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만한 라면 끓이기

고양이의 마음

라면 끓이기에 자신이 있다. 음식은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이 아니라 ‘맛있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입맛에 맞는 간을 낼 줄 안다고 생각한다. 고작 라면 하나 끓일 때도 신경을 쓴다. 보통은 혼자 먹는데도 내겐 인원이 아니라 끓이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맛있게’라는 게 큰 의미다.
시작은 라면의 구입에서부터다. 새로 나온 라면이 아무리 평이 좋다고 해도 이미 먹어본 라면을 사는 편이다. 몇 개 정도 끓이려면 물을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하는지, 스프는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어서 어떤 맛이 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데, 다른 부재료를 어떻게 넣어야 이 라면의 풍미감을 더 낼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라면 하나 끓이는 것에도 말이다.
해물라면이나 최근 많아진 짬뽕라면, 짜장라면은 오히려 맛을 내기가 쉽다. 특정한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는데다 그 맛을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그 맛은 유지하면서 추가로 풍미를 끌어올릴 수 있는 부재료를 넣으면 간이 깊어지면서 훨씬 맛있어진다.
가령 해물라면이나 짬뽕라면을 끓을 땐 집에 냉동해물을 가지고 있다면 반은 성공이다. 깍둑썰기한 오징어와 원형 그대로의 조개, 홍합, 새우를 봉지에 담아 얼려서 파는 제품이다. 해물 관련한 요리엔 이만한 부재료가 없다. (음식에 넣기 전에 얼려있는 상태보단 물에 살짝 헹구고 담가서 해동해 두면 더 좋다.)
라면 물을 끓을 때 우선 건미역이나 다시마가 있다면 넣어서 끓이자. 고유의 향이 육수가 되어 전체의 맛에 도움을 준다. 건새우도 좋다. 그리고 냉동 해물을 넣는다. 이때 스프는 간을 봐가면서 조절하는 게 좋다. 물의 양도 해물이나 부재료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이후 마늘과 파를 넣으면 끝이다. 마늘은 한국 음식에선 어지간하면 쓰는 게 좋은 재료다. 대파도 마찬가지다. 사놓은 게 있다면 버섯도 곁들이면 좋다.
무슨 라면 하나 끓이는데 이렇게나 하느냐는 말도 하는데 하루에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 끼를 때운다는 생각이면 그냥 끓는 물에 스프 넣고 달걀이나 하나 풀어서 먹으면 된다. 하지만 한 끼라도 제대로 먹겠다면 이렇게 해서 먹었을 때 하루 기분이 달라진다.

사실 마음가짐의 차이다. 매일 먹는 식사, 내가 해서 먹는 음식, 그리고 고작 라면 한 개. 그런데도 내게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식사 이후의 하루를 대하는 시간과 연결된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혹사하는 아버지, 언제인지 모를 내일의 성공을 위해 아픈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 사랑하는 그녀 혹은 그를 위해 내 처지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랑꾼들.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누군가와 함께할 행복도 가능한 것이다.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실패하는 원인이 그렇다고 느꼈다. 자신의 불행으로 멀리 있는 가족이 행복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단절된 관계가 습관이 되면 아버지의 불행도 자신의 행복도 그게 당연하다고 믿게 된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어떤 성공도 행복하게 맞을 수 없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라면 하나를 끓이면서 별소리를 다 하고 있다.
다행하게도 오늘 라면도 맛있었다. 신나서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