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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Oct 26. 2024

오빠의 하루, 그리고 일주일

Ep 18. 가족과 함께하는 삶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후, 한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발달장애인은 배운 행동은 할 수 있지만 법적, 도덕적 행동 판단은 불가능한 '초등학생' 수준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오빠가 알면서도 좋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화를 냈던 나였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빠가 그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인지하지 못한 것일까?' 


위 기사의 내용처럼, 오빠의 '배운 행동 리스트'에 없는 것은 오빠에게는 낯설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제는 조금 더 섬세하게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더 많은 상황을 경험하게 해주고, 차근차근 함께 배워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다시 쌓아올리고 있다.



오빠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우리집에는 백수들이 살고 있다. 반백수가 하나 있고(오빠), 진짜 퇴직한 백수가 하나 있다(나). 오빠가 자꾸 인터넷에서 이상한 것을 검색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우리는 12년이나 된 느려터진 컴퓨터를 치웠다. 그 외에도 오빠의 방에는 TV가 있었지만, 몇 달간 집에만 있어야 할 오빠가 심심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내가 '닌텐도'를 구매하는 것을 제안했다. 오빠도 좋아했고, 게임기가 와서 게임을 종종 하곤 했지만, 우리 가족은 태생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나 보다. 게임을 하더라도 30분이면 끝이었다. 결국 오빠는 다시 심심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수업 프로그램들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연초에 정해진 기간에만 신청할 수 있었고, 그때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었다. 나는 오빠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이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했다.
"오빠, 퍼즐 할 수 있겠어?""응."
그러자 아버지께서 얼른 대답하셨다.
"퍼즐은 어느정도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예전에 퍼즐 주니깐 그냥 모양만 맞는 것으로 억지로 아무데나 끼워놓고 있었어."
퍼즐은 패스.
"레고는 해보는 거 어때?""아니."
레고는 또 재미가 없을 것 같은가 보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예전부터 오빠는 아버지의 붓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다.
"색칠하는 건 어때?""색칠?"
눈을 반짝거리며 오빠가 되물었다. 내가 회사일로 힘들 때,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색칠했던 경험이 떠올랐던 것이다. 숫자에 맞춰서 물감을 색칠하는 그 간단한 활동을 오빠에게 보여주자, 오빠는 너무 즐거워했다. 수많은 그림 중, 오빠는 꽤나 어려워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을 골랐다. 전구로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말하는 오빠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그림이 배송되자 오빠는 행복에 겨워 당장 붓을 들고 색칠을 시작했다. 전구로 트리를 꾸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싶다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나름의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래서 내가 '닌텐도'를 구매하는 것을 제안했다. 오빠도 좋아했고, 게임기가 와서 게임을 종종 하곤 했지만, 우리 가족은 태생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나 보다. 게임을 하더라도 30분이면 끝이었다. 결국 오빠는 다시 심심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수업 프로그램들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연초에 정해진 기간에만 신청할 수 있었고, 그때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었다. 나는 오빠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이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했다.


"오빠, 퍼즐 할 수 있겠어?"

"응."


그러자 아버지께서 얼른 대답하셨다.


"퍼즐은 어느정도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예전에 퍼즐 주니깐 그냥 모양만 맞는 것으로 억지로 아무데나 끼워놓고 있었어."


퍼즐은 패스.


"레고는 해보는 거 어때?"

"아니."


레고는 또 재미가 없을 것 같은가 보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예전부터 오빠는 아버지의 붓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다.


"색칠하는 건 어때?"

"색칠?"


눈을 반짝거리며 오빠가 되물었다. 내가 회사일로 힘들 때,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색칠했던 경험이 떠올랐던 것이다. 숫자에 맞춰서 물감을 색칠하는 그 간단한 활동을 오빠에게 보여주자, 오빠는 너무 즐거워했다. 수많은 그림 중, 오빠는 꽤나 어려워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을 골랐다. 전구로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말하는 오빠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그림이 배송되자 오빠는 행복에 겨워 당장 붓을 들고 색칠을 시작했다. 전구로 트리를 꾸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싶다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나름의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준 것 같아 뿌듯했다.




새로운 상담 선생님과의 만남


한편, 엄마와 오빠는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나는 구글링을 통해 성인 발달장애인을 전문으로 상담해 주는 드문 분을 힘들게 찾아냈다. 거리는 멀었지만, 엄마는 돌아오자마자 그 선생님을 칭찬하기 바빴다.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오빠에 대해 줄줄 읊어내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했다고 했다.


많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아이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애쓰며 살아간다고 한다. 비장애인 형제가 있으면 더욱 그 형제와 비슷한 기준을 장애인 자녀에게 적용하려는 부모가 많다. 그래서 오빠도 자신만의 속도로 살지 못하고 억눌려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발달장애인의 억눌림이 주로 30대 초반에 터져 나오지만, 오빠는 30대 후반에 터졌으니 꽤 늦은 편이라고 한다.


오빠가 집에 핸드크림을 모아두는 강박에 대해 상담 선생님께 이야기하자, 그분은 오빠가 다양한 강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이 단순한 오빠 성격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오빠의 억눌린 감정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분은 다른 장애인들이 경찰서에 가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옳고그름에 대한 기준을 정확하게 배우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잘못했는 지 모르는 일로 경찰서에 자주 들락날락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 그들을 지켜줄 사람조차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 현실은 너무도 슬프게 다가왔다.


엄마는 상담이 끝나자마자 한 달치 상담 예약을 한 뒤 미리 결제까지 마치고 왔다. 위치가 아무리 멀어도, 우리 가족이 오빠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울 수 있고, 오빠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된다는 생각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라는 힘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가족의 사랑은 미움과 불편함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빠와의 일상은 때로는 우리에게 도전과 같은 순간을 주지만, 그 순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진다. 함께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오히려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우리 가족과 함께 오빠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을 천천히 함께해나갈 것을 다짐한다. 가족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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