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왜 하필 오늘이죠?

당신의 내일

by hwain

당신의 참을성 덕분에 어제를 끝으로 마감될 뻔한 당신의 인생에도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스스로에게 용감히 건넨 단 한 번의 기회로 당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굳이 오늘 죽을 필요가 없다며 죽음을 미룬 당신은 이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일단 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보자. 잔에서부터 손까지 전해지는 물의 온도, 입안 가득 퍼지는 맑은 물의 느낌, 목구멍을 타고 몸속 깊숙이 내려가는 물결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당신은 방금 살아있다는 증거를 직접 경험했다.


오늘의 할 일은 바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그뿐이다. 어제의 일상, 오늘의 계획은 잠시 제쳐두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던 자비로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시간을 낭비해보자. 어차피 어제 상상하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면 오늘의 하루는 없었을 테니, 시간이나 돈 걱정 말고 오늘 하루만큼은 죄책감 없이 시간을 낭비해보자.


때로는 낭비가 회복이 된다. 오히려 생각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이 순간이 자아를 가두고 괴롭히는 시간보다 낫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떠올려보자. 당신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으며, 특히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는 생명이 있다. 당신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단, 아직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지 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분간은 자기 몸을 방금 태어난 신생아처럼 대해야 한다. 타인과의 만남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해 영글지 못한 당신의 몸과 마음에 매우 치명적이다. 행여 그들이 당신에게 익숙하거나 친분이 있다 할지라도 준비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거리를 두자. 당신에겐 아직 그들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전화나 문자로 멀리서 연락하는 것조차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당신의 인생이 이제 막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대신 한적한 자연에 가보자. 어딜 가든 산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는 시간을 건강하게 낭비하기 안성맞춤이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이름 없는 동산도 좋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솟은 산도 좋다. (단, 반나절 이상 걸리는 곳은 피하자. 너무 험준한 산은 신생아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어떠한 자연공간이든 좋다. (단, 깊은 바다의 푸른색은 또 다른 자극이 될지도 모르니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마주하도록 하자.)


어떤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드는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어루만지며 등골까지 서늘하게 식히는 느낌은 어떠한가.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상관없다. 어떤 감정이든 어제의 감정보다는 나을 테니.


아무래도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고파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을 골라 먹자. 당장 먹기 싫다면 어떤 음식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지 정도는 메모해두자. 그 음식은 사경을 헤매다 돌아온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린 귀한 음식이다. 영양분이 어떻고, 가격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을 회복시키기엔 그만한 음식은 없을 것이다. 언제든 다시 맞이할 방황과 절망의 순간에 당신을 회복시킬 음식이 무엇인지 반드시 기억하자.


이렇게 시간을 아낌없이 낭비하다 보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는데도 시간은 빨리 간다. 그동안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만 시간을 써온 것이 후회스럽게 느껴지는가. 괜찮다. 오늘이라도 그 느낌을 느껴본 것에 감사하자. 이제부터 시작될 하루하루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나날이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뭐가 하고 싶은가.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피곤했을 텐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만약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면 아직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한적한 공원이든, 조용한 카페로 가서 지친 몸과 마음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주자.


이쯤 되니 슬슬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해질 것이다. 그래도 참자. 오늘은,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철저히 나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날이다. SNS를 보는 것,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 뉴스를 훑어보는 것은 절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리자.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이다. 이제 핸드폰을 열어볼 기회를 주겠다. 갑자기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가. 고생했다 당신. 당신이 건넨 한 번의 기회로 얻은 새로운 하루는 어땠는가. 당신의 세상은 이렇게도 평화로웠다. 당신의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이었지 세상이 복잡하진 않았다. 세상은 당신의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당신의 땀을 말리기 위한 바람이고, 컵에 담긴 물도 오로지 당신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담긴 물이다. 당신이 사라져 버리기엔 온 세상이 당신을 향하고 있다. 아낌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충분히 에너지를 비축하였으니, 다음 이야기에서는 간단한 훈련을 할 것이다. 고생한 당신, 부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단잠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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