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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디지털 톡스 중

예쁜 쓰레기의 전설... 다시 돌아와 줘...

by 라내하

나는 블랙베리라는 예쁘기만한 핸드폰을 사용중이다.
갤럭시 S23 같은 최신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이제 내게 서브폰일 뿐이다.

블랙베리는 이제 ‘예쁜 쓰레기’라 불릴 만큼 실사용이 어려운 폰이다.
지원되지 않는 앱도 많고, OS 업데이트도 멈춘 지 오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선택이 세상과 반절 단절되는 길이라는 것을.

카카오톡조차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폰을 메인으로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선택하는 일이다.
유튜브? 맥북 or 아이패드 로 보면 된다.
배달 앱? 직접 전화하면 된다.
결제? 카드 들고 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나하나 대안을 찾아가면서 살고 있다.


사실, 한동안 갤럭시 S23을 메인폰으로 사용했었다.
스마트폰이 주는 편리함을 알기에,

완전히 놓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늘 앱을 깔아놓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깔아놓은 것만 수십 개인데, 정작 쓰는 건 몇 개 안 된다.
그런데도 새 기능이 있으면 괜히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고,

분명 필요해서 깔았는데 뭘 설치한건지 까먹기도 한다.

그런데 블랙베리만 사용하면, 그런 강박이 사라진다.
애초에 깔리지도 않는 앱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덜 보게 된다.
결국 필요한 것만 하게 되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궁금하다.

"나는 왜 항상 앱을 깔아두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정말로 필요한 것과, 그냥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유지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그 답을 블랙베리를 통해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물리 키보드의 감성을 포기할 수 없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키감, 누를 때 나는 작은 소리,
그리고 그 감각적인 디자인.

(쪼만해서 은근 키보드 치기 어렵다. 그래서 답장도 짧다.)

갤럭시 S23을 사용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삼성이 블랙베리 같은 폰을 만들어줬다면, 나는 당장 샀을 거야."
대신, 예뻐야 한다. 예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블랙베리를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나에게 블랙베리는 정말 소중한 잇템이다.

남들에게는 불편할지 몰라도,
나는 블랙베리를 쓸 때 가장 나답다.


그리고 블랙베리는 느리다.
터치하면 바로 반응하는 최신폰과는 다르게,
가끔씩 한 박자 쉬어야 한다.


하지만 그 느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느림의 미학을 블랙베리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기다림이란...

바쁜 세상 속에서 잠깐 멈춰 숨 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늦게 도착해도,
앱이 천천히 열려도,
오히려 조급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는 이제 최신폰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폰을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선택이 세상과 반절 단절되는 길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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