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이상 행동 원인 찾기
Ep 17. 오빠가 의지하는 사람
한 번도 큰 사고를 친 적이 없던 오빠가 최근에만 다양한 사고를 쳤다. 회사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형에게 핸드크림을 바른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 덤벨에 핸드크림을 잔뜩 묻혀놓았다가 나에게 걸려서 내가 혼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경찰관이 집에 찾아온 사건까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이렇게까지나 한꺼번에 몰아서 사고를 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가끔가다 치는 사고들도 나름 봐줄 만한 수준이었거나 한 번 걸려서 혼나고 나면 몇 년씩은 조용했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 것인지 부모님과 나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결혼을 그렇게나 하고 싶어 하던 오빠였는데, 내가 먼저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질투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컸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직 5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을 하고 스드메와 신혼여행까지 다 찾아보던 오빠였으니 질투가 날 수도. 그래서 그 앞에서 결혼 이야기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중에 엄마와 오빠가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선생님은 오빠와 40분, 엄마와 20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는데, 엄마에게 여쭤봤다고 한다.
"혹시 동생이랑 많이 친밀한 관계였나요?"
"음.. 그 정도로 친밀한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고, MBTI로 따지면 'T'성향, 즉 감정형보다는 사고형이었기에 논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오빠와 그렇게 친밀하다고 보기엔 어려운 성격이다. 주로 나는 오빠의 잘못된 행동을 혼내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엄마의 대답을 들은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A(오빠)는 동생이랑 굉장히 친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보통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친밀했던 형제가 떠나갈 경우에 자신의 반쪽이 떠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어요. 동생이 결혼을 하면 집을 나가게 되는 건데, 그래서 갑자기 인생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고 어쩌면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 불안감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거일 수도 있고요."
엄마는 처음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친밀한 사람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부모님이 여행을 가고 없을 때면 오빠를 데리고 나가서 오빠가 좋아할 만한 맛있는 밥을 사주기도 하고, 미용실을 데리고 가서 오빠가 하고 싶은 머리로 염색까지 멋지게 시켜주기도 했다. 부모님은 세대가 다르지만 나는 오빠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기에 지금 시대의 기준에 잘 맞춰서 좋아하는 일을 해주곤 했다. 오빠를 혼낼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칭찬도 하고 격려도 해 주었으며, 아버지가 혼을 낼 때면 오빠의 편에 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엄마는 이번 사건이 있기 전에도 오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너, 이러다가 엄마랑 아빠 죽고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동생 있잖아."
예전에는 '아내 있을 거잖아'라고 말했었는데 최근에는 계속 내가 있다고 말을 했었다는 것이다. 오빠의 마음속에 나는 어쩌면 정말 인생의 반쪽처럼 의지하는 사람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빠가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오빠에게 좋지 않은 말을 많이 했다.
"부모님이 평생 사실 것도 아닌데, 이런 행동을 하면 앞으로는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결혼하고 싶다며. 아내는 이런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야. 아내는 부모님도 아니야. 오히려 오빠가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이렇게 해서 오빠가 혹시나 감옥이라도 들어갔으면 누가 어떻게 도와줄 건데? 아무도 오빠 못 도와줘."
내 딴에는 화도 났고, 내가 받은 상처에 비해 오빠는 단 며칠 만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게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억울해서 그런 말을 내뱉었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오빠의 감정을 알고 하는 이상 행동들이 아닐 텐데, 내가 5살짜리 아이한테 너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타박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리고 엄마가 어제, 오빠와 둘이 있을 때 조용히 물어보았다고 한다.
"동생이 결혼하니까 부러워?"
"응. 부러워."
"동생이랑 헤어질 생각 하니까 어때?"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오빠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울어서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들은 오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 질문 하나에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도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도 미안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경찰관들이 찾아왔을 때도, 부모님께 혼났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오빠였는데, 나와 헤어지는 게 어떻냐는 질문에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니. 그 마음을 몰라줬던 것이 너무 후회되고 미안했다.
오빠는 내게 생각보다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오빠는 생각보다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그 얘기를 알고 난 이후, 오빠에게 가서 살짝 이야기 했다.
"오빠, 나는 나중에 결혼해서 나가 살아도, 몇십 년이 지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오빠 데리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오빠 머리도 이쁘게 염색시켜 주고 할거야. 그러니까 아무 걱정 하지마."
나의 진심이 오빠의 마음 깊은 곳에 가서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는 오빠를 원망하고 혼을 낼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없어도 내가 항상 오빠 옆에 있을 거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한 뼘 더 성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