경 마을에 도착했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 도착했는데 전혀 두렵지 않고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그 버스에서 드디어 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길도 전혀 몰랐지만 누가 봐도 배낭여행객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어느새 국경에 도착해 있었다.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작은 부스에서 바로 입국 도장을 받았다. 블로그에서 어떤 사람은 아르헨티나 입국에만 5시간이 걸렸다고 했지만, 우리는 5분 만에 끝났다.


다시 새로운 버스를 끊어야 할 때가 왔다. 이번엔 아무리 비싸도 최고의 버스를 고르겠다 다짐했는데, 항상 그렇듯 그런 좋은 버스에는 남은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 뒤에서 한 외국인 여행객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너네는 어디로 가?"

"우리 살타로 가야 되는데 무슨 버스가 괜찮을지 모르겠어."

"너네 어디에서 왔는데?"

"볼리비아에서."

"볼리비아 버스가 좀 최악이긴 하지. 근데 아르헨티나는 어지간한 버스 다 괜찮아. 나도 살타 가는데 같이 버스 타고 가자!"


그렇게 그는 우리를 버스 티켓 판매소로 잡아끌었다. 너무 순조로운 것이 오히려 의심이 들긴 했지만 시간이 없었으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급하게 그를 따라가다시피 하며 버스를 탔고, 이번에도 같은 로컬 스타일이 아닐까 솔직히 우려했지만 혀 달랐다. 르헨티나의 버스는 기대 이상으로 쾌적했다. 남미에서 처음으로 CCTV가 달린 버스였다. 아르헨티나가 확실히 잘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금 버스를 9시간 더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그전에 탔던 로컬버스가 아니라 이 정도의 쾌적한 버스라면 정말 19시간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 경험은 그 외의 다른 모든 경험들을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 로컬버스를 타고난 이후로는 어떤 역경이 와도 우리의 긍정 확언은 이것이었다.


"볼리비아 로컬버스보다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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