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wain Apr 12. 2023

어떤 청춘

hwain 단편선 (9)

 "오늘은 집에 와서 쉬지 그러니." 준우의 휴대폰 너머로 그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안 돼요. 다들 열심히 사는데 저만 뒤처질 순 없잖아요." 준우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네 생일이잖아. 미역국 끓여 놓았으니까 집에 잠깐 들르렴." 어느새 그의 엄마는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작년에도 내가 그렇게 끓이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도 참.."


 "아휴 알겠어, 다음부턴 안 끓일게. 그래도 마음 바뀌면 언제든 내려와. 아빠도 너 보고 싶어 하신다."


 "네, 고마워요 엄마. 근데 준희는 뭐해요?"


 "너희는 남매끼리 연락도 안 하니? 준희 유럽 여행 갔잖아. 아마 다음 달은 되어야 돌아올 거야."


 "아 그랬나..? 하여간 남들 따라서 목적도 없이 사는 인생이란.. 쯧쯧.." 준우는 자신의 여동생이 진심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걔는 아직 어리잖니... 너는... 음, 그래. 항상 밥 잘 챙겨 먹고."


 "네. 저는 잘 지내요 항상.."


 준우가 집에서 나온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여전히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그는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겐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부자였다. 작은 사업으로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킬 것이고, 이를 더 큰 회사에 매각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셈이었다.


 꿈이 시작된 곳은 군대였다. 그는 전역할 때쯤부터 자기 계발 서적과 재테크 도서들을 읽기 시작했고, 학교에 복학하자마자 자퇴를 신청했다.


 자퇴의 다음 수순은 자취였다. 부모에게 500만 원을 빌려 작은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다짐했다. 다시 집에 돌아갈 때는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준우는 양손 두둑이 챙긴 현찰 다발을 가족에게 안겨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벽에 붙은 곰팡이를 솔로 박박 문질렀다.


 그는 그동안 책에서 봤던 내용들을 하나씩 따라 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5시에 기상해 5KM를 뛰었고, 들어와서는 냉수(얼마 전 SNS에서 냉수 샤워가 스트레스 해소와 도파민 향상에 좋다는 내용을 읽은 후 계속 냉수로만 씻는다.)로 샤워한 후 영어 단어를 외운다. 식사를 간단히 마치면 곧바로 도서관에 가서 사업과 재테크에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식곤증이 올 때면 공책을 펴서 자기 계발 서적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동기부여 문장들을 따라 적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자신을 믿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이겨내면 그 꿈을 이뤄낼 수 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곤 마음에 드는 구절은 휴대폰으로 찍어 SNS 상태메시지로 설정했다.


 마음이 공허해질 때면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봤고, 그마저도 헛헛한 심정을 채워주지 못하는 날이면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공부하는 사진이나 운동하는 사진을 찍어 올리고는 #동기부여 #자극 #오운완을 새겨 넣었다.


 간혹 가다 지인들이 본인의 일상에 대해 물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 성공할 수 있을지, 또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설명할 때면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항상 위인들의 명언을 읽다가 잤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토머스 에디슨>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제임스 딘>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결국 믿는 대로 될 것이다"-<헨리 포드>


 그는 언젠가 자신도 성공한 유명인이 되어 사람들의 영혼을 응원하는 멋진 명언을 남기리라 다짐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가끔 일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고된 아르바이트 일 때문에 10시가 넘도록 깊은 잠에 빠져 자책감에 괴로워했지만 운 좋게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준우에게는 달라진 점이 생겼다. 바로 자신과 다르게 나태하게 사는 사람들을 혐오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직장인들의 주 4일제 희망을 이해하지 못했고, 근로시간이 69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하여간, 월급쟁이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안주한단 말이지. 주말만 바라보면서 말이야. 안정적인 삶? 그건 평생 노예로 살겠다는 말이지. 나 같으면 몸을 불사 지르면서 열심히 일하겠다. 어디서든 열심히만 하면 다 얻어가는 거라고. 그게 다 자산이 되고 포텐셜이 되는 건데. 이래서 일단 창업부터 해봐야 되는 거야. 시야가 달라지잖아."


  인터넷 기사를 보던 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기사의 제목은 [퇴근 후 '워라밸' 외치는 2030, 근로시간 개편 반대]였다. 


 준우는 시계를 보더니 급하게 짐을 챙겼다. 어젯밤 SNS에서 아침 조깅보다 등산이 집중력 향상에 좋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새벽 05시 20분. 아직 해가 뜨기 한참 전이었고, 산에는 아무도 없었다. 준우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인강 강사 쓴소리 모음집'을 들으며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피곤하고 어지러웠지만 맑고 차가운 공기가 코로 들어오자 정신이 맑아졌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준우가 말했다.


“역시 열심히 살길 잘했어”


 그런데 갑자기 준우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코에서는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시야까지 흐려질 때쯤 그는 발을 헛디뎌 나무 사이에 몸을 기댄 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죽었다.


 사인은 과로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그파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