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오빠는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를 자꾸 꺾곤 했다. 초등학생의 눈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나는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단순히 동생으로서 오빠를 괜히 고자질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오빠가 자꾸 나무를 꺾는다고 말이다. 엄마는 그제야 내가 했던 말을 가볍게 넘겼던 것을 후회하며, 오빠를 혼내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성인이 된 지금, 오빠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가끔 하곤 한다. 그 중 하나는 핸드크림에 관한 것이었다. 겨울만 되면 오빠는 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나갔다. 그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열고 닫다 보니 핸드크림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출근을 하기 위해 오빠 뒤를 따라가던 중, 아파트와 상가의 문 손잡이에 묻은 핸드크림을 보게 되었다. 누가봐도 오빠가 분명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일러바치던 나였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누나가 되어 오빠를 크게 혼냈다. 내가 혼낸 뒤로는 오빠도 그런 이상한 행동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번에는 훨씬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다. 오빠의 회사에서 누군가 한 직원의 사물함과 작업복에 핸드크림을 잔뜩 발라놓았다는 것이다. 오빠가 평소에 핸드크림을 자주 사용하던 터라, 회사 부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엄마는 심장이 내려앉을 듯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직감적으로 오빠가 한 일일 것 같다고 느꼈다. 한 시간 후, 회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고, 예상대로 범인은 오빠였다.
회사로부터 온 전화를 엿들은 나는 또한번 엄마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20년 만이었다. 엄마의 한숨과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또한번 방에서 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무너질 것만 같은 엄마를 보며 눈물이 나는 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해도 정면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소심한 복수로 대응하곤 했다. 예전에는 괴롭힌 아이들의 옷을 몰래 버린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핸드크림을 묻히는 방법으로 복수를 한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오빠에게 "남의 사물함에 손대면 안 된다, 돈을 훔치면 안 된다, 물건을 가져가면 안 된다, 요즘 세상엔 어딜 가도 CCTV가 있어서 다 네가 한 행동인지 안다"는 등 기본적인 규칙을 교육했지만, 그 리스트에 없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빠는 마흔살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르쳐야 할 것이 많은 아이였다.
회사에서 '누군가가 A의 작업복에 핸드크림을 묻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물함 검사를 하겠다고 했단다. 회사 부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때 오빠가 갑자기 사라졌고, 나중에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단다.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 부장님이 오빠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이 오빠의 어깨를 꽉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등 평소에도 종종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오빠의 복수는 크림을 묻히는 정도에 그쳐, 세탁비만 보상하면 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럴 때면 오빠가 소심한 성격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회사의 부장님이 오빠에게 '엄마한테 전화했다'라고 말을 했더니, 오빠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며 '엄마에게만큼은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오빠가 너무 겁을 내기에 회사의 부장님은 자세한 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약속한 거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얘기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오빠를 많이 혼내면서 키워서 그런지 지금도 엄마라고 하면 꼼짝을 못 하니 겁을 내는 것 같았다. 회사의 부장님이 그렇게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사하고도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다행히 더 이상의 큰 문제로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부모님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고, 나 역시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세상에 해서는 안 될 행동 1만 가지를 리스트에 넣어 오빠에게 매번 주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괴롭힌 사람이 먼저 잘못한 일일 지라도 말이다. 10년에 한 번 꼴로 발생을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그저 오빠가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하고, 또 세상이 오빠를 조금 더 품어주길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