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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Sep 09. 2024

배드버그에 물렸을 때

호주에서 생긴 일

배드버그에 물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생에 다시는 이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야말로 인생 최악의 경험 중 하나였다. 다행히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물린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만약 호주에 있을 때 그랬다면 병원도 못 가고 정말 난감했을 것이다. 호주에서는 배드버그를 그저 '심한 벌레에 물렸구나'라고 말을 할 뿐이니 말이다.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기로 했다. 숙소에서 함께 밥을 해 먹으며 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침대가 네 개인 숙소를 예약했고, 각자 자신이 잘 침대를 골랐다.


숙소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되었을 때, 내 침대 위에서 작은 벌레가 기어가는 걸 발견했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벌레구나' 하고 휴지로 잡아 버렸다.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했다.


"배드버그는 아니겠지?"

"배드버그는 무슨 배드버그야. 배드버그는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아."


엄마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안심하고 잠에 들었지만, 다음 날도 똑같은 벌레가 내 침대 위에 또 나타났다. 불안한 마음에 벌레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구글에서 나온 '배드버그'라는 벌레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빠가 숙소 한 구석에서 발견한 살충제에도 '배드버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내가 찍은 사진 속 벌레와 동일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까지 물리진 않았지만, 남은 하루 동안은 그 숙소에서 어쩔 수 없이 지내야 했다. 내 침대에서만 벌레가 발견되었기에, 나는 옷을 꽁꽁 싸맨 채 엄마 옆 2인용 침대로 가서 찝찝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행히도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나갈 때까지 물린 자국이 없어서 안심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 가족들은 가져간 모든 옷과 소지품을 하나하나 세탁하고, 건조기에 돌려 바짝 말렸다. 혹시라도 배드버그가 따라왔으면 집안이 엉망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리진 않았다며 마음을 놓고 있던 찰나, 한국에 도착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갑자기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몸에 빨간 자국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알레르기인가? 아니면 설마 배드버그가 집까지 따라온 건가?"

"알레르기겠지. 그렇게 건조기를 돌렸는데 설마.."


다급한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배드버그는 물린 지 일주일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다행히 집에서 물린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했지만, 가려움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평소에 모기에 물려도 그리 가렵지 않은 편이라 주위 사람들이 항상 신기해했지만, 배드버그는 차원이 달랐다. 평소 긁지 않는 나조차도 배드버그의 가려움은 참을 수 없었다. 어찌나 가려운지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가려움에만 집중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가려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렇다고 긁으면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니, 계속 내 팔을 강하게 때리기만 했다.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들을 검색해 보니, 사람마다 물린 모양이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알갱이처럼 콕콕 박힌 형태로 물렸고, 나처럼 모기에 물린 듯 큼지막하게 부어오른 경우도 있었다. 공통점은 벌레가 기어간 방향으로 '일자 모양'의 자국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얼굴까지 올라온 배드버그 자국을 보며, 내가 자는 동안 얼굴을 기어 다녔을 벌레들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배드버그는 신기하게도 옷을 입지 않은 부위만 정확히 물고 지나갔다. 반팔에 긴바지를 입고 잤는데, 정확히 양팔과 목, 얼굴에만 물린 자국이 있었다. 그 자국이 징그러워서 어디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결국 피부과에 갔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바르는 약을 발랐지만 가려움을 참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 끝에 집에 있던 버물린을 발라 보았다. 그 순간 외쳤다.


"유레카!"


버물린을 바른 자리가 후끈거리고 따가운 느낌이 있었지만, 간지러움보다 따가움이 훨씬 나았다. 그렇게 몇 시간마다 버물린을 계속 발라가며 간신히 견뎌냈다. 그렇게 배드버그 자국이 나타나고 4일쯤 지나는 날부터 가려움이 가라앉고 자국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래는, 다시는 배드버그에게 물리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마음에 기록해 둔 그 당시의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배드버그 발현 1일 차]

오후부터 가렵더니 저녁에 슬슬 붉은기가 올라온다. 알레르기인가 하고 봤는데 배드버그였다. 첫날은 조금 가려운 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형태가 드러나는데 팔, 목 위주로 물렸다. 내가 짧은 팔 티셔츠를 입고 잤는데 정말 그 부위들만 연속해서 물렸다. 꽤 신기하다.


[배드버그 발현 2일 차]

오전에 바로 피부과에 갔다. 한국엔 잘 없는 탓인지 의사 선생님도 모기인지 빈대인지 잘 모르셨다. 내가 배드버그를 직접 봤다고 하니 그럼 배드버그가 맞다고 인정하신다. 근데 내 배드버그 물린 모양은 진짜 모기 물린 자국과 비슷하게 퍼져있긴 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람마다 모양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려는데 따뜻한 물줄기로 인해 가려워 죽을 것 같다. 결국 찬물로 샤워 못하는 내가 찬물샤워를 했다.

점점 더 가려워지기 시작한다. 피부과에서 주는 약을 발라도 가려워 죽을 것 같다. 모든 일을 할 의욕이 사라진다. 계속 내 팔을 때리게 된다. 잠을 잘 때 긁을까 봐 거즈와 반창고를 여기저기 다 붙이고 누웠다. 밤에 특히나 더 간지럽고, 간지러움에 잠이 오질 않는다. 결국 얼음팩을 들고 와서 하다가 잠들었다. 자면서도 간지러워서 계속 깨게 되었다.


[배드버그 발현 3일 차]

여전히 굉장히 가렵다. 피부과에서 준 약으로는 도무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집에 있는 버물린을 발라보았다. 배드버그도 벌레니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르는 순간 화끈하고 따가웠지만 더 이상 가렵지는 않았다. 아픈 것이 가려운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럼에도 여전히 집중은 안 된다.


[배드버그 발현 4일 차]

배드버그 자국이 꽤 많이 희미해졌다. 버물리를 발랐더니 간지럽기도 덜했다. 긁지 않아서 꽤 빨리 희미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한참 지나 생각해 보니 여행자들의 필수관문인 '배드버그 단계'를 통과한 것 같은 이상한 뿌듯함이 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당시에 남겨놓은 절실했던 기록은, 그 누구도 배드버그에 물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내가 물렸을 때의 사진을 찍어두었지만, 혐오스러운 그림이 될 수 있으므로 가장 덜 징그럽게 나온 사진 한 장 정도만 보여드리기로 하고, 나머지 한 장은 그 당시에 찍었던 '배드버그' 사진으로 대체하겠다. 저런 형태의 벌레가 보인다면 당장 대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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