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잔 Sep 06. 2024

자전거를 타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아르헨티나에서 생긴 일

유튜브가 지금만큼 크게 유행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아마 유행했다 해도 디지털 문물에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 나라서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를 찾아 읽어보는 것도 귀찮아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멘도사'가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와인을 찾아 떠나기 위해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게 그리 잘못된 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인 멘도사에서는 와이너리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 돈 없는 학생이던 우리의 선택은 물론 업체를 통해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발로 뛰는 와이너리 투어였다. 버스를 타고 와이너리들이 몰려있는 장소에 도착해서 내린 후, 자전거를 빌려 와이너리를 할 곳을 여러 군데 가보기로 했다.


고생 끝에 버스 카드를 구매하고 버스를 탄 뒤 와이너리들이 모여있는 곳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입구에 바로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나 보다,라는 생각에 안심하여 하루동안 자전거를 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탄다. 초등학생 때 두 발 자전거를 탄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방향전환도 잘 안 되고 직진으로밖에 잘 가지 못하겠다. 내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렴 어떤가. 방향전환을 하려면 내려서 끌고 가든가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일단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주변은 나무로 가득하고 세상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자동차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면 살짝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초록초록해서 너무 행복했다. 그 행복이 10분도 가지 않았긴 하지만 말이다.


자전거를 10분 즈음 타고나니 예쁜 것과 별개로 다리와 엉덩이가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운동도 안 하던 내가, 자전거도 모르던 내가, 그저 무식하게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무리였나 보다. 그래도 빌렸으니 억지로라도 타고 가야 했다.


원래 계획은 와이너리 세 군데를 갈 계획이었으나, 자전거를 타보고선 깨달았다. 우린 한 군데로 만족해야겠구나. 그렇게 직진만 할 줄 아는 자전거를 40분 정도 타고나니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멘도사에서도 꽤 큰 와이너리에 속하는 'Bodegas López'라는 곳이었다. 와이너리에서 진행하는 영어 투어를 으며 우리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 와인 통 청소 하는 법, 좋은 와인 판별법, 와인 마시는 법 등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 중간에도 마음껏 시음을 하게 해 주는데 설명을 들어서인지 잘 모르던 와인의 맛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투어가 끝나고 나와서 와인을 사기 위 잠시 앉아있었는데, 와이너리 직원들이 와인을 마셔보라며 공짜로 주기 시작했다. 정말 무제한으로 원하는 만큼 다양한 와인을 따라서 준다.


"이렇게 주는데 여기 남는 게 있을까?"

"완전 있을 거 같은데. 저기 봐봐."


주변을 둘러보니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치즈, 케잌, 와인을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프리한 분위기가 우리 눈에는 굉장히 기해 보였다. 와이너리 투어를 시켜주었던 가이드 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술을 이렇게 마시면서 일해. 부럽지?"

"완전. 너무 부러워."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우리에게 와인을 한 잔 더 따라주었다. 눈앞에서 보니 진짜로 부럽긴 다. 인을 마시면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슬슬 와인을 사려고 주위를 둘러보평범한 와인은 한 병에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였다. 감당만 가능하다면 20병은 사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했기에 각자 2병씩만 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와이너리에서 선물이라며 와인 한 병을 공짜로 넣어주고, 아까 마신 와인도 선물이라며 그냥 챙겨 주겠단. 정말 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지역이 맞는 듯했다. 진짜로 이러다가 20병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렇게 3병씩 가방에 담고 무거워진 어깨로 아주 만족하며 집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기 위해 자전거에 올다.


그런데 발하기가 갑자기 누가 우릴 막아선다. 한 남자와 여자가 우리에게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스페인어로 말을 걸며 우리를 막아 세우는 걸 보니 겁이 났지만, 그들의 인상이 너무 인자해 보이는 데다가, 얼핏 보기에 제복 같은 걸 입고 있어서 일단 멈췄다. 자세히 보니 제복에 경찰이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물론 확실하진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리 보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못한다고 말했더니 자기들도 영어를 못한단다. 서로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들이 막무가내로 우리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슨 말인지도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갑자기 우리 자전거를 자기들 차에 싣는다. 영문도 모르는 채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들이 우리 보고 차에 타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몰라. 타라는 것 같은데? 어떡해?"

"일단 자전거가 실렸잖아.. 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잡혀가는 거 아니야? 방금 와인 마시고 자전거 타려고 했잖아."

"헐, 진짜 그런 건가? 근데 그러기엔 표정이 너무 인자한데..?"


우리 둘은 상의 끝에 일단 차에 타 보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이 우리의 자전거를 실었으니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우리의 여권이 그 자전거 대여 매장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 경찰차 비슷하게 생긴 차가 사기로 그려놓은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 만약 사기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고도 생각하면서.


그렇게 차에 일단 타고나니, 그들이 번역기를 돌려서 말을 걸었다.


"여기 엄청 위험해. 너네 자전거 빌린 곳까지 차로 태워다 줄게."


그 말을 듣는데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더 당황스러워졌다.


"아, 이 사람들 택시기사인가? 태워다 주고 돈을 내라고 하는 수법인겅가? 아니면 사기꾼인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 잡혀가는 건가?"


남미에서 너무 오래 여행을 해서였을까, 안전하게 태워다 준다는 말에 오히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인자하고 당당해 보이는 두 분의 미소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 되면 돈 내지 뭐.. 어차피 우리 자전거 타기 힘들었잖아. 엉덩이도 아프고.. 이게 만약에 젠틀하게 어디론가 잡혀가는 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도 사실 여전히 계속 불안했다. 그렇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차를 타고 가는데 차량 앞 유리에 이상한 자국이 있다. 총에 맞은 자국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번역기를 통해 물어보았다


"저거 혹시 총 맞은 건가요?"

"하하. 맞아. 진짜로 위험하다니깐, 여기?"


그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두 방이나 맞은 흔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야, 미쳤어, 미쳤어. 우리 이런 곳을 그냥 자전거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왔던 거야?"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총을 맞은 자국을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정말 경찰들이 맞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그분들은 실제로 우리가 빌려왔던 자전거 매장에 도착해 주었고 돈도 일절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들이 주인아저씨랑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한테 즐겁고 친절하게 인사해 주곤 간다. 아저씨가 우리 보고 잠시 들어오라더니 이름, 국적, 여권번호 등등 몇 가지를 적어달라 했다.


"Porque.. Policia? (왜.. 경찰..?)"


아는 스페인어를 총 동원해서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대충 느껴지는 말로는, 안전 같은 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말한다.


"No problema, No problema. (문제없어, 문제없어.)"


총에 맞은 경찰차까지 타고 왔으니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요 아저씨.


"Muy bien, Muy bien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아저씨는 뭐가 자꾸만 그렇게 좋다는 건지.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 민망했던 탓인지 아저씨는 자꾸 좋다고만 말을 한다.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 사진으로 찍어 차에 적힌 글을 보니 'MINISTERIO DE SEGURIDAD'이었고, 이걸 찾아보니 무슨 외무부 같은 거였다. 아무튼 당시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추후에 보니 정말 최고의 시스템 수호를 받은 것이긴 했다.


그때 정말 깨달았다. 어디를 갈 때는 무조건 현지인들에게 안전한지 수차례 질문을 하고 돌아다녀야겠다고. 렇게 무작정 돌아다니다간 정말로 내가 어디에서 발견될지 모르겠다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이전 17화 남미의 로컬버스를 8시간 타 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