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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Oct 06. 2024

얄미울 때, 안타까울 때

Ep 13. 우리는 남매지간이니까

어릴 때부터 나름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형제자매처럼 나도 오빠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때로는 미워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실 서른이 된 지금도 그런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한여름밤의 에어컨 문제다. 우리 집은 4인 가족이 살다 보니 에어컨을 오래 틀면 전기세가 만만치 않게 나온다. 나이 서른에 아직 부모님께 의지하며 사는 게 죄송스러워, 나는 웬만하면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과 방문을 열어두고 선풍기로 버틴다. 하지만 오빠는 7월이 시작되면 9월이 넘어서까지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놓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잠을 잔다.


나도 더운데 오빠만 시원하게 자는 것이 가끔은 얄밉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빠는 불면증 때문에 창문도 방문도 열 수 없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그런 오빠를 안쓰럽게 여기며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신다. 그럴 때면 나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누군가에게 응석 부리고,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편하게 지내고 싶지만, 나이가 서른이 된 내겐 그럴 용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른인 척을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배려'에 대한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가르칠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가짐은 가르치기 어렵다. 오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가장 먼저 그것을 집어 먹곤 했다. 부모님은 이런 오빠를 보고 '배려'에 대한 것을 가르치셨다.


"맛있는 음식이 하나 남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 먹으라고 남겨 놓아야 돼."


그렇게 가르치고 나면, 오빠는 마지막 음식은 무조건 남겨놓는다. 대신에 마지막에서 두 번째에 맛있는 음식이 남을 때면 바로 먹어버리곤 한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마지막 것'만' 남겨놓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잘하는 것은 맞지만 마지막 것이 의미하는 상징성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이 마지막 남은 음식이나 두 개뿐인 치킨 닭다리를 건네주며 "너 먹어"라고 말해도 오빠는 망설임 없이 받아먹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도 먹고 싶은데, 나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데, 하는 아이 같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먹고 싶다고 투정부릴 수도 없어 마음속에서만 그런 생각들을 삼켜야 했다. 마지막 남은 닭다리 하나는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도리였기에.




그렇다고 오빠를 향한 내 마음이 오로지 이런 질투 섞인 얄미운 감정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남매 사이를 논할 때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나는 오빠를 비난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구도 우리 오빠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이 오빠에게 그러실 때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가끔 오빠에게 잔소리 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다. 그것은, 교육과는 다른 '잔소리'였다. 아버는 오빠에게 밥 먹을 때마다 잔소리를 하곤 하셨다. 오빠를 지켜보며 '이렇게 먹어라, 저렇게 먹어라'라고 계속해서 잔소리하는 모습을 참다못해 나는 결국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오빠처럼 저렇게 먹는데, 아 때문에 내가 먹는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써야 돼? 그리고 솔직히 아부지가 더 지저분하게 먹거든요?아부지가 식탁에서 트림하시는 게 더 불쾌해요. 오빠가 음식을 집다가 떨어뜨리면 뭐라고 하고, 밥 먹을 때 어금니로 씹으라고 하고. 아부지, 일반 사람들도 그냥 대충 먹어요.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는거지 왜 자꾸 식탁에서 밥 가지고 그러세요."


톡쏘는 말에 아버지나한테 삐져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럴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꼭 해야만 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오빠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고, 나도 밥 먹을 때마다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빠가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남들과 더 비슷하게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불만이 있는 것은 별 수 없다. 40년 동안 못 고친 것을 왜 이제 와서 고치려고 하는지, 왜 오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에 대한 나의 서운함이 남아.


나는 오빠를 미워해도 다른 사람들은 오빠에게 뭐라도 하면 안 된다. 그것이 남매 사이에 대한 룰이다.




내가 오빠를 향해 느끼는 감정들은 복잡하다. 오빠가 내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오빠가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오빠를 미워하기도 하고 질투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오빠를 아끼고 지키고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내가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나와 다른 모습 때문에 속상하고, 가끔은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밑바탕에는 오빠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 있다. 오빠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빠가 조금 더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그리고 내가 오빠를 이해할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길은 함께 배우며 성장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오빠를 통해 배우는 사랑과 이해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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