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wain Sep 20. 2024

자랑세

08

“누구는 사업이 대박 나서 월에 몇천은 가져간다더라.”,

“누구는 주식으로 몇억을 벌어서 차를 BMW로 바꿨다더라.”,

“누구는 여자친구가 너무 예쁘길래 연예인인 줄 알았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 '누구'가 되어본 적이 없다.

왜 거대한 행운의 주인공은 항상 내가 아닌 주변 사람의 차지가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해 본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엥? 없다고요?!


세계에서 남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세계에서 남하고 가장 비교를 많이 하는 나라, 세계에서 국민의 자존감이 가장 낮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계신데 그럴 리가 없죠.

요즘 SNS만 봐도 그렇습니다. 배려나 자비가 없어요.

다들 누군가의 삶의 의지나 욕구를 꺾으려는데 혈안이 되어있어요.

특히 동창회가 심하죠. 오랜만에 친구들 보려고는 무슨, 다들 자기 얼마나 잘 살고 있나 자랑하려고 오는 거잖아요?

그런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기가 찹니다. 기가 차요.

자랑이라는 건 말이죠, 길바닥에 똥 싸듯 함부로 싸지르는 게 아니에요.

까딱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지금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곧 당신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오마카세 사진부터 지우게 될 테니까요.


창훈 씨는 그날 동창회에 갔습니다.

사실 30대 중반 남자가 동창회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뿐이죠.

여자 친구를 만들러 가거나, 자랑질하러 가는 것이죠.

창훈 씨는 전자였습니다. 여자 때문에 간 거예요. 그런데 말입니다.

20대 후반부터 진행된 탈모, 중소기업, 작은 키와 좁은 어깨, 수줍은 성격 등 창훈 씨의 수식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그럼 가서 뭘 하느냐? 그냥 잘된 친구들 병풍 놀이만 하다가 오는 거예요.

학창 시절 내내 창훈 씨를 괴롭히던 경택이는 경찰이 돼서 승승장구 중이고, 고등학교 내내 1등만 하던 연성이는 성형외과 의사가 돼서 페라리를 끌고 왔고,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도 잘 안 나는 기훈이는 갑자기 청첩장을 쓱 내미네요. 그 사이에서 덜 마른빨래처럼 어깨가 축 처진 창훈 씨에게 누가 물어봅니다.

“근데, 창훈이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뭐 하긴요. 창훈 씨도 열심히 삽니다.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요.

주 5일 빠듯하지만 정직하게 자기 일 하면서 열심히 살아요.

근데 그게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걸까요.

“나? 그냥 작은 회사 다니고 있어.”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군요.

그러자 친구 하나가 묻습니다. 그 사람이 경택이었던 거 같은데.

“작은 회사를 한다고? 창업했구나? 뭐 하는 회산데?"

아. 꼬였어요. 그다음에 이어질 대화 내용은 뻔하죠?

창훈 씨도 처음엔 대충 지어내려고 했는데

막상 겁이 났대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죠.

곧 적막을 부수며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

“푸하하, 아 진짜 웃기네. 야, 크게 좀 말해." 진짜로 모두가 비웃었는진 모르지만

창훈 씨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할 수 없지요.

그날 창훈 씨는 밤새 남의 말만 들어주느라 모래를 씹은 듯 입안이 텁텁하고, 안주 없이 소주만 잔뜩 마셔서 속이 쓰라렸다는데요, 그냥 들어가긴 뭐해서 골목길 한가운데 뜬금없이 움푹 들어간 맥줏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만났죠.


“여기, 메뉴판 좀 주세요.” 그때 창훈 씨 목소리 진짜 웃겼거든요.

사람이 얼마나 넝마가 됐으면 여기를 맥줏집으로 착각하겠냐고요.

저도 그런 창훈 씨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여기 그런 곳 아닙니다.” 제가 말했어요.

그때 장부 정리가 밀려있어서 대충 얼굴도 안 보고 말했어요.

“그, 그럼 여, 여기가 어디죠.” 어벙하게 굳은 창훈 씨의 표정.

“여기는 세무서입니다."

“세무서요? 간판이 없던데.."

“일반 세무서가 아니니까요. 저희는 사람들의 '자랑세'를 관리하고 있어요.”


놀랐을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을 거예요.

아마 여러분도 이런 거 처음 들어보셨을 텐데, 저희가 비공식 기관이라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하는 일이 꽤 많고 다양해요.


자랑세.

그것은 말 그대로 자랑한 것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거죠.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볼까요?

너무 잘생기고 키도 커서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은 대스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랑 결혼했다가 최악의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혼했다는 이야기, 흔히 들어보셨죠? 그게 자랑세예요.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어이없는 죽음으로 알려진 '로또 번개 사건' 아세요? 왜, 로또에 당첨되고 집에 가는 길에 벼락 4번 맞아서 죽은 사람 있잖아요. 그것도 자랑세예요. 그 사람이 로또 당첨된 사실을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지인 40명에게 전화를 돌려서 그렇게 자랑했거든요.


저희가 하는 일이 그런 겁니다.

남에게 부러움을 산 사람들에게 적당한 불행을 안겨주는 것. 그런 걸 왜 하냐고요? 바로,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예요.

