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내가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인 A가 네 살 어린 여자와 특별한 결혼식을 올렸다.
왜 특별하냐고?
그건 바로 내 친구 A도 여자이기 때문이다.
A가 여자친구와 오래 만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서류상 불가능한 우리나라에서 A가 실제로 결혼식을 올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교회에서 세례까지 받았던 나였지만, 한편으로는 MZ세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사랑에 성별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A의 결혼식은 아름다웠다. A의 여자친구인 B는 스스로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밝히는 행위)'을 한 사람이었기에 주변 지인들이 그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지인들이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반면에 내 친구 A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 일부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A는 '가족이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이라니, 조금 슬픈 것 같다'라는 친구들의 말에, 그래도 너네들이 와 주었기에 괜찮다고 답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B의 아버지께서 먼저 와 계셨는데 그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처음 B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이 결혼을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냐는 질문에,
"원래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어. 아니기만을 바랐을 뿐이지. 근데 뭐 어떡하겠어. 그렇다고 해서 너네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라고 답하셨다. B의 아버지는 신세대 아버지셨다. 그리고 그 대답은 영화에서만 보던 모습이었다. 꽤나 멋진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내게 축사를 부탁했다. 나는 A와 B의 교제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다. 축사를 부탁받고 많이 고민했다. 처음 해보는 축사이기도 하지만, A와 B의 특별한 결혼식에 해야 하는 축사이기도 했다. 수만 가지 멋진 멘트를 고민했지만 결국은 내 진심만 전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A의 친구 신잔잔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서 두 사람에게 축사를 하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와 A의 만남은 n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가 제게 말을 걸었죠. "안녕? 나 너 알아. 너 작년에 머리 짧은 애로 엄청 유명했어." 그날로 저희는 베프가 되었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세계 이곳저곳을 함께 누비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A는 연애 한 번을 못하더라고요. '딱 혼자 늙어 죽겠구나, '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야, 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는데... 한 번 만나볼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래. 누구든 만나서 사랑이라는 걸 해봐."
그렇게 A가 연애를 시작했고, 그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쁨과 설렘, 그리고 수많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하지만 지금 보니 A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있는 사람이 B였기 때문인 것 같네요.
B야, A가 나에게 늘 말했어. 너는 평생 함께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너도 알다시피 A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든든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상처도, 여린 부분도 정말 많은 애야. 그러니까 가끔 의견이 안 맞더라도 서로서로 날카로운 말로 상처 주지 말고, 항상 서로를 배려하고 믿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A야, 너와 n 년을 함께하며 느낀 것은 너는 항상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라는 거야. 나는 종종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길 망설이곤 했지만, 너는 네가 선택한 길의 끝까지 걸어갔고 대부분 그곳에 진짜 길이 있었지. 네가 없었다면, 너라는 본보기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많은 순간들이 지금만큼 빛나지 않았을 거야. 이런 말 오글거리지만 오늘 좋은 날이니까 딱 한 번만 할게. 친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너를 많이 사랑하고 존경해.
오늘부터 시작되는 너와 B의 새로운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가 되길 진심으로 바랄게. 그리고 그 동화의 한 페이지에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
끝까지 서로를 믿고 아껴주며, 오늘의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길 바라.
Love wins all.
평생 행복해라!
이렇게 축사를 전하는 도중 A와 B를 보는데 갑자기 둘이 펑펑 우는 것이 아닌가.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축사를 전하면서도 속으로 '어느 포인트가 대체 눈물이 나는 포인트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가니 나의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들로부터 어떻게 그런 축사를 하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냐는 타박을 듣기도 했는데, 사실 나는 웃기게 쓰려고 노력한 글이었다. 눈물은 정말 예상치도 못했는데 이런 걸 보고 화자의 의도와 달랐다고 표현하는 건가 보다. 아무렴 어때. 의도는 달랐어도 다들 행복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내 친구의 특별한 결혼식이 마무리되었다.
나도 예전에는 사랑이란 당연히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다. 그 믿음이 처음 흔들린 건 영화 캐롤을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는 말해주었다. 사랑은 그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마음일 뿐이라는 것을.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은 반드시 어떤 형태여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상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은 마음인지, 벅차오르는 뜨거움인지, 아니면 조용한 편안함인지,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인지.
그 감정이 궁금해서 수없이 많은 사랑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사랑은 내게 미지의 세계다.
물론 나도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오랜 시간 함께한 남자친구를 사랑하며,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한다’는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그 감정이 곧 사랑의 정의인 건지, 여전히 어렵고 알 수 없다.
그러다 영화 캐롤을 보고, 그리고 내 친구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사랑은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이라는 걸.
내가 애써 찾으려 했던 건 어쩌면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이름을 억지로 규정짓고자 했던 시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국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이니까.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사랑의 모양을 '무지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든 누구와든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일 테니. 그렇기에 나는 내 친구의 사랑이 어떤 모양이든, 마음껏 응원하고 영원히 축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