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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Oct 13. 2024

딱 하루만 더 살고 싶어

Ep 15. 오빠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어릴 적, 엄마는 늘 내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너네 오빠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죽으면 좋겠다."


그 말은 아마도 대부분의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님의 마음일 것이다. 그만큼 오빠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기 두려운 엄마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 혹시나 엄마가 곧 세상을 떠날까 봐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다. 엄마의 눈에 비친 슬픔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선명했고, 그 슬픔이 내 마음속에 커다란 두려움으로 남았던 탓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그 말은 어린 나에게 평생의 불안과 슬픔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신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모두 건강한 성인이 된 나는 그 무거운 말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빠가 달고 짜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찾을 때면, 장난스럽게 "엄마 소원 들어주겠네."라고 말한다. 그러면 오빠는 깜짝 놀라며 "안돼!"라고 외치며 건강에 나쁜 음식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이런 농담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엄마가 오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제는 내가 오빠를 지켜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오빠는 언제나 오래 살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이 세상이 오빠에게는 그토록 행복했던 모양이다. 몸에 해롭다는 말만 들으면 그토록 좋아하던 음식도 바로 놓아버리는 오빠의 모습이 가끔은 귀여우면서도 안쓰럽다. 오빠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니깐.




어릴 적, 나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빠 평생 돌보면서 살아야지."


그 말이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결혼을 앞두게 되면서 그 약속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에게도 미안한 일이었고, 언젠가 아이들을 낳고 키울 생각을 하니 거기에 오빠까지 돌봐야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오빠는 어느새 내게 애증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오빠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오빠가 미워질 때도 있다. 마흔이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엄마!' '아빠!'를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애교를 부릴 때면 솔직히 한숨이 나오곤 한다. 그런 오빠를 보며 '오빠가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저런 모습을 내 조카에게서나 봤을 텐데...'라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오빠가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 무언가 즐거운 일이 있으면 크게 웃는 오빠를 보면, 아직도 5살 아이 같은 순수한 웃음을 가지고 있는 오빠가 부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니까, 오빠는 나에게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어쩌면 이게 정상적인 형제자매 사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장애인 동생을 둔 누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는 결혼 못하죠. 얘가 있는데 누가 저랑 결혼하겠어요? 그냥 얘 데리고 제가 평생 살아야죠."


엄마는 그 인터뷰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나만 힘들 줄 알았는데, 너도 참 고민이 많았겠구나."


순간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무거운 감정들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나는 애써 울컥한 마음을 삼켰다. 엄마도,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오빠를 돌보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게 오빠가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 또한 오빠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고민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모님께서는 결혼 비용에 보태 쓰라며 일부 자금을 주셨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집가는 내가 죄송스러워 망설이자, 엄마는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중에 우리가 떠난 뒤에도 오빠랑 같이 살아주라는 말은 안 할게. 가까이에 안 살아도 되니까, 그래도 가끔씩이라도 가서 잘 살고 있는지 봐주기만 해 줘."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에 멀어졌던 약속이 떠올랐다. 어릴 적, 오빠를 지켜주겠다는 내 다짐은 어느새 잊혀진 것이었다. 결혼 준비에 바빠 오빠에게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순수하고 진실된 약속은 현실 앞에서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날 이후로 나는 오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사랑하는 오빠를 사랑한다. 그래서 작은 계획을 세웠다. 내가 결혼을 한 뒤에도 오빠를 자주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갈 때 종종 오빠도 데리고 다니며, 오빠가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챙겨주려 것이다.


오빠와의 미래는 여전히 내 마음 한켠의 짐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부모님이 사랑으로 키운 귀한 오빠를 위해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오빠와의 애증의 관계, 그 속에 담긴 특별한 사랑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오빠를 향한 나의 약속을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오빠가 세상을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도 오빠와 함께할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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