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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3. 2023

#24.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잔잔한 여행

자유로운 거리에서, 즐거운 첫째 날

오늘은 오후 1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는 날 이었는데... 예정대로라면 그랬는데... 어젯밤 내가 피곤에 찌들어 잠을 자고 있는데 옆에서 K가 날 흔들어 깨운다. "야, 큰일이야! 우리 비행기 끊어놓은 거 돈 지불 안 되었나본데?" "무슨 소리야... 예약번호도 있는데..." 아침형 인간인 나, 밤에는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할래.. 정 안되면 공항가서 끊자... 잘자..."


그리고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난 것이었다. 자다가 들은 이야기라 사실 꿈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현실임을 깨닫고 얼른 일어나 검색을 미친듯이 하였다. 마지막까지 바람잘 날이 없다. 원래 예매하려던 안데스 항공은 서너 번의 시도에도 돈이 지불되지 않아서 이용 불가라고 뜬다. 결제 자체가 되지를 않는다. 버스 시간 예약은 10시 반으로 해 놓았는데 점점 초초해져 간다. 결국 좀 더 비싸지만 비슷한 시간대인 오후 12시 10분 비행기인 Norwegian 비행기를 끊기로 했다. 


이번엔 또 카드가 말썽이다. 결제를 하려면 휴대폰으로 날라온 인증번호를 입력해야만 했는데, 둘 다 유심을 사용한다고 폰을 다 정지하고 왔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나의 구세주인 남자친구에게 연락했다. '오빠.. 카드결제가 안 돼...." 밖에서 밥을 먹는 중이라 카드도 안 들고 나왔다는데, 내 한마디에 다 버리고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서 결제를 해준다. "이거 여기 들어가서 이렇게 누르고, 이거는 이렇게 입력하야 되는데.. 내 말 알아듣겠어?" 방으로 들어가서 도와주는 나의 천사. 한참 카톡으로 어렵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의 한마디, "그냥 내 카드번호 알려줄테니까, 다 하고 내 폰 번호 쓰면 내가 인증번호 알려줄게."


잠시만,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미국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결제가 안 되어서 눈물콧물 다 쏙 뺐었고, 리마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K의 동생에게 한시간에 걸쳐 설명하고 시켰었는데. K와 나, 서로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는다. 우리는 정녕 바보였던가. 그 모든 것이 저 인증번호 하나로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니. 우리는 정녕 바보였음이 분명했다. 여튼 다행히도 그렇게 간단하게 예매를 마친다.


감사의 말을 끝으로 빠르게 준비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버스 시간도 10시 반에 출발 하면 늦을 듯 하여 시간 변경을 하고 싶으나, 버스정류장 그 직원도 스페인어밖에 못한다. 결국 숙소 사장님한테 연락해서 SOS를 요청한다. 남미에서 많이 쓰는 whatsapp까지 만들어 숙소 사장님과 연락한 결과 사장님이 달려나오셨다. 그리고 전화 한 통으로 싹 다 해결해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진짜 수십번도 더 한 듯하다. 


겨우겨우 체크아웃하고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제일 힘들게 노르웨지안 탑승에 성공했다. 우리는 비행기만 타려고 하면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걸 보니, 비행기와 악연인 건가 싶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준비성 없이 와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자리도 1번이라 넓어서 개이득이다. 옆자리에 앉은 언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인데 영어를 꽤나 한다. 대화를 좀 나누는데, 자기는 스위스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한다. 그 때 서울도 놀러 가봤다고. 그러면서 우리한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갈 만한 곳도 알려주고 직접 검색해서 찾아서 보여주기도 하며, 라 보카 지역이 탱고로 유명하긴 하지만 진짜 위험하니깐 저녁엔 늦게 다니지 말고 사람 없는 길은 조심하라고 몇 번을 당부한다. 현지인이 그렇게 절대 안된다는 표정으로 말해주니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실감이 난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여 택시를 잡았다. 현금도 거의 없고 해서 자동결제 우버 택시로 탑승한 뒤 에어비앤비 숙소 앞에서 내리려는데 우버 기사가 '돈 내야지~'라고 말한다. '우버 앱에서 자동으로 결제 돼요하니깐 'OK' 하면서 가란다. 나는 그냥 아저씨가 모르는 줄 알았는데 K가 하는 말, '야 저 자식 사기치려 한 거잖아'. 우와. 진짜 우리가 현금만 가득 있었어도 뭣모르고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사기꾼들이 판치는 이 세상. 어휴.


숙소는 원룸이었는데 주방, 침대, 소파와 티비, 그리고 파시오 까지 있다. 호스트 언니도 너무 착하고 좋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이 곳이 일주일 간 우리가 계속 머무를 숙소다. 이번에 에어비앤비로 고른 곳들은 다 만족스럽다. 


