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나 가고 싶은 곳 그리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나 가야 할 곳도. 가만히 있어도 되는 시간은 또 무엇이든 해도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깥은 완전한 햇살의 시간이었고 나른한 시간이 구름처럼 유유히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품이 나왔다. 같은 공간에서 머물며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의 높이와 바다의 깊이를 재보며 하늘을 날아도 봤다가 바다 위를 떠돌기도 해 본다. 조각배를 타고 가다 보면 손을 뻗어 구름을 만져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몇 시가 되면 예고 없이 쨍그랑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러면 물이 들었다. 하늘과 바다가 계속해서 같은 빛깔로 물들어갔다.
아침이면 바다에선 수박 냄새가 났고 정오에는 안개에 덮인 채 조용했는데, 조용히 일렁거리는 파도는 흡사 덜 익은 젖가슴 같았다. 저녁이 되면 바다는 한숨을 쉬며 장밋빛이 되었다가 자줏빛, 포도주빛, 그러고는 짙푸른 색깔로 변하는 것이었다. 오후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손은, 우리의 인생이 새어나가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모래시계였다.