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이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삶과 일과 돈, 이 세 개의 좌표 속에서 나는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젊은 시절에는 이 질문이 참으로 단순했다. 일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 마치 직선처럼 명확한 방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 나에게 이 세 가지 요소는 복잡한 삼각형을 이루며 내 앞에 놓여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삼각형의 어느 지점에 내 남은 인생을 위치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33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살면서, '일'은 내게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자 사명이었고, 때로는 소명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교실에 들어서며 느꼈던 그 무게감과 책임감. 어떤 날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이유였다.
도덕윤리과 교사로서 나는 늘 학생들에게 말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과정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일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일 없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과거 박사과정 중 교육학 세미나에서 들은 '소명 의식(calling)'에 대한 강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강사는 말했다. "소명은 특정 직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입니다." 그렇다면 교사라는 직함을 벗은 후에도, 나의 소명은 계속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평균 교사의 급여는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안정적이었고, 예측 가능했다. 매월 일정한 날짜에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나에게 경제적 안정감을 주었고, 그 안정감 위에서 나는 교육자로서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은퇴를 앞둔 지금, 돈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벌어야 할' 돈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돈이 되었다. 교직원 연금과 그동안의 저축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했던 '화폐에 대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그는 돈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을 구분했다. 하나는 돈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 은퇴 후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돈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삶. 이 단어 앞에서 나는 가장 겸손해진다. 33년간 교사로 살면서, 나는 수많은 젊은 생명들의 성장을 지켜봤다.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나 자신도 끊임없이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에로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그 이후의 삶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은퇴라는 또 다른 전환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개념도 불현듯 스친다. 흔히 '행복'으로 번역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쾌락이나 만족이 아니라 '잘 사는 것', 즉 자신의 본성에 따라 탁월함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은퇴 후의 나에게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삶, 일, 돈. 이 세 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안에서, 나는 어느 지점에 위치해야 할까? 각 꼭짓점 근처에는 나름의 유혹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삶' 쪽에 너무 가까이 가면, 현실을 무시한 채 이상만 추구하게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돈' 쪽에 치우치면, 삶의 본질적 가치를 놓칠 수 있다. '일' 쪽에 머물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할 수 있다.
최근 읽은 리처드 플로리다의 『도시와 창조계급』에서 '창조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는 현대인들이 더 이상 전통적인 직업 안정성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창의성과 자율성,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 추구한다고 했다. 은퇴 후의 나도 이런 '창조계급'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유튜브 동영상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의 고민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들은 각자의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지만 워라밸로 고민에 빠져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 하지만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삶과 일과 돈의 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33년간 안정적인 교직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제는 '의미'를 더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고려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은퇴 후 20년,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지탱할 것인가?
그동안의 고민들의 통해 나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삶, 일, 돈을 서로 대립하는 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퇴 후에도 교육 관련 강의나 멘토링을 통해 적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일'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이자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글이나 강의로 나누어 작은 수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유연한 움직임이다.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삼각형 안에서 내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은퇴 후 삶의 지혜가 아닐까.
33년의 교직 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을 무한정 있는 자원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시간의 유한성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삶, 일, 돈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경험과 관계, 그리고 의미는 영원히 남는다.
결국 은퇴 후의 삶은 새로운 나만의 내비게이션을 설정하는 것과 같다.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방향성은 있다. 그 방향성은 바로 '의미 있는 삶'을 향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제적 고려도 필요하고, 적절한 활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잘 사는 것'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33년간 교사로 살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이것이었다. 성적이나 진학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제 그 가르침을 나 자신에게 적용할 차례다.
삶, 일, 돈의 삼각형 안에서 나는 고정된 점이 아닌 움직이는 점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삶의 의미를 향해, 때로는 경제적 안정을 향해, 때로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그 모든 움직임이 결국은 하나의 아름다운 궤적을 그려나가기를 바라면서.
은퇴 후의 내 인생 2.0, 그것은 완벽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 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