현금이 없어서 돈을 뽑으러 나갔다가 슈퍼를 가는 길에 길에서 어떤 아줌마가 소고기를 먹고 있는 걸 발견했다. 너무 맛있어 보여서 우리도 결국 앉고야 말았다. 뭐가 뭔지 몰라 일단 아무런 고기나 시켜 보았다.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 지미추리 소스 맛있다며 우리에게 추천한다. 여긴 수도라 그런지 확실히 다른 지역보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대화가 된다.

  


길 한복판에서 먹게 된 소고기


저 장소에서 산 뒤에 길에다가 놓아둔 식탁에 ㅇ낮아서 먹는 것이다. 양이 진짜 어마무시하게 많다. 여긴 어딜가도 그렇게나 많긴 하다. 위 소고기가 4천원 정도 되는 돈이다. 역시 맛집 찾아다니는 것 보다 이런 데서 딱 보고 먹는 게 더 싸고 맛있다. 아저씨가 추천해 준 지미추리 소스는 맵지도 않고 적당하게 내 입맛에 맞았다. 즐겁게 먹고 있으니 옆에 앉은 아줌마가 영어로 말을 건다. '여행객이냐, 부에노스 아이레스 좋냐, 여기 팔레르모 근처가 살기 좋다, 고기는 웰던 말고 꼭 미디움레어나 레어로 먹어라, 이 근처가 안전해서 밤에 놀기 좋은 곳이다. 뭐 필요한 거나 궁금한 거 없냐' 등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동네사람들만 알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해 주시곤 쿨하게 떠나신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 숨통이 좀 트인다. 우리나라 말도 아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다니.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장을 보러 갔다. 물, 맥주, 파스타, 마늘, 빵, 잼, 시리얼, 버터 등등 엄청 샀는데 그렇게 다 사도 만 원 남짓 나왔다. 에어비앤비로 묵는 곳이라 관광지 근처가 아니어서 그런지 여기가 오히려 다른나라보다 더 싸게 느껴진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는 있는 아르헨티나지만 아직 다행히도 일상 용품들에 대해서는 가격이 많이 안 올랐나보다. 


짐을 방에 내려놓고 '할인티켓부스'로 향했다.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전통적인 탱고라는 피아졸라 탱고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공연이 오후 9시반이었기에 그 전까지 돌아다니다가 한 아저씨가 어떤 가게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계셔서 그 자리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여유로움이란,



팝송 위주라 대부분 아는 노래여서 따라하기에 좋았다. 먹는데는 아껴도 이런 라이브 공연에는 팁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매너를 가져야 한다고 느끼는 중이라 과감히 팁을 투척하고 왔다. 물론 사실 먹는 데도 딱히 아끼지 않기는 한다. 나와서 조금 걷는데 피자 집이 보인다. 보아하니, 이 지역에서 유명한 양파피자를 판다. 새로운 것이라면 놓치지 않느 우리, 바로 맛을 보러 들어갔다.  


사진은 좀 이상해 보이지만.. 양파피자


사진은 비록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 맛은 엄청 좋다. 그러나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너무 불러 조금만 먹고 포장해서 왔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시간이 되어 탱고를 보러 들어갔다. 피아졸라 직원들은 다들 엄청 친절하다. 

  


피아졸라 탱고 공연장



한참을 기다렸고 드디어 탱고가 시작되었다. 나름 유명하다는 데서 탱고를 보는데 생각보다는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물론 기술적으로 정말 대단하고 멋있지만 내가 아는 탱고란 네 개의 다리, 하나의 심장 이었는데. 탱고를 잘 모르지만, 내 눈에 피아졸라 공연은 네 개의 다리는 맞지만 두 개의 심장 같았다.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 있어 보였다. 나는 소울이 가득한 공연을 꿈꿨는데. 기술들만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공연장에는 관광객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많아서인가 정신사나운 느낌이 강했다. 공연 마니아로써, 나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고 싶었는데, 내 눈앞에서 수많은 핸드폰 카메라들이 내 시선을 분산시킨다. 그 점이 제일 아쉬웠다. 


모든 음악은 지휘자가 따로 없이 그 시작이 다양했다. 반도네온 하는 사람의 발 소리로 박자가 시작되어 노래가 연주될 때도 있었고, 80세는 되어 보이는 피아노 연주자 할아버지의 손짓으로 시작되기도 하였으며, 더블베이스의 악기를 퉁 치는 소리로 시작하기도 하였다. 음악이 너무 좋았기에, 조금 부족한 탱고 공연의 느낌이었어도 나름 만족했다. 그 아름다움이 눈에 남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있는 동안에는 1일 1탱고를 보자고 K와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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