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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OO 선생님"에서 온전한 "쫑아빠"로의 리브랜딩!!

by 윤근관쫑아빠

호칭의 마법이 풀리는 순간

"윤근관 선생님 안녕하세요!"

33년간 들어온 이 인사말이 곧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다. 마치 오랫동안 입고 있던 출근복을 벗는 것 같달까? 아니면 매일 쓰던 안경을 빼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쫑아빠"라고도 불린다. 큰아들 윤종연, 둘째 윤종우. 두 녀석의 이름에서 '종'자를 따서 만든 나만의 애칭이다. 처음 인터넷 공간에서 회원가입을 하면서 이름 외에 나만의 닉네임을 고민하다가 "쫑아빠"라고 불렀는데, 어느새 그게 나만의 정식 호칭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은퇴를 하고 나면 그 이십몇 년 간을 유지해 오던 그 호칭을 버려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무슨 무슨 선생님이 아닌 나를 또다시 규정해 줄 나만의 리브랜딩의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정체성의 옷장 정리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특정 환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성향이나 습관을 말한다. 33년간 교실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선생님 아비투스'가 몸에 배어있다.

아침 7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1교시 수업을 위한 출근 준비 습관)

엘리베이터에서도 혹시 제자를 만날까 봐 항상 단정한 모습을 유지한다

길에서 마주친 모르는 학생에게도 나를 아는 학생일까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이런 것들이 과연 나쁜 것일까? 아니다. 이것들은 33년간 쌓아온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이제는 이 자산들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때가 왔을 뿐이다.


도덕 선생님의 철학적 고민

33년간 도덕·윤리를 가르치면서 늘 학생들에게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질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고 했다. 때로는 자유가 두렵기도 하다. 33년간 정해진 시간표, 정해진 교육과정, 정해진 역할 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무한한 자유 앞에 서니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자유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33년간 선생님으로 살아온 나, 그리고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갈 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완성된 서사가 되어야 한다.


리브랜딩의 철학: 연속성 속의 변화

기업들 사이에서 많이 유행하는 리브랜딩이라는 말이 한 개인에게는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나에게는 이미 그 실마리가 있었다. 33년간 도덕 수업을 하면서 내가 가장 자주 강조한 가치들을 떠올려보니, 그것들이 바로 내 인생의 핵심 가치였던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라"가 아니라 "진실한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할 때, 사실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남을 도와주어라"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라"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열심히 공부해라"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해라"라고 강조할 때도 그랬다. 이런 가치들이 은퇴 후에도 내 삶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집에서 '쫑아빠'로 20년 넘게 살면서 느낀 건, 이 호칭에는 '윤근관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따뜻함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아빠는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아빠는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지만, 아빠는 '실수도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은퇴 후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쫑아빠'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새로운 무대에서 이런 역할을 실험해 볼 수 있을까? 요즘 들어 "쫑아빠의 인생 상담소"라는 간판을 달고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젊은 교사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고,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 때문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인생의 전환점에 선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글쓰기에 대한 꿈도 있다. "쫑아빠가 들려주는 교단 일기"라는 제목으로 33년 교직생활의 에피소드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싶기도 하다. 거창한 이론서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깨달음들을 유머러스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실패담도 솔직하게, 성공담도 겸손하게 담아내면서 말이다.


강연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윤근관 선생님이 아닌 쫑아빠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라는 주제로 딱딱한 도덕 수업이 아닌 재미있는 인생 수업을 하고 싶다. 교단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같은 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강연 말이다.


호칭 변화의 심리학

사실 호칭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체성의 변화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생애 발달 단계'에 따르면, 50-60대는 '생산성 대 침체성'의 단계다. 이 시기에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성'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실에서의 생산성과 은퇴 후의 생산성은 다르다. 더 자유롭고, 더 창의적이며, 더 개인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나는 타인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 학생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다. 자기 돌봄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나만의 변화 실험: '쫑아빠 2.0'

변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나의 아들 종연이와 종우가 조금씩 자라면서 변해온 것처럼, 나의 변화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외적인 변화부터 시작해 보자. 33년간 입어온 출근복에서 벗어나 편안한 나만의 옷차림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단정하게 말이다. 말투도 조금씩 바꿔보고 있다. 존댓말 일변도에서 상황에 맞는 다양한 말투로,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표정이 습관이 되어있었는데, 이제는 좀 더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내적인 변화는 더 중요하다. 33년간 수업 시간표에 맞춰 살았던 나는 이제 내 마음의 리듬에 맞춰 살아보려 한다. 수직적 관계에 익숙했던 나는 더 많은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인 나가 아니라 온전히 고독을 즐기는 나 혼자만의 세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위한 목표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목표도 세워보고 있다.


공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집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창작과 만남의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있고, 동네는 그냥 지나치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교육적 목적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과 영감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드는 여행말이다.


변하지 않을 나의 본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내 브랜드의 핵심 가치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 정직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 그리고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마음. 이런 것들은 '윤근관 선생님'일 때나 '쫑아빠'일 때나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다.


반면 변해야 할 것들도 분명히 있다.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소통 방식을 배워야 하고, 권위보다는 친근함을 앞세워야 한다. 완벽함보다는 인간미를 드러내고, 가르치기보다는 함께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런 변화들이 표현 방식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에필로그: 나만의 리브랜딩에 대하여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불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다. '윤근관 선생님'이었을 때도, '쫑아빠'일 때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걱정해 주며, 작은 성취에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마음이다.


33년간 교실에서 만난 수천 명의 학생들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마음'이었다. 이제 그 마음으로 인생의 새로운 교실에 들어선다. 교탁은 없지만 여전히 배우고 가르칠 것이고, 성적표는 없지만 여전히 성장할 것이며, 교복은 없지만 여전히 단정한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윤근관 선생님, 안녕. 쫑아빠 2.0, 안녕!


그리고... 진짜 나야,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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