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잔 Oct 05. 2024

비록 서번트 증후군은 아닐지라도

Ep 12. 오빠의 특별한 재능

서번트 증후군은 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 극소수가 특정 분야에서 비장애인과는 다른 천재성을 보이는 현상이나 사람을 말한다.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서번트 증후군은 약 0.2%의 확률로 나타난다고 추정되지만, 그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식이 '서번트 증후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그 부분이 특출나게 보이면, 부모로서는 그런 희망을 품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기대를 했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기억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누군가 놀러 왔을 때, 가족이 어디로 여행 갔을 때, 누군가가 입학하거나 졸업한 날, 그리고 어릴 적 선생님 이름과 반 번호까지, 오빠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태국을 다녀온 게 언제지?"
"200OOO일."

"너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이름이 뭐였지?"

"OOO"


오빠는 숨도 쉬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말한다. 이런 오빠의 모습을 보면 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기억력은 단순히 ‘좋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엄마도 종종 오빠의 이런 재능을 신기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쩌면 부모님은 속으로 '혹시 우리 아이가 서번트 증후군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오빠는 그저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특출남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오빠의 좋은 기억력은 다른 재능으로도 이어졌다. 바로 길을 찾는 능력이다. 가족들이 낯선 곳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오빠가 우리를 안내해 주곤 했다. 길을 찾는 능력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와 나는 길 찾기에 영 소질이 없어 매번 같은 길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어려운데, 엄마와 오빠는 한 번 지나간 길을 쉽게 기억해 낸다. 오빠는 한 번 갔던 장소의 거리와 건물들을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고, 마치 그곳을 자주 지나다닌 듯 친숙하게 길을 찾아나갔다. 그 모습은 항상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런 오빠의 기억력과 방향 감각은 가족에게는 특별한 선물이자 위로였다. 비록 서번트 증후군처럼 특별한 천재성을 가진 것은 아니더라도, 오빠는 우리에게 있어 충분히 특별했다. 가족이 함께한 순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는 사실,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세상은 특별함을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오빠의 기억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다. 오빠는 우리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주는 살아있는 앨범과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이 어떤 날에 어디에서 어떤 표정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해 주는 오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언제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빠를 통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는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내며, 그 보물을 우리에게 꺼내주곤 했다. 그 보물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작은 순간들,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오빠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렇게 오빠의 기억력과 길 찾는 능력은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은 오빠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번트 증후군 같은 특별한 천재성은 아닐지라도, 오빠의 이 능력들은 우리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오빠의 기억 속에 우리 가족의 추억이 오래도록 빛나길 바라며, 그 앨범에 새로운 추억들을 계속 쌓아나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