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꽤 멋졌던 오늘
당신은 왜 오늘을 선택했는가. 1년에 365일이, 8,760시간이, 525,600분이, 31,536,000초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당신이 방금 저지른 그 행동, 그 생각, 그 감정은 왜 하필이면 오늘 당신을 죽음으로 이끄는가.
사는 건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걸 왜 이제야 알았는가. 태어나자마자 목놓아 울며 눈물을 흘리고, 첫 등교날 가족과 떨어지기 싫어서 울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에 가기 싫어서 눈뜨자마자 한숨을 크게 내쉬며 우리는 살아왔다. 산다는 건 시작부터 쉽지 않았고, 원래 고통스러웠다.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쉽지 않았을 당신의 '오늘'은 무슨 이유로 '오늘' 끝이 나려고 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시작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뜬 당신. 지금의 삶에 고통과 불안을 주는 대상을 가장 먼저 떠올렸겠다. 하루의 시작부터 불쾌했을 텐데 그래도 척추에 힘을 넣고 몸을 일으켜 세운 당신, 멋지다.
창 밖을 보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쁘고 알찬 하루를 시작하는데 나만 뒤로 후진하는 것 같아 서러웠겠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 어제의 루틴대로, 혹은 오늘의 계획대로 하루를 시작한 당신, 잘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일상의 괴로움에 팔팔 끓여진 당신은 어느새 자신을 시공간과 분리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는 집중할 수 없었으며, 눈빛은 이미 죽어있었다. 당신은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웠다가 다시 넣어보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사라진 세상'에 대해 상상해본다.
실행에 옮겨봐야지 싶어서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덜 고통스러울지 골라본다. 마지막 말이 담긴 유서에는 무슨 말을 남기는 게 좋을지, 그걸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장례식장에는 누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갈지. 시끄럽고 복잡한 상상이 끝나갈 때쯤 상상의 갈고리가 행동에 덜컥 걸려 그대로 실현될 것만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이 왜 하필 오늘 죽기로 결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신의 하루는 어제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잘만 넘어갔던 당신의 인생을 왜 오늘 끝장내려고 하는가. 우리 인생은 비단 오늘만 괴로웠던 건 아니었는데 왜 오늘 하루를 유독 더 힘들었다고 결론짓는가.
어제는, 지난주는, 작년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행복해서 죽지 않고 살아왔는가. 당신이 가장 잘 알듯 우리 인생은 엄청나게 특별하지도, 행복해서 미쳐버릴 만큼 좋지도 않다. 그저 숨통이 트여 숨을 쉬는 것이고 바닥에 발을 붙일 수 있어서 걸어 움직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출생'이라는 생명의 시작을 거부할 수 없었고, 고픈 배를 내버려 둘 수 없어 뭐라도 입 안에 채우며 세상 속에서 생존해왔다. 늘 고통 속에서 생존해온 당신이 시도한 '오늘'의 죽음은 그래서 어리석다. 어제 죽지 않고 애써 오늘까지 버텨온 당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는 결국 '생각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고통스러웠던 삶을 오늘따라 유난히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것. 오늘의 고통을 어제의 고통과 다르다 여기는 것. 그것은 단지 짜장면을 먹으려다 짬뽕을 먹는 것과 같은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당신이 살아오며 잠시라도 느껴봤을 행복한 감정과 소중한 가치들은 분명히 오늘도 당신의 주변에 있었다. 단지 삶의 고통에 가려져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을 뿐이다.
알고 보면 당신의 오늘도 꽤나 괜찮은 하루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물 트럭이 오늘따라 당신을 비껴갔고, 당신의 몸속 세포들이 오늘따라 암세포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며, 북한군은 오늘따라 서울에 미사일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은 고달픈 하루보다 당신의 머릿속 거친 아우성이 아닐까. 그러니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자. '내가 꼭 오늘 죽을 필요가 있었나?'
오늘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속 시원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이제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내자. 내일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오늘 밤만 잘 넘기면 내일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편견과 거부감 없이 이제부터 이어질 이야기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