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모 Mar 24. 2023

봄날의 소심한 복수!

벚꽃이 질 때까지 인사하지 않을게요.

아파트 큰길 건너 천변에 늘어선 벚나무가 꽃망울을 머금었다. 어제 잠깐 내린 비가 서둘러 잠을 깨운 모양이다. 작년보다 정확히 일주일 빠르다. 날이 따뜻했으면 팝콘 튀기듯 금세 꽃망울을 터트리겠지만 오늘 아침은 옷깃을 여밀 만큼 쌀쌀하다. 그래도 어쨌든 꽃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앙상하던 벚나무에 옅은 분홍빛이 서리니 반가운 사람을 마주하듯 생글생글 웃음이 난다.

‘미세먼지 나쁨.’ 공기청정기를 틀어놓고 베란다 창을 활짝 열었다. 가을을 환장하게 좋아하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순간만큼은 단단히 딴마음을 먹는다. 올봄도 어김없이 그럴 참이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곧 만개할 벚꽃을 상상하다 보니 호사가 따로 없다.     

‘햇살만 있으면 딱인데…….’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콧등으로 액체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무심히 닦아 내고는 비가 오나 싶어 위를 올려다봤다. 자라처럼 목을 한껏 빼냈더니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또 한 번 벌어진 입으로 물방울이 낙하했다.


퉤, 퉤! 썩은 맛이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시커먼 물줄기를 본 순간 눈알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윗집, 아니 윗집의 윗집에서 베란다 청소 중이었다. 창틀 사이로 밀대가 왔다 갔다 하는데 걸레가 시커멓다.     


속상해 죽겠다 정말. 좀 전에 마신 커피 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꽃길을 거닐던 행복한 상상은 와장창 깨졌다.


나의 사색을 방해하신 이웃님, 비도 안 오는데 이런 날 청소하는 건 반칙이에요!

그 댁 창은 깨끗해서 좋겠지만 우리 집 창은 어쩔 건데요?


당장이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보란 듯이 물청소를 하고 싶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복수는 글렀다.

이를 어째, 점심 먹어야 하는데 밥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자동으로 다이어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웃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당분간 웃지 않고 인사할 겁니다. 어쩌면 휴대폰 보는 척하며 인사 안 할지도 몰라요. 그런 저를 만나면 욕하지 마시고 먼저 인사해 주세요. 오전 내내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봄맞이 대청소 중이신가 봐요? 감기가 무섭더라고요, 병나지 않게 쉬엄쉬엄하세요.     


그나저나 우리 집도 봄맞이 대청소해야 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