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적응하기

유체이탈

by hwain

유체이탈. 영어로 'Out-Of-Body-Experience', 줄여서 'OOBE'라고도 불리는 이 단어는 영혼이 육체 밖으로 빠져나와 스스로를 마주하는 경험을 말한다.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 믿기 힘든 경험을 이번 훈련에서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당신이 이번 훈련에서 해야 할 것은 유체이탈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지난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직 혼란스러울 당신을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CCTV를 보지 않는 이상 우리 일상을 눈으로 관찰하듯이 볼 수 없다. 당신을 보는 것은 당신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의 녹화본을 재생해보지 않는 이상 일상 속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바로 이번 훈련, 유체이탈에서는 '받아들이는 훈련'에서 종이에 적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제3자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해볼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도록 종이 위에 적힌 이야기들을 소설책 읽듯이 가볍게 읽어보자. 단, 도중에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이번 훈련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날의 나를 고통 속으로 빠뜨린 괴로운 일들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기란 당연히 쉬울 리 없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종이 위에 적힌 모든 일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다. 그 사람에게 동정을 느끼며 안타까워해도 좋고, 그 사람의 행동이 바보 같다며 비웃어도 좋다. 그저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당신은 새로운 삶을 맞이하며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색깔과 모양, 크기를 가진 마음을 품고 당신은 다시 태어났다. 종이 위에 적힌 그 이야기들은 당신에게 일어난 일도, 당신에게 일어날 일도 아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쓰고 간, 처음 보는 이야기다.


'유체이탈' 훈련의 목적은 이렇게 지난날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들과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새롭게 맞이할 삶의 형태를 조립하는 데에 있다. 조립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날의 사건과 본인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직시한다.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하고, 본인의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를 괴롭힌 상대를 실컷 원망하면서 서서히 자기혐오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 괴로웠던 게 아니라 그 상황, 그 사람, 그 우연들이 겹치며 나를 괴롭혔던 것이구나. 일종의 자연재해처럼. 자연재해는 나의 잘못과 하등 관련 없이 '그냥' 일어난다. 당신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상황들도 당신이 잘못해서 벌어진 게 아니었다.


이 훈련이 끝나갈 때쯤 당신은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넌 잘못이 없었어.'라는 따뜻한 위로. 그리고 이 위로 한마디는 새로운 인생이 자리 잡는데 반드시 필요한 단단한 초석이 되어준다. 다시 조립한 새로운 인생이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기반이 마련되면 이제 적응을 위한 훈련은 끝났다. 과거와의 불편한 만남을 애써 견디며 여기까지 도달한 당신 앞에는 이제 더 새롭고 즐거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삶에 새로운 감정을 채우는 데 성공한 당신은, 이제 새로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 어떤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필요했던 것은 영혼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기회였다. 우울감과 절망감 때문에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아닌 삶의 종료를 먼저 제시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은 새로운 인생에 뼈대를 세우고, 시멘트를 발라 중심을 견고하게 다지는 이야기다. 이미 새로운 삶을 개척했으니 곧바로 책을 덮을 것인가. 하지만 개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착'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새로운 삶에 제대로 정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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