너무 들떠도 사고가 나는 법이랍니다. 너무 즐거워도 탈이 난다고요. 그래서 너무 즐거운 일이 생기거나 나불나불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저희가 곧바로 출동합니다. 질병, 재해, 불안, 최악의 경우는 죽음까지, 어떠한 경로든지 자랑에 합당한 세금을 부과하지요.

제 깔끔한 설명을 듣더니 창훈 씨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곧 박수까지 치면서 웃더랍니다. 이때부터는 약간 소름이 끼쳤어요.

"역시 그랬어! 세상에 다 가진 사람이 어딨겠어! 내 인생만 망한 게 아니야. 잘난 척하면서 나한테 개쪽 주던 새끼들, 너넨 다 뒤졌어."


창훈 씨는 곧바로 저한테 자기도 이 일을 할 수 없겠냐고 묻더라고요?

뭐, 요즘 같은 동창회 시즌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골치 아팠는데 잘됐다 했죠. 그래서 체납자 목록을 주면서 장기 체납자들 리스트만 추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게 간단하긴 해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을 텐데 싱글벙글하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창훈 씨는 그날 집에도 안 가고, 3일이 넘도록 잠도 안 자면서 장기 체납자 명단을 꼼꼼히 살폈어요. 그리고 그 리스트를 집행부에 제출했죠.

뭐, 그때까지도 이상한 점은 전혀 못 느꼈는데 어느 날 일이 터졌습니다.

동일 업무를 같이 수행하던 직원 하나가 급하게 저를 찾더군요,

“서장님! 좀 이상한 점이 있어서 여쭤보려고 연락드립니다.

이번 장기 체납자들 대상으로 체납처분 한 것 중에서 유독 과중(重) 처벌 건이 많이 발견되어서요.”


그때 직감적으로 깨달았죠. 아, 창훈 씨가 뭔 일을 냈구나. 일을 내도 크게 냈구나.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직감이 아주 예민해집니다.

저는 곧바로 전산망에서 자랑세 처분 결과를 봤어요.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보통 장기 납세자들의 경우에는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거둘지도 미리 정하게 되어있거든요?

이를테면, 지금껏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승승장구하면서 살아온 그런 부러운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분들께는 강도 높은 암세포를 만들어서 말년에 고통을 주거나, 교통사고로 여생을 최대한 불편하게 보내게 합니다. 너무 잔인하다고요?

이 조항은 저희가 임의로 만든 게 아니고요, 조물주가 직접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뭐, 그분께서 어떤 의도로 인간들에게 그런 잔혹한 지시를 내리셨는지는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아시죠? 다양한 종교 서적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니까요.


아무튼 말입니다, 아까 동창회 이야기에서 언급된 분들은 창훈 씨의 서류 조작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보셨어요.

경찰관이 되어서 흉악범들 때려잡고 승승장구하던 경택 씨는 용의자가 휘두른 둔기에 후두부를 잘못 맞아 식물인간이 되셨고요,

성형외과 의사로 돈 많이 벌어서 페라리를 끌던 연성 씨는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드는 음주운전 차량과 부딪혀서 하반신이 마비되셨죠.


개인적으로 이분의 이야기가 제일 가슴 아픈데요, 동창회에서 청첩장을 돌라던 기훈 씨 부부는 신혼집이 화재로 전소되어 두 분 모두 숨을 거두셨습니다.

동창회에서 내뱉은 자랑에 대한 세금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나요?

지금 한 분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삶이 무너진 겁니까?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직원들과 다 함께 창훈 씨의 행방을 찾았어요.

정말 방방곡곡, 아주 샅샅이도 뒤졌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처럼, 창훈 씨는 금방 잡혔습니다.

뭐가 그리 당당한지 마치 거사를 마친 영웅처럼 집 베란다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자랑질하던 놈들 꼴을 보니까 서장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자랑에도 대가가 있을 줄이야.."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요? 당신이 몇 명의 인생을 망가트렸는지 알아?"

"..."

“공문서 위조는 인간 사회에서나 이쪽 세계에서나 모두 큰 범죄예요. 자, 창훈 씨. 이제 죗값을 치르러 갑시다.”

그런데 이분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 처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아직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알고 보니 창훈 씨가 조작한 명단이 더 있었던 것입니다.

동창회 사람들이 목록의 상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처분이 이행된 것이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과중 처벌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죠.

자신을 마치 '자랑 쓰레기통'처럼 여기며 조롱하던 '아는' 사람들부터,

TV나 SNS에서 화려한 일상을 자랑하는 '모르는' 유명인들까지 자신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한 모든 사람을 목록에 집어넣었더군요.


지금 저를 포함한 저희 세무서의 모든 직원이 피해를 줄이려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게 참 쉽지 않네요. 그러니 이제 여러분들도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절대 자랑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동네방네 떠들지 마시고

되도록 혼자서만, 조용히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자랑할 때는 상대방의 표정도 안 보면서 신나게 떠들지만,

막상 자랑세를 낼 때가 되면 한없이 괴로워하시니까요.


_'자랑세무서장 재신(財神)의 인터뷰 내용 中 일부


-END-

이전 07화 유리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