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 삐삐삐!(아이폰 기본 알람소리!!!)
아침 6시 30분, 33년간 나를 깨우던 알람 소리.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팔이 뻗어 알람을 끄는 동작은 이제 자연스러운 근육 기억이 되었다. 몇 번이나 알람 시계를 바꿨는지 모르지만, 그 소리는 언제나 내게 '의무'와 '책임'을 상기시켰다. 1분도 늦을 수 없는 첫 교시,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 그날의 아침회의, 기한에 맞춰 보고해야 할 공문들... 시간은 늘 나를 쫓았고, 나는 늘 시간에 쫓겼다.
지난 33년간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내 삶은 철저히 시간에 종속되어 있었다. 종소리에 맞춰 수업을 시작하고, 종소리에 맞춰 마치고, 학교 일정표에 따라 시험을 치르고, 성적 마감일에 맞춰 밤을 새우기도 했다. 교사의 삶은 곧 시간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이 알람 소리가 곧 내 삶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은 묘한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온다.
알람 없는 아침. 내 인생 2.0의 첫 번째 변화이자, 가장 기대되는 변화.
벌써 퇴직한 선배 한 명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은퇴하면 제일 좋은 건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깨는 거야.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너는 아직 몰라."
오늘 갑자기 나의 휴대폰 알람 시계를 바라보며 상상해본다.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 아침. 시계를 확인하지 않고도, 서두르지 않고도, 내 몸이 원하는 리듬대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 그것이 자유로운 시간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의 시작이 아닐까.
33년간 시간에 종속된 삶을 살았다. 수업 시간표, 학사 일정, 성적 처리 기한, 각종 공문 마감일... 내 인생의 캘린더는 언제나 빽빽했고, 모든 일정은 '마감'이라는 압박을 동반했다. 시간은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 교사로서 매일 아침 반에 들어가 출석을 부르고,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그날의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일상. 수업과 수업 사이 10분의 쉬는 시간조차 누군가를 만나거나 다음 수업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흘러갔다. 점심시간은 급식 지도와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졌고, 방과 후에는 각종 회의와 공문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내 시간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런데 아빠, 그렇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하실 건데요?"
가족 모임에서 큰아들이 던진 질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아직 모르겠어. 그게 바로 자유로운 시간의 매력 아닐까?"
사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계획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1년의 계획을 세우고, 한 학기의 수업 계획을 짜고, 한 달의 진도를 계획하고, 일주일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모든 것이 사전에 정해져 있었다. 불확실성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백지 상태의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채워나갈 수 있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 그것은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작은아들은 내 은퇴 계획을 들으며 농담처럼 말한다. "아빠, 혹시 학교 종소리가 그리워서 집에 타이머 맞춰놓고 사시는 건 아니겠죠?"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상상도 해보게 된다. 학교 종소리, 교무실의 소음, 복도를 달리는 아이들의 발소리... 33년간 익숙해진 그 소리들이 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소리 없는 아침의 고요함이다. 알람 소리에 놀라 깨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루를 맞이하는 여유. 33년 만에 처음으로 맛보게 될 그 자유로움!!!
요즘은 일부러 주말 알람을 맞추지 않는 연습을 한다. 평일의 습관대로 일찍 일어나곤 하지만, 그래도 알람 없이 깨는 그 기분은 묘하게 다르다. 마치 시간이 내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초대하는 느낌.
얼마 전 교무실에 은퇴한 선배 교사가 학교에 들렀을 때,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한결 여유로워진 얼굴, 긴장감이 사라진 어깨, 그리고 무엇보다 시계를 자주 확인하지 않는 모습.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은퇴란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구나.
두 아들은 내 은퇴 계획에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큰아들은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고, 작은아들은 농담을 섞어가며 내 새로운 삶에 관심을 보인다. 두 아이 모두 아직은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기에, 아마도 내가 꿈꾸는 '알람 없는 아침'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언젠가 그들도 이해하게 될 테니까.
이제 남은 교직 생활 동안, 매일 아침 알람 소리를 조금 더 의식적으로 경험하려 한다. 그 소리가 나를 깨울 때마다,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순간을 음미하려 한다. 33년간의 알람 소리와 작별하는 과정, 그것 또한 인생 2.0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교실을 들어설 때마다, 시계를 확인할 때마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곧 나는 시간의 종속자가 아닌, 시간의 소유자가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은퇴 후 첫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들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머지않아 나는 '시간의 종속자'에서 '시간의 소유자'로 거듭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쫓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와 함께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삐삐삐! 삐삐삐!(오늘도 역시 아이폰 기본 알람소리!!!)
오늘도 알람이 울린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예전과 조금 다르게 들린다.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자유로운 시간의 소유자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